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준래·양지욱·심재옥·이병우·김성민 원장···“더 고령이 돼도 수련 멈추지 않고 계속할 것”
11월 중순 어느 날 저녁,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존 프랭클 주짓수 센터에선 20여 명의 수련생들이 운동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꽤나 쌀쌀해진 날씨였지만 기자가 그곳을 찾았을 당시 체육관 안은 그들이 내뿜는 열기로 인해 후끈후끈했고 땀 냄새가 가득 메웠다.
이들은 주짓수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한 이수용 관장의 지도에 따라 간단한 준비운동부터 시작해 각종 체력운동과 기술연습에 이어 스파링을 했다. 주짓수나 유도, 레슬링 등 그래플링 운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바닥을 뒹굴며 처절하게 ‘싸움’을 하는 것만 같겠지만 가드(하위 포지션에서 상대의 가드 패스를 저지), 가드패스(가드를 뚫는 행위), 포지션 선점(상대의 가드를 뚫은 후 제압할 수 있도록 유리한 포지션 선점), 가드 리커버리(포지션 선점 위기에 처하다 다시 가드 포지션으로 복귀), 이스케이프(포지션을 선점당한 불리한 상황에서 탈출), 스윕(하위 포지션에서 상위 포지션으로 전환), 상체 관절기 및 조르기와 하체 관절기 등 다양한 주짓수 기술이 쓰였다.
이날 서로서로 몸을 부딪치며 땀을 흘리는 이들 중엔 5명의 40~50대의 ‘노장’ 의사들도 있었다. 노준래 불광탑재활의학과의원 원장(서울특별시의사회 정책이사), 양지욱 의정부 성모안과의원 원장, 심재옥 철원군 강남아이원안과의원 원장, 이병우 비뇨의학과의원 원장, 김성민 성남 서울허브치과의원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의대 선후배나 공중보건의 등의 인연으로 만난 이들이 함께 몸을 부딪치며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5명 모두 한날에 운동을 나오는 날은 흔치 않지만 이날은 오랜만에 다 같이 함께 운동하며 우의를 다졌다.
“운동 꾸준히 열심히 하세요.” 어떤 질환이든 의사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실제로 의사들 중 상당수도 바쁜 시간을 쪼개 운동을 열심히 한다. 그러나 골프, 등산, 수영, 러닝, 웨이트 트레이닝 등 부상 위험이 비교적 크지 않은 운동을 많이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격렬한 운동을 한다면 테니스, 탁구 등 몸을 부딪치지 않는 네트 스포츠이거나 축구와 농구 등의 구기 종목 정도일까? 상대방과 몸을 완전히 밀착해 압박하며 조르고, 누르고, 비틀고, 뒤집고, 꺾어야 하는 ‘야성미’ 넘치는 주짓수 같은 격투기 운동을 하는 의사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20~30대도 아닌 중장년의 의사들이 주짓수를 수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작은 가톨릭의대 농구 동아리에서 비롯됐고, 그 중심엔 이병우 원장(가톨릭의대 98학번)이 있었다.
의대생 시절 함께 의대 농구 동아리에서 이병우 원장과 양지욱 원장(가톨릭의대 93학번), 심재옥 원장(가톨릭의대 94학번)은 함께 농구를 하다가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다 10여 년 전 이병우 원장이 공중보건의 시절 만난 김성민 원장(단국치대 99학번)과 함께 가장 먼저 주짓수를 시작했고, 이후 이 원장의 권유로 양지욱 원장이 6~7년 전, 심재옥 원장이 4~5년 전에 주짓수를 시작했고, 이들과 공보의 시절 인연을 맺은 노준래 원장(연세원주의대 93학번)이 약 1년 전에 주짓수를 시작했다고 했다. 노 원장이 이들 중 가장 최고령이지만 주짓수 경력으로는 제일 후배인 셈이다.
■이병우 원장 “주짓수를 시작한 후 ‘신세계’를 맛보았습니다.”
이병우 원장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주짓수 도장을 처음 나갔던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전에도 복싱과 레슬링 등을 몇 년 했을 정도로 격투기를 좋아하지만 주짓수만큼 자신에게 맞는 운동은 없었다고 했다. 얼마나 주짓수가 잘 맞았는지 주짓수를 시작하고 나서 복싱을 할 때보다 상대방의 주먹이 더 잘 보이고, 심지어 그전에 갖고 있던 근골격계 질환 증상이 더 좋아지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다. 10년 이상 격투기를 수련한 덕분인지 그의 인상과 덩치는 왠지 흰 가운의 의사라기보다는 마치 폭력조직의 보스나 프로레슬링 선수를 연상하게 하기도 했다. 그 포스에 걸맞은 실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는 퍼플벨트다. 퍼플벨트는 최소 7~8년 이상을 꾸준히 수련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딸 수 있다.
평소 종합격투기를 수련하며 주짓수를 조금씩 함께 배웠던 기자도 이날 수업 시간에 운동을 함께하면서 이 원장에게 대결을 신청했다. 그 때만 해도 기자도 나름 격투기 유단자로서 “어느 정도 해 볼 만하겠다”라는 왠지 모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강한 힘을 바탕으로 각종 화려한 주짓수 기술을 걸어오는 그를 당해 내지 못하고 별다른 기술을 걸어보지도 못한 채 무려 3~4번이나 탭을 치며 기권을 선언하고 말았다. 운동을 마치고 가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좌절감에 “원장님, 저한테 왜 그러셨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래도 많이 봐 드린 것”이라고 했다. “역시 주짓수를 전문으로 수련하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이 원장은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 주짓수를 통해 진료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날리고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계속 10~20년 이상 주짓수를 열심히 수련해 ‘마스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성민 원장 “저도 시작은 10년 전에 했지만 실력은 그에 못 미칩니다.”
