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신간]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남궁예슬 기자
  • 승인 2025.06.2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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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저 | 창비 | 304p | 1만8000원
눈부시게 빛나는 딸에게 어느날 찾아온 양극성 장애

딸의 팔목에서 자해 흔적을 발견한 순간, 의사로서의 이성과 엄마로서의 마음이 동시에 무너졌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는 정신질환을 앓는 딸과 함께 7년을 버텨낸 엄마의 고백이자, 절박한 실전 조언서다.

김현아 한림대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명랑하고 밝던 둘째 딸이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한 후, 진단부터 치료, 재발과 회복까지 전 과정을 치열하게 기록했다. 환자 가족으로서 병원을 고르고, 약물과 전기충격요법 등 다양한 치료법을 시도하며, 장애인 등록과 공공 지원을 알아본 생생한 경험은 현실적이다. 자해·자살 시도에 직면했을 때의 대처 방법, 정신질환자와 효과적으로 대화하는 법, 신뢰할 수 있는 의료진을 만나는 기준까지 책은 철저히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 쓰였다.

저자는 정신과 질환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안고 갈 구조적 문제라고 말한다. 양극성 장애의 유병률은 미국에서 최대 6.4퍼센트에 이르지만, 한국은 0.2퍼센트로 보고된다. 진단 자체가 되지 않아 ‘숨은 환자’가 많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에 대한 무지와 낙인을 거두지 않는 이상, 고통받는 이들의 외침은 계속 묻힐 수밖에 없다. 특히 20대 여성과 청소년층의 자살·자해 시도가 폭증하고 있다는 통계는 이 경고에 무게를 더한다.

책은 정신질환과 정상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강조한다. 진단이 바뀌거나 증상이 겹치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고기능적 특성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성격장애’ 같은 낙인성 진단 대신 뇌질환으로 재명명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단순한 용어 변경이 아니라, 환자를 온전히 사람으로 대하자는 태도의 전환이다.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그걸 ‘숨길 일’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일’로 만드는 데 이 책이 나침반 역할을 한다. 정신질환자 가족으로서의 절망과 혼란을 숨김없이 털어놓은 이 기록은 공감과 정보, 희망이라는 세 겹의 메시지를 전한다. 어떤 이에게는 생존의 실마리가, 어떤 이에게는 편견의 벽을 넘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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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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