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졸음 뒤에 숨은 병, 기면병의 모든 것을 밝히는 생생한 안내서
“점심만 먹으면 눈꺼풀이 천근만근, 혹시 나도 병일까?”
기면병은 단순한 졸음이 아니다. 낮에 졸릴 수밖에 없는 ‘희귀 수면 질환’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졌다.
수면의학 전문가 홍승철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김예영 수련의가 공저한 ‘나는 왜 졸릴까?’가 출간됐다. 기면병에 대한 국내 첫 대중서로, 25년 이상 수면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해온 저자의 임상 경험과 기면병 환자들의 생생한 수기를 엮었다.
이 책은 낮졸림증이 단순한 피로가 아닌 병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기면병의 증상과 진단, 치료, 사회적 인식까지 폭넓게 다룬다. 특히 국내 기면병 환자가 약 2만명으로 추산되지만, 실제 진단받은 환자는 절반도 되지 않는 1만명 이하에 불과하다는 통계는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진단의 어려움과 사회적 오해로 치료가 지연되기 쉬운 질환이라는 점도 짚는다.
기면병은 10대에 주로 발병하며, 원인으로는 ‘오렉신’이라는 각성 유지를 돕는 신경전달물질의 부족이 꼽힌다. 책에서는 오렉신의 역할과 기면병의 발생 기전을 수면 메커니즘과 함께 상세히 설명해 수면의학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진단을 받기까지 5년, 10년씩 걸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만큼, 독자들이 자신의 증상을 자가진단해볼 수 있도록 구성된 점도 눈에 띈다.
기면병 외에도 낮졸림증을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수면질환이 소개된다. 특발성 과다수면증,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클라인레빈 증후군 등 유사 질환들과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며 진단 혼선을 줄이고자 했다.
책의 강점 중 하나는 환자들이 직접 작성한 수기를 바탕으로 실제 기면병 환자의 삶을 조명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휠체어를 탄 느낌이었다”는 표현처럼, 환자들은 졸음뿐 아니라 주변의 몰이해와 편견 속에서 이중고를 겪는다. 수기에는 병을 숨기느라 애썼던 학창시절, 치료와 함께 회복해가는 삶의 궤적까지 진솔하게 담겨 있다.
진단 이후 치료와 예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빠짐없이 담겼다. 약물치료부터 생활습관 관리, 사회적 제도 활용 방법까지 실제 환자와 보호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한다. 특히 “약은 평생 먹어야 하나요?” 같은 질문에 대한 챕터 구성은 독자들이 현실적인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이 책은 기면병의 의학적 이해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학술적 내용도 심화 수록했다. 최근 국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 신약 ‘오렉신 작용제’의 국내 연구책임자로 활동 중인 홍승철 교수의 연구 경험이 반영돼 최신 치료 흐름도 소개된다.
‘나는 왜 졸릴까?’는 “왜 이렇게 졸릴까”라는 의문에 답을 찾고 싶은 모든 이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단순한 피로로 여겼던 증상이 실은 치료 가능한 질환일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독자에게 새로운 통찰을 줄 것이다. 졸음을 이유로 스스로를 탓해온 이들에게 이 책은 분명 “그게 당신 탓이 아니었다”는 가장 따뜻한 확신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