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위한 기도(祈禱)
환자를 위한 기도(祈禱)
  • 홍영준(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 승인 2025.10.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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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준의 공릉역 2번출구(133)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 교회에서 몇 주 어르신들 얼굴이 잘 안 보인다 싶으면 영락없이 암에 걸리셨든지, 고관절이 부러지셨든지 하는 소식이 뒤따른다. 청년 세대도 예외가 아니어서 갑작스러운 뇌혈관.심혈관 이상이 드물지 않고, 무엇보다 정신과 영역의 질환들이 넘쳐난다. 그래서인가 우리 교회 목사님은 얼마 전부터 매번 예배 시간마다 아주 간절하게 환자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신다.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 신께 간구하는 행위를 기독교에서는 ‘중보기도(intercessory prayer)’라 말한다. ‘중재를 위한 기도’란 뜻인데, 같은 의미로 ‘도고(禱告)’라는 더 어려운 말이 성경에 등장하기도 한다.

자기 몸이 많이 아프면 기도는 고사하고 신음 내는 것조차 힘겨울 때가 있다. 그 순간 어떤 독실한 신앙인이 내 병을 낫게 해달라고 나 대신 진심으로 기도해 준다면 감사한 일일 것이다. 환자가 비록 무신론자거나 아예 다른 종교를 믿는 경우라도, 순수하게 이타적인 이런 기도에 대해서만큼은 열린 마음으로 흔쾌히 받아들이면 좋겠다.

우리 목사님 보시기엔 다소 불경스러운 일이겠지만,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나는 이 ‘중보기도’의 효과가 혹시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이 있는지 가끔 논문을 찾아본다. 신앙이나 신학의 영역에서 무슨 과학 실험이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 텐데 놀랍게도 이 분야를 진지하게 탐구했던 연구자들이 적지 않다.

‘중보기도’의 효과에 관해서는 지금까지도 띄엄띄엄 논문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이 분야 연구 가운데 역사적으로 가장 잘 설계됐다고 손꼽히는 것은 이른바 ‘STEP 프로젝트(Study of the Therapeutic Effects of Intercessory Prayer)’라 불리는 유명한 연구다. 하버드 의대를 포함해 미국 유수의 6개 병원이 참여했고 그 결과물이 2006년 American Heart Journal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관상동맥우회술(CABG)을 받았던 심장병 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CABG 시술 후 합병증이 얼마나 생기는지 관찰했다. 

1그룹(604명)은 자신들의 병이 낫게 해달라고 어쩌면 누군가가 대신 기도해 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뒤 실제로 기도를 받았던 환자들, 2그룹(597명)은 타인이 기도해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기도를 받지 못했던 환자들, 그리고 3그룹(601명)은 누군가 중보기도를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고 실제로도 그 기도를 받았던 환자들이었다. 무작위 배정에다 이중 맹검법이 적용된 높은 근거수준의 대규모 연구였다.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1그룹과 2그룹의 합병증 발생률은 52% 대 51%로 통계적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자기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3그룹의 합병증 발생률이 뜻밖에 59%로 높았고, 이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었다.

연구진은 중보기도의 효과를 입증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3그룹의 결과에 대해서는 거기 속한 환자들이 ‘수행 불안(performance anxiety)’, 즉 ‘기도까지 받는데 꼭 나아야 한다’라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합병증이 생겼을 수 있다는 다소 궁색한 추정까지 덧붙여야 했다(아픈 나를 위해 누군가 기도해준다고 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흔쾌히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고 앞서 언급한 이유다)

당연히 이 연구 결과에는 비판이 뒤따랐다. 천주교 단체 두 곳과 기독교 단체 한 곳이 환자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두 종교를 하나로 묶는 게 적절한가, 기도문을 표준화했다지만 각자가 원래 하는 기도에다 ‘빠르고 건강하며 합병증 없는 회복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한 줄 덧붙인 게 전부였다는데 그걸로 중보기도가 충분했나 등등.

나는 이 연구 결과 하나로 중보기도의 효과가 부정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발적 퇴행(Spontaneous Regression)’을 키워드로 의학 논문을 검색해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암 치유 사례가 여럿 나온다. 가령 간세포암이 폐.부신.림프절 등 여러 곳에 전이된 환자가 있었는데 항암치료에 반응이 없어 치료를 중단하자 6개월 뒤 신기하게도 모든 전이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케이스 같은 것 말이다. 중보기도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현대 의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여전히 존재함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 병원에도 원목실이 있고 인근 교회에서 파송된 여성 목사님 한 분이 근무하신다. 목사님은 누구나 지나면서 마실 수 있는 손수 내린 커피를 문 앞에 항상 준비해 두신다. 감사의 뜻으로 얼마 전 내가 점심을 한번 사드렸는데, 목사님과 대화하면서 깨달은 게 많았다.

평소 병실을 일일이 돌아다니시면서 전도도 하시고 아픈 사람들이 요청하면 중보기도도 해드린다고 하신다. 최근 한 병실에 들어갔다가 암 환자의 부인되는 분이 간병하면서 수건으로 병상에 누운 자기 남편 얼굴을 철썩철썩 때리고 있기에 목사님이 무척 놀라셨단다. 서둘러 부인을 진정시키며 무려 세 시간이 넘게 그분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드렸더니, 목사님도 함께 때려주고 싶을 만큼 지난 날 남편이 부인의 속을 많이 썩였다고 한다. 

목사님은 그 부부의 문제를 파악하고 임종 직전의 남편을 설득해 의식이 있을 때 부인에게 진솔한 사과를 하도록 하셨다. 남편은 얼마 뒤 사망했지만, 부인의 마음엔 평생의 응어리가 풀렸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마지막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육체의 병은 비록 못 고쳤지만, 우리 목사님의 중보기도가 경청과 배려라는 무기를 추가 장착함으로써 두 부부를 평생 고통받게 했던 마음의 병은 완치시켰을 것이라 믿는다.

이쯤에서 중보기도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연구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어진다. 기도와 병 치료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태도를 조금 바꾸어 종교적 신념이 인간의 심리 혹은 신경계나 면역계에 미치는 미묘한 영향까지 두루두루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간접적인 단서들은 좀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인간의 병이 낫는다고 하는 신비로운 현상 이면에는 의사들이 추정하는 요소들보다 훨씬 복잡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음을 나는 우리 병원 원목실의 목사님을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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