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문학강의 ⑤] “의대 증원, 고시 출신 관료들의 의학교육에 대한 무지에서 나와”
[의료인문학강의 ⑤] “의대 증원, 고시 출신 관료들의 의학교육에 대한 무지에서 나와”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4.09.25 1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복규 교수, ‘의대생·전공의와 함께하는 서울시의사회 의료인문학 강좌’ 5번째
독학·1회로 끝나는 과정이 아니라 평생 지속되는 전문직 정체성 발전
현재도 기초·임상·예산 부족 등 문제 많아···교육 마치면 적정 보상 따라야

정부의 급격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 등 고시 출신 관료들의 의학 교육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정책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의학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인식하고 적절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 황규석)가 주최한 ‘의대생·전공의와 함께하는 서울시의사회 의료인문학 강좌-의사의 길을 다시 묻다’ 5번째 강연이 지난 24일 오후 7시30분 서울시의사회관 5층 강당에서 진행됐다. 

이날 연자로 나선 권복규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의학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의학 교육은 고시처럼 대학이 아닌 학원에서 할 수 없고, 독학이 가능하지도 않으며, 반드시 적정한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또 “1회로 끝나는 과정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지속되는 전문직의 정체성 발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사를 양성하는 의학교육은 선배와 스승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본의학교육(의대), 졸업후의학교육(전공의), 평생전문직업성발달(연수, 보수교육)로 평생 동안 이어진다”며 “의사가 된 이후에도 쏟아지는 새로운 의학지식을 익히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자신이 속한 국내의사단체를 넘어 전 세계 의사들이 지켜보는 감시와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빠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고 모든 교육의 패러다임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보다는 독학으로 공부한 사시나 행시 출신의 대한민국의 관료들이 이러한 의학교육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불가능하고 과격한 정책이 나온 것”이라며 “이렇게 부실한 의학교육이 이루어져서 의사가 배출되는 것은 마치 차선변경이나 신호대기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운전면허증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의학교육의 특징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꼽았다. 

권 교수는 “의학교육은 맞춤교육, 소규모 교육, 팀어프로치 등이 필요하다. 강의 외에도 PBL, TBL, 실습, 팀플, 실험 연구, 다양한 시험 및 평가, 자필시험, CBT. UBT, OSCE, CPX 등 다양한 교육방법이 사용된다. 인문학 교육처럼 강의실 강의만으로는 교육이 결코 가능하지 않고 수시로 학생 성취를 일일이 파악·평가해야 한다”며 “이렇게 교육을 받아도 환자를 진료하기는 매우 불안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동료 평가가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의학교육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부실한 기초교육 △기초의학 교수 태부족 △기초의학 교수 편차(교수 1인당 학생 12.0, 호남권의 경우 24.7명) △MD기초의학 교수 부족 △교육지원 및 보조인력의 부족(조교, 기술원, 행정요원) △예산 및 지원 부족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특히 임상교수들이 진료하는 환자가 너무 많아 학생 교육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현재 임상 교수들의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이 76~80시간에 이른다. 지금의 의료시스템, 수가체계, 환자분포로는 제대로 된 학생 교육이 불가능하다”며 “대학병원은 교육·연구에 특화하고 진료는 다른 1·2차 병원이나 전문화된 병원에 맡기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했다.

이렇게 열악한 여건에서도 한국의학교육이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으론 가장 먼저 ‘우수한 자원’을 꼽았고 이외에도 결속력있는 동기문화, 교수 혹은 인기과에 대한 선망 등을 제시했다.

권 교수는 “한국 의대생들의 성실함과 학습능력이 최상위급이며 동아리, 족보, 스터디클럽 등이 활성화돼 여기서 제외되면 학습부진으로 이어진다. 또 졸업성적이 향후 진로에 많은 부분을 좌우하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어려운 교육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의사가 되면 사회의 감사와 존경 그리고 이에 따른 적정한 보상이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어서인데,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무작정 의사를 늘려 낙수효과만 바라며 부실한 의사를 양성하려 하고 있다”며 “부자까지는 아니라도 노력에 따른 마땅한 보상을 받으며 여유 있게 살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다른 우리나라 의학교육 부실의 원인으로 대학병원에서 학생이나 전공의의 참여를 환자들이 매우 싫어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앞으로 학생이나 전공의 진료에 대해서는 할인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권 교수는 “공공의료기관이 중심인 유럽국가에선 진료 과정에 학생이 참가 또는 참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특히 스웨덴의 경우 지금도 초진은 학생들과 인턴이 맡고 있다. 미국도 사립병원이기 때문에 무료진료의 경우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추석 연휴에 정부가 방문 자제 캠페인을 하니까 실제로 응급환자가 30%가 줄었다는 것에 놀랐다”며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전공의나 학생 진료는 할인해 주고 전문의 진료는 더 받는 정책이 가능할 것이다. 의학연구 대상자도 헌혈이나 장기기증자와 마찬가지로 공익을 위한 헌신에 대한 예우를 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