김성민 원장은 이병우 원장과 함께 주짓수를 처음 시작했고 그 역시 현재 ‘퍼플벨트’이지만 자신의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면서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중간에 2~3년 쉬어서 이 원장보다 실력은 못하다고 했지만 그 역시 ‘퍼플벨트’는 퍼플벨트였다. 현역 종합격투기 선수 중에도 퍼플벨트가 상당수 있다.
특히 김 원장은 경량 체급으로서 빠른 몸놀림이 장기로 보였다. 아쉽게도 이날 기자가 김 원장과 대련할 기회는 없었다. 더구나 개인 사정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날 운동이 끝나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좋아하는 술도 마시지 않은 그다. 주짓수 외에 골프와 농구 등 여러 운동을 즐기는 그는 “다음에 컨디션이 좋을 때 기자님과도 한번 붙어보고 싶다”며 “운동은 다 너무 즐거운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다”고 했다.
■ 양지욱 원장 “처음엔 병우 따라 나왔는데 어느새 주짓수의 매력에 빠져버렸네요.”
양지욱 원장은 6~7년 전 의대 후배인 이병우 원장의 손에 이끌려 주짓수 체육관에 처음 나왔다고 했다. 처음엔 그저 유행하는 주짓수를 체험이나 해 보자는 생각에 나왔지만 어느새 주짓수에 빠져버려 이병우 원장에게 “언제 또 주짓수를 갈 거냐”고 물어보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고 했다. 정식으로 주짓수 체육관에 등록을 하고 운동을 하면서 현재 50대에 접어든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투혼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현재 블루벨트이지만 그도 앞으로 계속 꾸준히 수련해 곧 퍼플벨트에 도전하려 한다고 했다.
■심재옥 원장 “저는 힘만 있고 별다른 기술은 없습니다”라고 했지만...
심재옥 원장은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신장과 다부진 체구를 자랑하는 거구다. 체육관에 외국인 한 명을 제외하곤 심 원장이 가장 최장신이다. 그에 걸맞게 힘도 엄청나다. 격투기는 어느 종목보다 체격조건과 힘이 중요하다. 심 원장의 유전자는 일찌감치 ‘격투기 선수’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병우 원장에게 3~4차례나 ‘털렸던’ 기자에게 심 원장이 곧바로 스파링을 하자고 제안했다. “연세도 있으시니 봐 드리자”라고 생각했던 건 기자의 기우였다. 결과는 처참했다. 시작하자마자 심 원장은 압도적인 체격을 앞세워 기자에게 가드패스를 시도해 방심하고 있던 기자는 그대로 밑으로 깔려 포지션을 선점당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심 원장의 계속된 암바나 기무라 등의 관절기 공격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던 기자는 결국 별다른 반전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나중엔 관절기도 필요없이 190센티미터의 체구로 누르기에 이어 조르기로만 압박하는 심 원장에게 기자는 탭을 치며 기권을 했다. “아무리 스포츠이고 취재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오늘은 의사들에게 이렇게 돌아가면서 얻어맞는구나”라고 자조하다가 서글픈 마음도 잠시 들었다. 이날 심 원장은 그의 힘만으로 충분히 그의 위력을 입증했다. 심 원장을 지도하는 이수용 관장은 “실제로 심 원장은 운동하는 사람들이 봐도 타고난 장사로서 힘이 매우 좋고, 무엇보다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했다. 타고난 장사인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심 원장 역시 현재 블루벨트로 곧 퍼플벨트에 도전할 예정이다.
■노준래 원장 “축구·농구보다 부상 적어...주짓수하며 자신감도 갖게 됐다.”
5명의 의사들 중에선 최고령(?)인 노준래 원장은 이들 중 가장 늦게 주짓수에 입문해 이제 수련한 지 1년쯤 됐다. 사실 40대의 나이에도 격투기를 하기란 쉽지 않은데, 50대의 나이에 격투기를 처음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는 어렸을 적 많은 사람들이 배우는 태권도도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격투기 운동 경험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노 원장은 의사로서 남다른 끈기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로 활동하는 등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평소 운동을 매일같이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한 덕분에 주짓수를 하기에 충분한 체력과 운동신경을 갖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즐기던 스키는 최근 동호회 대회에서 2위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고, 이외에도 사이클, 러닝, 골프, 수영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겨하고 있다. 이날 주짓수 수업에서도 20~30대 수련생들 못지않은 체력과 끈기 그리고 열정을 보여줬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노 원장은 “주짓수를 해보니 안전 수칙만 잘 지키고 지나치게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농구나 축구보다 부상이 적고 신체 단련에 효과가 좋은 운동 같다”며 “특히 우리 체육관은 스파링 위주로 ‘죽기 살기’로 운동하는 다른 체육관과 달리 자신의 수준에 맞게 다치지 않고 운동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짓수를 시작하기 전에는 ‘만약 누군가 나를 물리적으로 공격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두려움이 가끔씩 들 때도 있었지만 시작한 이후에는 ‘주짓수로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감도 생겼다”라며 “주짓수 기술이 성공할 때는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 같은 재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수용 관장은 “격투기를 하기엔 ‘고령’이라고 할 수 있는 40~50대의 원장님들이 오랫동안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꾸준히 수업에 나와 별다른 부상도 입지 않으며 열심히 수련하는 모습으로 인해 저뿐만 아니라 다른 관원들에게도 많은 동기 부여를 일으키고 있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수련해 본인의 건강을 챙김은 물론이고 주짓수가 가진 힘과 매력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