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러니 죽음을 무조건 외면하거나 혐오하고 부정할 게 아니라, 평소에 죽음을 대비해야 합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꼼꼼히 준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죠. 그중에서도 임종에 이르는 과정과 임종 순간에 어떤 일을 겪게 될지를 미리 알아두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고도 평화롭게 죽음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지난 칼럼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들이 겪은 삶의 종말 체험 사례를 중심으로 말씀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영국의 정신과 의사였던 피터 펜윅(Peter Fenwick, 1935~2024) 박사가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사례들을 수집하여 출간한 ‘죽음의 기술’에 실린 삶의 종말 체험 사례과 국내 사례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아일랜드의 왕립과학원 물리학 교수였던 윌리엄 바레트(William F. Barrett, 1844~1925)는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서, 비슷한 사례들을 수집하여 ‘임종 시에 나타나는 환영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까지 했는데요.
한 산모가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으나 과다 출혈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간병인이 보니 그 산모는 얼굴에 상냥한 미소를 띤 채 허공에 있는 무엇인가에 시선을 두고 있었죠. 그래서 무얼 보고 있는지 물어보니, “사랑스러운 빛, 경이로운 존재들, 아니 아버지잖아. 오, 내가 온다고 너무 반가워하시네”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곧이어 다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가 동생과 같이 있네요”라고 말했어요.
사정은 이랬어요. 이 산모의 동생은 3주일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가족들은 환자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죠. 그런데 이 산모는 자신의 임종이 다가오자 오래전에 타계한 아버지와 함께, 3주일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동생의 마중을 함께 받은 거죠.
또 이런 체험담도 실려 있어요. 간호사인 한 여성은 자다가 새벽 3시에 깨어서 보니 침대 옆에 아버지가 서 계셨어요. 당시 아버지는 81세의 고령으로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아서 요양원에 계셨고 혼자 거동이 어려운 상태였죠. 그런데 아버지는 40~50대 전성기 때의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나는 이제 괜찮아. 많이 나았어”라고 말하고서 벽 속으로 사라졌어요.
그 일이 있은 지 세 시간쯤 지난 아침 6시에 딸은 요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아요. 아버지가 조금 전에 돌아가셨다는 거였죠.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세 시간 전에 딸을 방문했던 거예요. 그 여성은 기묘한 체험이긴 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런 체험을 ‘마지막 선물’이라고 하나 봅니다.
그리고 임종이 가까운 환자를 안내해 주기 위해 찾아오는 먼저 떠난 지인의 영혼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임박했을 때나 죽음의 순간에 가족을 방문하는 영혼들 역시 생전의 신체적 결함이 없어진 완벽한 몸으로 나타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고 다른 차원에로의 옮겨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요즘 같은 통신 시설이 없던 시절의 사례입니다. 18세 청년이 영국을 떠나 호주로 가는 상선에 타고 있었는데, 하루는 저녁에 침상에서 책을 읽다가 누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올려다봤더니 할아버지가 서 계셨어요. 할아버지는 중환으로 병상에 누워 꼼짝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을 알고 출항했던 터라,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르며 침상을 튀어 올라 복도로 뛰어나갔어요.
청년은 너무 무서워서 사시나무 떨 듯하며 한참 동안 밖에 있다가 방에 돌아와 보니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없더랍니다. 얼마 후 청년은 호주에 도착해 영국의 고향집에 연락을 취했는데, 그 사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과 돌아가신 시각이 자신이 선실에서 할아버지를 목격했던 바로 그 시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죠. 세상을 떠나는 할아버지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손자를 만나보고 저쪽 세상으로 건너간 거예요.
죽음학의 효시로 불리는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Ross, 1926~2004) 박사의 책 ‘사후생’에도 비슷한 사례가 소개돼 있습니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어린이 환자들의 임종을 수없이 지켜봤는데, 한번은 일가족이 심한 교통사고를 당해 차를 운전하던 엄마는 현장에서 즉사하고 딸과 아들은 중상을 입어 같은 병원의 서로 떨어진 다른 병동에 입원한 상태였습니다. 여자아이가 임종이 다가오자 “모든 게 잘 되고 있어요. 엄마와 남동생이 저를 기다려요”라고 말하고는 눈을 감았어요.
퀴블러 로스 박사는 여자아이의 엄마가 현장에서 죽었다는 건 알았지만 남동생이 죽었다는 건 미처 알지 못한 상태였죠. 여자아이가 죽고 나서 바로 퀴블러 로스 박사는 다른 병동에 있던 여자아이의 남동생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여자아이가 죽기 10분 전에 남동생이 죽었다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여자아이는 죽기 직전, 현장에서 죽은 엄마와 10분 전에 죽은 남동생의 마중을 받은 거죠. 여자아이는 사고 현장에서 어머니가 죽은 것은 목격했을지 몰라도 남동생은 당시에 살아 있었으니, 죽은 남동생의 마중을 받은 걸 두고 착각이나 ‘소망 투사’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제 지인의 부친은 암으로 3년간 투병하다가 임종을 맞게 되었는데, 6.25 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을 때 전사한 동료들이 침대 끝에 서 있다며 몹시 두려워하셨다는 거였어요. 부친의 장례식에서 이 이야기를 하기에 그런 체험을 삶의 종말 체험이라고 하고 환각이나 섬망과는 다르다고 말해줬더니, 이 체험에 대해 미리 알았더라면 임종 직전의 부친을 안심시키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시게 도와드렸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습니다. 먼저 떠난 전우의 영혼들이 낯선 곳에로의 여행을 안내해 주려고 마중 온 것이었는데, 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부친으로서는 저승사자라고 생각하고 무서워한 거죠.
먼저 칼럼에서 언급한 건국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의 윤소영 교수의 경험담을 하나 더 소개합니다. 말기 암으로 잔여 수명이 한 달 정도 남은 80세 여성 환자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임종자의 시신을 닦고 꾸며주는 염습을 자원해서 해오신 분인데, 한번은 윤 교수가 먼저 타계한 배우자께서 혹시 병실에 와 있지 않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20년 전에 죽은 남편이 아무 때나 병실에 와서 앉아 있다 간다”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얘기하더라는 겁니다.
하루는 이 환자가 악성 흉수가 차 숨이 가빠 11층에 입원했는데 윤 교수가 9층에서 11층까지 바삐 걸어 올라가느라 회진 때 숨이 차 하니까, 이분이 “에고 우리 선생님이 왜 이렇게 힘들어해요? 암으로 흉수가 찬 나보다 더 숨이 차면 어떡해요?”라고 해서 회진 돌던 의료진 모두가 함께 웃었다고 합니다. 이분은 임종 때에도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