운영 국가별 수가·제도 차↑
진료지원 시행 규칙 등을 포함한 개정 간호법 시행이 1달이 채 남지 않았으나, 정부의 제도 구성 및 기획 과정 등에 대해 보건의료계열 단체들이 연이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요 문제점으로는 업무 제정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골수 천자 등을 포함하며, 교육 기관 및 교육 이수 확인 과정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회장 신경림)은 지난 26일 보건복지부 세종청사 앞에서 진료지원(PA) 간호사 시행 규칙 제정 방향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간협 추산 1만여명이 운집한 이번 행사에서 신경림 간협회장은 “보건복지부가 마련 중인 시행규칙은 간호법의 숭고한 입법 정신을 짓밟을 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행동하는간호사회는 “업무 범위가 포괄적이고 모호하며 업무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명확한 교육·자격 기준이 미비하다”며 “간호사에게 법적·임상적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보건복지부가 ‘간호법 제정에 따른 진료지원업무 제도화 방안 공청회’에서 진행한 발표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전문간호사 및 임상경력 3년 이상·교육 이수 요건을 충족한 경우를 조건으로 제시했으며, 진료지원 업무 수행 경력이 1년 이상인 경우 임상 경력이 3년 미만이어도 가능하다.
업무 분야도 △환자 평가 및 모니터링 △의료용 관(Tube·Catheter) 관리 △상처·장루·욕창관리 △기록 및 처방 지원 △수술 지원 △시술 및 처치 지원 △분야별 진료지원 등 7개 분야 45개 행위로 구분했다.
교육과정은 이론·실기 교육과 소속 의료기관 현장실습을 포함하며, 보건복지부는 구체적인 사항은 업무 범위 확정 후 지정할 방침이다. 단, 교육 가능 기관은 간협과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 등 의료인 단체와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등 광범위하며 별도의 시험 등은 거치지 않는다. 기존 PA간호사는 경력 2년 이상인 경우 교육 면제, 2년 미만은 간소화해 이수하면 된다.
그러나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최희선)은 이튿날인 22일 “PA 수행 경력 1년 이상일 경우 임상 경력 3년 이상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하겠다는 정부의 안은 위험하다”며 우려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골수천자, 복수천자, 절개배농 등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업무는 전담간호사에게 위임돼서는 안 된다”며 “진단서, 진료기록 작성, 수술·시술·검사 설명 및 동의서 구득 등 의사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과, 행위자로서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 업무는 의사의 고유 업무로 규정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김택우)도 같은 날 김성근 의협 대변인이 정례브리핑 자리에서 “(진료지원업무 범위는) 굉장히 자세하고 명확한 행위 정의가 필요하다”며 “정의되지 않은 행위들을 나열식으로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의료정책연구원(원장 안덕선)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OECD 회원국 38개국 중 간호사 단독법을 보유한 나라는 30%가량인 11곳(△오스트리아 △캐나다 △콜롬비아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 △일본 △리투아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터키)이었다. 그러나 위 국가들의 간호사 단독법은 국내 법안과 달리 △면허관리기구 설치 및 구성 △교육·자격·면허·등록 △조사 및 징계 △환자 불만 접수 등 면허 관리를 중점으로 다루며, 우리나라의 진료지원 간호사 제도는 미국과 형태와 구조가 다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원장 신영석)이 같은 해 발행한 ‘진료지원인력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국제 동향 고찰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진료지원인력 제도는 △영국 △캐나다 △미국 등과 민간 의료 공급 중심의 △일본 △대만 등으로 나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대 정원이 오래 증원되지 못한 채로 정부의 거시적 차원의 개입 없이 병상 수가 급격히 늘어 2021년 기준 OECD 국가 중 가장 병상수가 많으며, 수가 체계 등 세부적 차이가 크다.
갈등의 주 요인인 교육과정·교육주관단체도 다르다. PA 인력 제도의 선두주자인 미국은 진료지원인력협회(AAPA)의 △화학 △생리학 △해부학 △미생물학 △생물학 △행동과학 등 교육을 최소 2년 이상, 평균 3000시간 이상 환자를 직접 돌보는 임상실무교육 위주 교육과정을 들어야 한다. 교육 프로그램도 PA 교육인증평가위원회의 인증을 거쳐야 하며, 이수자는 국가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영국은 의과대학들이 협력해 PA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현재 영국 진료지원인력 협화(FPA)가 있다. PA 업무를 맡으려면 90주·2년 과정의 수업을 총 3200시간 이상 이수한 뒤 미국과 같이 국가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캐나다도 군의관과 유사한 형태로 시작돼, 매니토바주·온타리오주 등이 제도 구체화 초기 단계서부터 자체 프로그램·규정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우다. 현재 공인 프로그램은 총 4종류로 2년 과정이 운영되며, 캐나다 진료지원인력 협회(CAPA)의 국가인증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지난해 건국대 법학연구소 학회지인 ‘일감법학’에 수록된 ‘진료지원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고찰’에 따르면 현재 간협의 주장과 가장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인 곳은 일본이며, 정부가 법안 개정 등을 주도한 점도 비슷하다.
일본간호협회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전문간호사·인정간호사 자격을 부여할 수 있으며, 전문간호사는 암, 만성질환, 정신, 급성·중증질환 등 11개 분야로 나뉜 2년 석사 과정을 이수하면 취득할 수 있다. 인정간호사 제도도 특정 간호 분야의 숙련된 기술·지식을 갖춰 인정심사를 통과한 간호사가 대상이며, 6개월 동안 600시간 이상 교육과정을 요구한다.
이어 후생노동성은 지난 2015년 보건사·조산사·간호사법 개정을 주도했으며, 현재 지정연수를 받은 간호사라면 38개 특정행위에 한해 의사 지시에 기반한 수순서(절차 안내서)에 기반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일본 간협 내에도 지난 2020년부터 인정간호사 제도 내 38개 특정행위 관련 간호사 대상 연수를 포함한 과정이 신설됐으며, 1년 동안 800시간 이내의 교육과정을 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