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계의 한 원로는 수필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철학에서 다루어야 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대해서는 죽음 이후를 얘기해 온 종교에 맡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죠. 의사만큼 죽음을 자주 접하는 직업도 없지 않나요? 철학자는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하지만,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종교인도 호스피스에서 근무하는 일부 성직자들이 아니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과 교과서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해리슨(Harrison)’ 2005년 판부터는 책의 서론에 완화의료 및 말기 환자 돌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말기 암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어떻게 전할 것인지에 대해 안내하면서,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의식이 없어 보여도 청각과 촉각은 가장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감각이므로 가족들이 환자의 손을 잡고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라고 권합니다.
이런 권유는 의료진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죠. 환자가 의식이 없어 보여도 의료진은 환자가 보아도 좋을 행동과 들어도 좋을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2008년 미국의 한 내과 학술지에 폐암 환자의 진료 현장을 녹취하여 분석한 연구가 실렸는데요. 폐암 환자 일부가 의사로부터 정서적으로 지지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 다양한 말기 질환도 마찬가지 상황일 거라고 짐작됩니다.
의료가 이런 방향으로 치닫게 된 데에는 의학교육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해리슨’ 내과 교과서를 보죠. 훌륭한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지식의 함양과 의료 기술의 습득이 필요하고 더불어 인간에 대한 이해를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의과대학의 교육은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데 그치고 있죠. 졸업 후의 수련 과정에서도 인간 이해 교육은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고요. 죽어가는 환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는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몇 년 전 외신 보도에서 미국의 직종별 자살률을 다루었는데요. 1위가 의사, 2위가 치과의사, 3위가 은행과 증권회사의 펀드매니저, 4위가 변호사였어요. 한 설문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의과대학생들의 자살 충동이 상당히 높게 나왔어요.
그런데도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을 맡고 있는 실무자들 중에는 “의사가 질병을 잘 진단하고 치료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자신의 존재와 이를 받쳐 주던 모든 근거가 소멸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인 근사 체험과 삶의 종말 체험에 대해서 얘기해주고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란 사실을 임종자의 귀에 대고 말해주면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많이 줄어들 수 있죠. 이런 영적인 현상들은 죽음 뒤에도 의식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니까요.
1년 전 50대 초반인 지인이 의논해 왔습니다. 절친이 폐암 말기로 항암화학요법을 받아왔지만,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어 퇴원했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커서 어쩔 줄 몰라 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근사 체험, 삶의 종말 체험, 사후세계를 비롯해 죽음에 대해 다룬 네이버캐스트 ‘죽음, 또 하나의 시작’ 오디오클립을 들려주라고 얘기해 주었죠. 일주일 후에 친구를 떠나보내고서 그 지인이 전해준 바로는, 친구와 가족들이 오디오클립을 반복해서 들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많이 벗어나게 되었다며 고마워하더라는 거였어요.
2014년 네이버의 요청을 받고 11편의 칼럼을 연재했는데, 몇 년 뒤 네이버에서 목소리 좋은 성우를 기용해 이 칼럼들을 오디오 파일로 변환해서 무료로 들을 수 있게 올려놓았더군요. 누군가가 병상 옆에 앉아서 칼럼들을 읽어줘도 되지만 대체로 경황이 없을 테니 스마트폰에서 찾아 클릭만 하면 되는 오디오클립을 들려주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이 예정돼 있는 존재들입니다. 먼저 떠나가기도 하고 떠나보내기도 하면서 누구나 다 사별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와 사별하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삶과 죽음의 실체를 알고 있으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갔어도 육체에 머물러 있던 의식체는 그대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실감과 허무감에서 벗어나 위안을 얻게 되죠.
어린 자녀를 난치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한 여성 분은 “죽음학 카페를 통해 사후세계에 대해 공부해 나가면서 참척의 고통을 견딜 힘을 얻게 됐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위로나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죽음 이후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2015년 9월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미국 애리조나 주 투손(Tucson)에 모여 의식의 불멸성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했다는 얘기를 칼럼 연재 초반에 했었는데요. 우리가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알아보고 이를 임종기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도록 자비롭고 인도적인 돌봄에 적용하려고 모였다며 11개 조항으로 된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선언문의 주요 내용은, 우리 의식은 육체의 죽음 뒤에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선언에는 생물학·신경과학·심리학·정신의학을 전공한 미국·아시아와 유럽의 과학자, 다수의 임상의사도 참가했어요.
미국의 정신과 의사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는 책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 (Many lives, many masters)’에서 ”사람들의 가슴 밑바닥에 숨어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재산이나 권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항구적 공포이지만, 삶에는 끝이 없고 우리는 죽지 않으며 실제로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용해될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이 느끼게 될 생에 대한 확신은 얼마나 클 것인가?” 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내담자가 최면 요법을 통해 들려준 공통된 존재의 진실들을 체득했기 때문이죠.
20여년 전, 50세를 바라보며 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된 죽음에 대한 탐구는 지금까지 800회를 넘는 죽음학 강의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강의를 요청하는 곳이 계속 있다는 건 죽음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일 겁니다.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누구보다도 의사 자신의 삶을 위해서 필요하고, 환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죽음을 의료의 실패로만 여기던 시각에서 벗어나면 그분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따스하게 건네게 되고, 인도적인 돌봄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편안하고도 품위 있는 삶의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돕는 일이야말로 의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