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예술 통해 도움 필요한 분들에게 더 큰 쓰임받기를”
“의학과 예술 통해 도움 필요한 분들에게 더 큰 쓰임받기를”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4.06.10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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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함수연 강북삼성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서울시의사회 대의원)
피아니스트 꿈꾸던 예원학교 졸업생···“봉사활동 주력하다 최근 다시 연주 시작”

의학과 예술은 얼핏 생각하기에 상반된 분야로 여겨진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의외로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은 분야인 것 같다.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다 현재는 의업의 길을 걸으며 의학과 예술 두 분야에서 가진 재능을 모두 ‘봉사’를 통해 널리 쓰임받고 있는 함수연 강북삼성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사진, 서울특별시의사회 강북삼성병원 특별분회 대의원>의 말을 듣고 보면 더욱 그렇다.

함 교수는 최근 모교인 예원학교로부터 올해 ‘예원을 빛낸 사람’으로 선정돼 개교 57주년 기념패를 수상했다. 함 교수는 예원학교의 제7회 졸업생으로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강북삼성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2013년 사단법인 이노비 이사, 2022년 한옥문화원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봉사활동에 적극 나서 모교의 명예를 빛낸 공로를 인정받아 패를 수상했다.

국내 최초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반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 수상을 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등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천재 예술가들을 길러 낸 국내 최고 예술영재 중학교인 예원학교에서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지 않는 졸업생인 함 대의원에게 기념패를 수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함 교수가 의학과 예술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한 것이 널리 인정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함 교수는 “전문 예술인이 아닌 제가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아마 지속적으로 음악을 통한 나눔의 실천을 하고 작은 음악회를 기획하면서 문화 예술이 선사하는 기쁨을 많은 분들과 나누는 기회를 제공한 점, 또 의료봉사와 문화의 접목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자 한 점에 대한 격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노비는 지난 2006년 뉴욕에서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로 전문 뮤지션들의 음악회와 문화 프로그램 등을 개최하고 있다. 함 교수는 이노비의 한국지부인 이노비 코리아가 지난 2013년 설립될 때부터 사업이사로 활동하면서 이노비가 많은 병원들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했다.

또 대한영상의학회 내 의료봉사회에서 간사와 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지멘스 헬시니어스에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무료 이동 건강검진 서비스 ‘모바일 클리닉’에서 진행하는 초음파 검사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지난 2022년 가을에는 함 교수가 사업이사로 있는 한국여자의사회 주관으로 미혼모와 아이들을 위한 의료상담을 진행하고 상담 후에는 작은 연주회를 소극장 산울림에서 선사하기도 했다. 

함 교수는 “사실 저보다 더 오랫동안 의료 봉사를 꾸준히 해 오신 분들이 많지만 저는 영상의학과 의사로 영상의학회 내에 의료 봉사회의 일원으로 지난 2012년부터 지멘스 모바일 클리닉을 책임을 갖고 미력이나마 지속적으로 한 것이 특히 인정을 받은 것 같다”며 “앞으로도 봉사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면서 짧게라도 소통할 기회를 얻고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문화 교육, 그림 그리기 등도 함께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의학과 예술은 사람이 중심이 되고 섬세한 면이 양쪽에 다 있어서 서로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음악의 경우 섬세함을 살려 그 곡 하나하나를 해석해야 하는데,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할 때도 환자 한 명 한 명을 진단, 치료, 추적 관리하는 과정이 매우 비슷하다”며 “제 전공인 영상의학의 경우에도 처음에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예술봉사의 경우에는 다른 봉사 활동에 비해 봉사를 받는 이뿐만 아니라 연주가 자신도 ‘힐링’을 받을 수 있는 효과가 크다고 했다. “연주자 자신도 힐링의 시간을 갖게 되고 동시에 여러 사람들과 기쁨의 순간을 나눌 수 있는 점, 시간이 흐른 후에도 기록된 영상을 보고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점이 예술 봉사의 장점”이라고 했다. 이런 장점을 살려 병원에서 연주회를 열기 어려웠던 코로나19 유행 기간 중에는 대신 연주 영상을 녹화하고 병원 대형 스크린에서 영상으로 환자분들과 선보이는 기회를 만들었다고 했다.

강북삼성병원 원내에 전시된 미술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함수연 교수. 이 중 한 작품(사진 왼쪽)은 그의 어머니가 기증한 작품이다. 

의사가 된 그가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꿔 예술 영재 중학교에 진학했던 계기는 무엇일까? 사실 예원학교 진학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함 교수의 어머니가 어렸을 적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그의 재능을 살리길 원해서 우연하게 이루어졌다고 했다. 마침 어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 분의 딸이 예원학교 입학시험을 본다고 해서 함께 시험을 보기로 하고 한 달여 동안 하루에 6~7시간씩 연습을 한 끝에 진학하게 된 것. 함 교수는 “그런데 막상 학교에 입학하니 예술적으로 우수한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전문 피아니스트가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다시 학업의 길을 선택하게 돼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가 된 그에게 예술은 여전히 그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의학과 예술의 ‘가교’ 역할을 통해 봉사에 집중하던 그였지만 최근에는 다시 연주도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해 4월 15일 성균관의대 교수 협의회와 유명 음악가들이 주축이 돼 ‘작은 음악회’를 개최했는데 이날 함 교수는 피아노 연주자로 나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 소나타 ‘비창’의 2악장을 선보인 것. 

예원학교 졸업 이후로 피아노를 전혀 연주하지 않았기에 연주 제안을 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지만 당시 만 59세로 인생 3막을 준비하는 시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며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고. 음악도였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 바쁜 병원 일정에도 불구하고 짬을 내 연구실에 디지털 피아노를 갖다 놓고 매일 1시간씩, 주말에는 2~3시간 규칙적으로 연습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지금도 매일 30분은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지난 4월 이노비 병원 연주회에서 예원학교 후배인 첼리스트 부윤정 씨와 이중주로 편곡한 비창 2악장을 다시 협연하기도 했다. 

함 교수는 “30여 년간 피아노를 열어보지도 않다가 다시 시작하고 보니 집중력이 떨어져 어린 시절 연습할 때보다 두세 배는 더 필요한 것 같다”며 “매일 규칙적인 일상을 위해 좀 더 시간을 짜임새 있게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최애곡이자 예원 1학년 첫 향상음악회 연주 곡이기도 했던 비창을 연주하면서 다시 예원학교 학생 시절로 회귀하는 것 같은 시간이동을 가끔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아노곡의 매력을 다시 느껴 클래식 피아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피아노 연주곡의 매력에도 다시 빠져 현재는 녹턴(야상곡)을 위주로 쇼팽의 곡들을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의사로서 바쁘게 활동하며 음악을 잊고 살았던 그였지만 지금은 다시 음악에 푹 빠져 살며 감수성이 충만해진 것 같다. 지난 4월 20일에는 북촌 한옥청에서 제1회 한옥문화원 음악회를 준비했는데 “대청에 앉아 처마 물받이를 따라 흐르는 빗소리가 가곡 첫사랑과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이중주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앞으로 5년 후면 교수 정년을 맞게 되는 함 교수는 “5년 후에도 연주회를 원하는 많은 병원들이 적절한 연주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이노비(www.eonb.org)를 강태욱 대표와 함께 잘 이끌어 가고 싶다”고 했다.

또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난 지 100일이 넘어 너무나 가슴이 아픈 상황에 한가하게 예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지 고민을 하기도 했다”며 “하루빨리 사태가 이로운 방향으로 해결돼 제가 가진 ‘달란트’가 부담없고 편안하게 더 쓰임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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