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현명한 정부라면 방침 재검토‧유예해야
MZ 의사 투쟁에 선배의사가 보내는 메시지 ⑤
2024년 ‘의정갈등’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두 달 넘게 지속된 전공의 사직투쟁과 의대생 동맹휴학투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의사집단행동’이라고 부르고 있고 누구는 의사파업투쟁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의정갈등’이라고 쓰고자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시스템과 그 결과(성과)에 대해 해석이 다르고 해결방법에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근본이라서 그렇게 부르고 싶다.
4월 10일은 국회의원 선거일. 전공의 수련과 의료 정책 관련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인을 만나러 병원에 찾아갔다. 전공의 대신 당직을 서고 있었다.
결론이 없는 대화였지만, 희망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정부가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렸다. 긴 투쟁은 결국 전공의들에 깊은 상처를 주었고, 많은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
특히 중증, 응급 환자를 많이 봐야 하는 바이탈 과의 경우 더 마음이 떠났다. 전공의들에게 어떤 수련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인데, 교수들은 너무 지쳐서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댈 힘도 없다.
과거부터 의정갈등은 항상 의사를 악마화 해왔다. 2000년에는 의사들을 약가마진이나 추구하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만들었고, 2024년에는 대통령의 입을 통해 의료개혁을 거부하는 집단 카르텔이라는 말까지 듣고 말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위 ‘명의’가 가득한 빅5 병원들이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의사들은 깊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의대생이나 젊은 의사들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 돌아올 기약이 없다.
그간 전공의나 전임의에게 의존해 왔던 수련병원 교수들은 원래 해오던 일에 당직까지 서면서 지쳐가고 있다. 이들은 병실 환자에게 레빈 튜브를 넣어줄 때나 실, 바늘이 보이지 않아 상처 봉합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타’를 느낀다고 했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예측할 수 없는데 정부는 사태를 수습할 의지도, 2000명 의대 정원 증원 방침을 철회할 생각도 없다. 매일 의료개혁이란 이름으로 성숙되지 않은 정책을 마구 쏟아놓고 있어 불안하다. 이렇게 길게 갈지 몰랐는데 결국 선거날까지 오게 되었다.
정부는 소위 필수의료, 특히 중증, 응급의료와 지역의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00명의 의대 증원은 필수요소라고 했다.
의료계 내부에는 증원이 필요 없다는 의견부터 어느 정도 증원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다양하게 나뉘고 있다. 학생이나 전공의들이 절대 증원 반대 입장이 강하고 대학 교수들이나 중소병원장들은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적지 않다.
2월 초 정부가 2천 명, 무려 3058명의 67% 증원을 얘기하는 바람에 다들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의대 내에서는 50~150명씩 늘어난 정원을 감당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의대 교수와 총장(또는 의대 보직교수)의 갈등까지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증원 규모에 대해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고, 의료계에서도 원점재검토를 강조하고 있어 타협의 여지가 있을까 암울하다. 그러는 가운데 전국의 상급종합병원은 전공의 공백 속에 입원환자 진료에 차질이 생기면서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까지 엄청난 수익 감소를 보이고 있다. 병원 내 직종 간 갈등까지 확대되고 있다.
총선 결과를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많은 의사들이 무모하고 무능한 정부에게 심판을 하기 위해 지지정당을 바꾸었다.
정치라는 게 지지정당이나 성향에 따라 워낙 다른 입장이 있겠지만, 이번 의정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지 못하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현 정부에 대해 표로 강하게 꾸짖고 있다. 급기야 국무총리와 대통령실이 전원 사의 표명을 했다.
현명한 정부라면 무모하게 밀어붙인 의대 증원 방침에 대해 철회하고 원점 재검토 또는 1년 유예를 선언하는 것이 될텐데 그렇게 나올지 모르겠다.
필수의료 패키지에는 의대 증원뿐 아니라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살리기 위한 많은 정책 아이디어가 포함되어 있다. 중증 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의료사고와 소송에 대한 안전망도 중요한 부분이다.
어느 것 하나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부분이지만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심도 깊은 논의와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가운데 일방적으로 발표된 필수의료 종합 대책에 대해 의료계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가 동력을 잃고 모든 논의를 중단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이번 총선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무리한 의대 증원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게 유력하다고 볼 때 선거 참패 후 모든 걸 백지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이번 정부의 행정이 엉망진창이다.
내과학회 수련위원회 활동을 오래 해오면서 보다 나은 전공의 수련 환경을 위해 고민해 온 입장에서 사실 의대 정원보다도 더 중요한 건 전공의수련제도이다. 필수의료가 뭐냐고 논쟁을 할 생각은 없고, 많은 의대생들이 졸업후 다양한 과에 골고루 수련을 받고 전문의로서 의사생활을 하기 바란다.
인구 고령화로 내과전문의의 수요는 크게 늘어나고 있고 지역사회에서 주치의 기능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어려운 환자를 보면서 보람을 느끼는 내과전문의가 많아져야 한다. 골고루 분과전문의를 지원하고, 대학에 남아서 학생 교육이나 전공의 교육에 역할을 많이 해야 한다.
정부는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를 말하면서 전공의 수련교육 비용을 지원할 의지가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전공의가 과도한 입원환자 진료나 무리한 연속근무로 혹사당하지 않아야 한다.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의중심병원으로 가야 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데 의료계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희생을 감수하면서 만들어 놓은 의정 협의의 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문학회, 전공의협의회, 병원협회, 의학회, 의사협회 등 유관단체가 많은 협의를 통해 새로운 수련교육 체계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고 정부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다시 병원과 학교로 돌아오고, 교수들도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