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의사란 무엇인가’
[신간] ‘의사란 무엇인가’
  • 남궁예슬 기자
  • 승인 2025.05.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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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관 저 | 히포크라테스 | 384p | 1만8000원
20년 의사생활분투의 과정, 그리고 가장 뜨거운 만남의 기록

“의사는 힐러가 아니라 전사다”

의사 양성관은 자신의 20년 진료 현장을 돌아보며, 더 이상 이상만 좇을 수 없는 ‘현실의 의사’가 어떤 존재인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계형 의사의 유쾌하고도 처절한 고백은,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의사란 무엇인가”에 정면으로 맞선다.

에세이 ‘의사란 무엇인가’는 양성관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겪은 의사의 일상을 시간순으로 풀어낸 기록이다. 해부학 실습부터 사망진단서 작성까지, 20여년간 20만명을 진료하며 겪은 생생한 현장 경험이 총 5개의 시점으로 나뉘어 펼쳐진다. 책은 아침 7시 ‘떨림’부터 낮 12시 ‘번민’, 오후 4시 ‘고민’, 저녁 8시 ‘현실’, 새벽 2시 ‘진심’까지, 진료실 안팎에서의 생생한 감정과 고민을 밀도 있게 다룬다.

저자는 이상적인 진료를 “환자당 15분 진료”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시간당 20명 진료에 쫓기는 구조라고 고백한다. 실제 한국의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 14.7회로 OECD 평균의 2.5배이며, 의사 1인당 연간 진료 환자 수는 6989명으로 세계 1위다. 미국 가정의학회가 제시한 하루 적정 외래 환자 수는 24명인데, 한국에서는 하루 80~100명까지도 본다. 낮은 수가와 불합리한 수익 구조는 검사 중심 진료를 부추기고, 의사들은 환자의 이야기보다 수치를 더 먼저 본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의사는 때로 전사처럼 싸워야 한다. 응급실에 몰려드는 환자들, 수가와 소송 부담에 환자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수용 불가 사태는 이미 일상화됐다. 응급의학과, 외과, 산부인과 등 ‘바이탈과’가 몰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안전한 선택은 환자를 보지 않는 것”이라는 씁쓸한 문장은 이 시스템이 얼마나 생명을 우선하지 않는지를 보여준다.

책에는 진료실에서 마주한 수많은 환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진단을 거부하고 돌아가는 환자, 두려움을 애써 감추는 보호자, 사망 선고를 앞두고 마지막 손을 맞잡는 가족의 모습까지. 의사는 질병만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까지 마주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저자는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사람을 설득하는 일은 암을 도려내는 수술보다 어렵다”는 고백처럼, 책은 의학이라는 기술보다 ‘마음’의 기술이 더 절실한 순간들을 보여준다.

양성관은 자신을 ‘생계형 의사’라고 말한다. 우아한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매출과 계약서를 걱정하고, 민원과 의료소송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환자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 하고, 그들의 삶을 상상하려 애쓴다. 책 전반에는 자기연민 없이 유쾌하고 담백하게 현실을 관통하는 저자의 시선이 담겨 있다.

‘의사란 무엇인가’는 단순한 의학 에세이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을 진료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을 견디고 성장해온, 한 인간의 기록이다. 흔들리면서도 하루를 살아낸 한 의사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비단 의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삶의 전장 한가운데서 버텨온 한 의사의 이야기, ‘의사란 무엇인가’는 단지 의사에 대한 책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좋은 의사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물음에 당신만의 답을 찾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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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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