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독에 물 붓지 말고 수리하는 노력과 비용 필요
깨진 독에 물 붓지 말고 수리하는 노력과 비용 필요
  • 의사신문
  • 승인 2024.04.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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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개선 위해 의사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환자 이익 최우선으로 하는 모습 보여야
의정 대화 재개되면 자신의 이익보다 의료계와 국민의 전반적 이익 위한 정책 수립에 힘써야

MZ 의사 투쟁에 선배의사가 보내는 메시지 ②
2024년 의료대란에 비춰 본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손용규 서초구의사회장(지에프소아청소년과의원장)
손용규 서초구의사회장(지에프소아청소년과의원장)

 1987년 6월 “직선개헌 쟁취하여 민주정부 수립하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명동일대서부터 온 나라에 뜨거운 데모의 불길이 이어졌다.

 친구들은 시위대와 함께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홀로 이방인처럼 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이 있었다. 내게 급한 불은 민주주의보다 대입 합격이었다. 어렵사리 의대에 입학, 의사가 되어 무사히 전문의를 따고 공보의로 복무하던 2000년, 나는 또다시 이방인이 되었다.

 2000년, 의약분업안이 포함된 약사법 시행을 앞두고 의사들이 일어났다. 이들이 약사의 임의조제를 완전 금할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감행하자 대한민국의 의료가 얼어붙었다. 이에 나를 포함한 공보의들은 보건소와 1399로 파견되어 의사들의 빈자리를 메꿨다.

 분업 직후 2021년,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적자 폭이 4조 원을 넘어가며 파산 위기에 몰렸다. 이 결과 의사들은 반정부 세력화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15년 여가 흘러 ‘문재인 케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정부정책과 팽팽히 맞섰다.

 이후 △2014년 원격의료 반대 운동 △2020년 의료정책 추진 반대 집단행동 △2023년 간호법 및 의료인 면허 취소법 반대 투쟁 △2024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시행 및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 반대 사직 행렬까지 끝없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것은 언제나 새우뿐, 언제나 그러하듯 의료의 공백은 공보의와 군의관의 차출로 ‘발등의 불’만 끄는 실정이다.

 지난 2월20일, 전공의들의 사직을 필두로 전국 의대생이 동참, 나아가 이제는 대학교수들마저 사직 대열에 합류하면서 의료 파행은 날이 갈수록 뜨겁게 불거지고 있다. 지금까지 의료계는 4차례의 거대 집단행동을 거행했지만 이번 사태는 가장 위험한 난제로써,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그 후유증은 깊은 화상자국처럼 남을 터이다. 그 이유로,

 첫 번째, 이번 사태가 다른 직역들과 연관되어 있지 않아 단순하고 쉬워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알면 다르다. △무분별한 의대 증원 △미흡한 정책 재정 지원 △혼합진료 금지로 비급여 진료의 말살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위헌적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등 전례 없이 복잡한 문제로 얽혀 있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실패한 정책의 재탕’, ‘비상식적 정책’ 등이라 꼬집었다.

 두 번째, 외로운 싸움이라는 것이다. 2000년에는 정부에 대항해 약사 집단과 시민단체라는 ‘동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형국으로, 정부는 강공으로 대처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총파업 일주일 만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의사협회와의 합의 이후 관련 고발을 모두 취하했던 이전 정부와는 전혀 다른 태도다.

 특히 현 대통령 집권 초기 화물연대 파업 대응에서 거머쥔 승리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불통 정권’이라는 수식어가 사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세 번째, 대통령에게는 ‘의료인 면허 취소법’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이는 2023년 국회를 통과, 의사들이 파업을 한다면 업무개시명령에 따라야만 하고 지난해 11월 20일부터는 ‘금고 이상 선고 시 면허 취소’령이 시행되면서 정부의 강경 노선에는 자신감이 붙었다.

 정부는 의료법 제89조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와 더불어 ‘의료인 면허 취소법’에 근거, 의사들에게 목줄을 채웠다. 때문에 전공의들은 법적 처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낮은 최후의 보루로 ‘사직’을 감행, 더욱 은밀한 방향으로 투쟁함으로써 해결도 더욱 복잡해졌다.

 네 번째, 협상의 주체가 없다. 지금까지 사태를 살펴보면 ‘대한의사협회’를 주축으로 파업을 주도, 협상의 주체로서 정부와 협의했다. 지난 2020년에는 ‘젊은 의사 비대위(의대생, 전공의, 전임의 구성)’를, 의사협회는 ‘범의료계 투쟁 특별위원회(이하 범투위)’를 결성해 의사 회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올해는 단위 병원별로 전공의 개개인 중심으로 ‘각개전투’ 형태의 사직 투쟁이기에 ‘대화의 대상’이 사라지고 의사협회와도 단절된 채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하나는 지난 2020년에 최대집 의사협회 회장은 합의 없이 졸속으로 9.4 의정 합의를 했는데, 이 결정은 당시 학생이었던 전공의들에게 아직도 앙금으로 남아 있다는 것. 두 번째로 지금 전공의들의 세대적 성향이다. 이들은 공정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MZ세대(20대 후반~30세 전후)로서 이에 따른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언제든 일을 그만둘 준비가 되어있다는 주장도 있다.

 다섯 번째, 이번 사직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이다. 현 사태는 다른 때보다 의사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다. 의사의 시선에서는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여론을 사기 위한 ‘투표 몰이’라는 입장이지만 이에 공감하는 국민이 적다는 것이 한계다. 특히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고 환자와의 소통이 우선시 돼야 했었는데 이 과정이 취약했다. 정부는 이를 역이용, 의사들을 악마화하여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갔고 이 전략이 여론을 움직였다는 점이다.

 2000년의 의약분업은 약사들에게 조제비를 지불함으로써 의료비 상승을 국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으며, 2020년의 파업은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해 ‘덕분에 챌린지’ 캠페인을 통해 의료진들을 격려하는 중요한 시기였기에 국민들의 반감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따라서 여론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습을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의료대학 정원 증원이 비과학적 결정임을 입증하는 기회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상황은 위기의 절정에 이르렀으며, 빠른 대응이 없다면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다는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있다. 정부는 현재 상황을 직시하고 올바른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깨진 독에 물을 붓는다고 독이 가득 차지 않는다’는 속담과 같이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깨진 독을 수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비용이 필요하다. 부디 물을 파는 사람에게 속지 않기를 대국민에 호소한다. “독을 수리하는 비용이 물값보다 저렴하다는 사실”을.

 ‘싸고 좋은 것’은 없다. 이 사태를 지금까지 비정상적으로 유지돼왔던 한국의료를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공감해 주고 전 세계적 추이가 OECD 평균 의료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조금 더 불편하고 세금을 더 내는 방법 외에는 이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의료진도 ‘안되니까 포기한다’가 아닌 ‘바꿔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정부와의 대화가 재개되면 의료계의 모든 구성원이 모두 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익보다는 의료계와 국민의 전반적인 이익을 위한 정책 수립을 위해 힘써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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