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생활패턴을 바꾼 스마트폰을 개발한 애플 컴퓨터의 CEO 스티브 잡스는 몇 년간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2011년 10월 세상을 떠났지요. 그의 전기에는 임종하기 직전의 모습이 잘 묘사돼 있는데요.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차례차례 오랫동안 바라본 다음, 그들의 어깨 너머로 아무도 없는 허공에 시선을 던졌고, “오 와우(Oh wow), 오 와우, 오 와우!”라는 감탄사를 남긴 후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과연 무엇을 봤기에 이런 행동을 한 걸까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떤 환영(vision)을 보는 현상인 삶의 종말 체험은 근사체험과 마찬가지로 죽음과 관련해 일어나는 대단히 중요한 영적인 현상입니다. 대체로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구가 임종하는 사람을 마중나오는데, 임종하는 사람과 가족들 모두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지막 선물’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때 임종자를 방문한 죽은 지인의 영혼은 생전의 신체적 결함에서 완전히 회복된 모습으로, 또는 삶의 절정기 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삶의 종말 체험 현상에 대해 선구적으로 연구한 영국의 정신과 의사 피터 펜윅 (Peter Fenwick, 1935-2024) 박사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보고된 이런 사례들을 수집해 ‘죽음의 기술’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는데요. 펜윅 박사는 우주 현상을 탐구하는 의사와 과학자들의 집단인 ‘과학 의학 네트워크 Scientific and Medical Network’의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펜윅 박사는 책을 출간했을 당시 영국의 방송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죽음은 스위치가 툭 하고 꺼져버리는 단순한 일이 아니며, 여러 단계의 일이 발생하는데, 그중 하나가 죽어 가는 사람이 임종에 가까워졌을 때 먼저 죽은 가족이나 친지의 방문을 받게 되는 사건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세상을 떠나는 환자가 임종 때 보는 환영에 대해 회의론자들은 복용 중인 약물의 영향을 받아 환자가 헛것을 보는 것으로 폄하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한 펜윅 박사는 전혀 다른 연구 결과를 얘기합니다. 임종 때의 환영은 전혀 혼란스럽지 않고 대부분 의식이 활짝 깨어 있을 때 발생하며, 때로는 장기간 혼수상태로 있던 환자가 죽기 전 잠깐 맑은 의식을 회복할 때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약물이나 산소 부족으로 인한 환각과는 전혀 다른 거죠. 지금까지 연구된 삶의 종말체험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떠나면서 먼저 죽은 가족이나 친척 또는 친구의 마중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어쩌면 이승 너머의 피안의 세계를 봤을 수도 있겠지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호스피스 활동을 한 간호사 최화숙 선생의 책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에도 비슷한 체험이 소개돼 있습니다. 대부분 임종 과정이 시작되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에게는 보이는 어떤 대상이나 존재의 마중을 받는 것으로 보이고, 현재의 세상과 죽음 이후의 세상을 함께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병상 옆의 간호사와 이야기하는 도중에 갑자기 허공을 응시하면서 누군가와 뭔가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간호사와 이야기를 계속하더라는 거죠. 그런데 신기한 건 조금 전 이야기가 끊어진 그 부분부터 정확하게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가더라는 겁니다.
이런 사례에서도 보듯이 삶의 종말 체험을 할 때의 임종기 환자들은 펜윅 박사가 지적한 대로 명료한 의식 상태를 유지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의사 본인이 경험한 체험 사례도 있습니다. 현재 건국대병원 혈액종양내과에 근무하는 윤소영 교수가 전공의 수련을 받을 때 겪었던 일을 얘기해줬습니다. 동료 내과 전공의가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 항암화학요법 치료를 받았으나 별 효과 없이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답니다. 병실에 담당 의사와 본인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도 자꾸만 “누군가가 방에 와 있다”라고 하자, 담당 의사는 섬망(delirium)이라고 판단해 정신과에 의뢰했답니다.
연락을 받고 온 정신과 전공의도 환자의 의대 졸업 동기였는데, 병상에 누워 있는 동기가 하는 말을 듣고는 “섬망도 아니고 정신도 멀쩡한데 자꾸 이런 소리를 하니 정말 이상하다”며 당황해했다는 거죠. 얼마 후 악성림프종을 앓던 그 동기는 세상을 떠났고요.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흘러 뒤늦게 삶의 종말 체험에 대해 알게 된 윤 교수는 20여 년 전 임종을 앞두고 삶의 종말 체험을 하고 있던 동료를 위로해 주지 못한 데 대해 회한이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체험을 하는 임종기 환자들에게 더 세심한 배려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죽기 직전이나 죽는 그 시각에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친지 앞에 잠시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삶의 종말 체험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일은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 아니어서 베트남전 때 전사한 군인이 사망한 바로 그 시각에 미국 고향집의 가족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기록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내과 교수 한 분이 경험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가 저에게 비로소 털어놓는 거라 했는데요.
미국에 두 달간 단기 연수를 갔을 때인데, 새벽 2시경 숙소 문 바깥에 인기척이 느껴져 문을 열었더니 자신에게 복막투석과 심부전증으로 오랫동안 진료를 받아 온 환자가 서 있더랍니다. 이 환자는 “이제 다 나아서 아프지 않다”고 얘기했고, 교수는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밤이 깊었으니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그냥 인사하러 왔어요, 선생님.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만 갈게요”라고 말하고는 갔다는 거죠.
단기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이 환자의 의무기록을 살펴보니 그 사이 환자는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고, 사망 시각은 미국의 숙소로 환자가 자신을 찾아왔던 바로 그 시각이었습니다. 환자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을 진료해 주던 의사를 영혼의 형태로 만나보러 왔던 거죠.
삶의 종말 체험은 인종이나 지역과 관계 없이 임종이 임박했을 때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죽음은 인간 모두의 공통적인 일이어서 동서고금을 통해서 이런 현상이 관찰된다는 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죠.
근사체험과 더불어 삶의 종말 체험은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인간은 그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더 높고 큰 차원에 걸쳐져 있는 영적인 존재인 거죠. 이 같은 영적인 현상에 대해 알고 있으면 죽어가는 가족을 위축시키지 않고 격려하면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