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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한의사 국가고시는 황당함 넘어 그야말로 '충격'"
의협 "한의사 국가고시는 황당함 넘어 그야말로 '충격'"
  • 조준경 기자
  • 승인 2022.11.17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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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국시원의 한의사 국가시험 관리 규탄 기자회견
최근 5년간 의과영역 침범하는 문항 급격히 증가
김교웅 "과학적 근거 없는 처방으로 국민건강 위험할 수도"
황찬하 "출제 문제들 무면허의료행위 교사 가능성도 있어"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의 한의사 국가시험 관리가 엉터리로 되고 있다며 '국시원의 무책임한 한의사 국가시험 관리 규탄 기자회견'을 17일 의협 용산 임시회관에서 개최했다.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은 “(국시원의 시험관리 실태에) 참담한 심경”이라며 “한의대생들을 더 이상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한의사 국가고시는 황당함을 넘어 그야말로 '충격'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의협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시원이 출제한 다수의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에 한방의료에 해당하는 질환이나 치료가 아닌 문제들이 나왔다. 최근 5년간 시행된 한의사 시험 필기문제들도 이러한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교웅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8월 한의사 국가시험 출제범위에 CT(컴퓨터단층촬영장치) 등 의료기기 영상 분석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는 취지의 국시원 연구용역 결과가 발표된 사례를 소개했다. 해당 연구는 '직무기간 한의사 국가시험을 위한 개선방안 연구(책임연구자 김은정 동국대학교 분당한방병원 교수)'라는 제목이다.

김 위원장은 “이 연구의 예시 문항으로 제시된 '사상체질의학의 질병(KCD) 진단 및 치료하기' 문항은 구토와 극심한 두통으로 내원한 80세 남자의 뇌 CT촬영 사진과 심전도 검사 결과를 보여준 뒤, 여러 문항의 한방 약 처방을 고르도록 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이 문항에서 예시로 보여준 뇌 CT 사진은 뇌종양인 '교모세포종(Glioblastoma)'을 앓고 있는 60세 여성 환자의 것으로 호주 로열멜번병원 영상의학과 프랭크 게일라드(Frank Gaillard) 교수가 'Radiopaedia'에 올린 사진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이처럼 예후가 극히 불량한 고등급 교종의 치료는 사망 위험이 높아서 외과적 전적출술, 전뇌 방사선치료 그리고 항암제 복용이 필요함에도, 한의사 시험문제의 답안은 단지 한약을 처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라며 “한의사 국시 예시 문항으로 뇌종양을 '중풍(뇌졸중)'으로 잘못 진단하고, 다른 환자 사례를 무단으로 사용하며, 환자의 연령과 증상도 작위적으로 만드는 등 엉터리 연구에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됐다”고 비판했다.

의협 황찬하 변호사는 “의료법에 따르면 국가시험에 합격해 면허를 받은 의사는 의료행위를, 한의사는 한방의료행위를 각각 할 수 있고, 의료인이라 할지라도 그 면허 범위를 넘는 행위를 하는 경우 무면허 의료행위로 불법이 된다”라며 “국가시험은 의사, 한의사 시험과목을 각각 별도로 정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의사와 한의사의 국가시험이 별도로 이원화돼 있기 때문에 한의사 시험에 의과학적 지식을 묻는 것은 향후 불법 의료행위를 조장할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상일 정책이사는 최근 5년간 시행된 한의사 국가시험 필기문제들 중, 진단검사, 영상의학 관련 검사 등 한의사가 사용하면 불법인 의과진단기기를 인용한 문제의 개수가 2018년 34문항에서 2022년 73문항으로 급격히 증가한 문제점을 언급했다.

2018년 한의사 시험의 시험문항 333문항 중 의과영역 문항이 91건으로 전체의 27.3%였으며, 의과의료기기 포함 문제는 35건으로 10.5%의 비중을 차지했다. 2022년에 들어서면 의과영역 문항은 전체 296문항 중 108건으로 36.5%의 비중을 차지했고, 의과의료기기 포함 문제는 66건으로 22.3%의 비중을 나타냈다.

김 정책이사는 “(한의사 시험은) 심지어 문제 내용과 상관없는 검사결과까지도 언급하면서 의과진단기기사용 등 무면허의료행위를 조장하고, 2020년도 이후에는 신종플루검사, 알레르기 피부검사 등도 인용하고 있다”라며 의과 관련 문제 중 대부분은 단순히 의과 진단명을 선택하는 항목으로 의과 질환과 관련된 한방진단명(병증)을 묻는 문제는 거의 없었으며, 이는 해당 질환이 한방의료에 해당하는 질환이나 치료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정책이사가 일례로 가져온 '2018년 제73회 한의사 국가시험 4교시' 시험의 12번 문항을 보면, 급성백혈병 치료 중인 환아의 한방치료법을 고르는 문제가 나와있다. 문제 예시에선 환아가 고열, 전신경련, 구토, 의식소실, 맥삭(맥의 빠름)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의학계에선 이를 뇌염, 뇌수막염 등의 중추신경계의 감염 증세로 보고 있으며, 이 증례에선 패혈증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응급상황으로 간주한다.

김 정책이사는 “이런 응급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한방치법을 고르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해당 환아의 진단과 치료가 지체되어 귀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며, 한의학 교육을 받는 한의대생에게도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 수 있기에 심각한 의료윤리의 문제까지도 있다고 보인다”라며 “의협은 작금의 국시원의 한의사 국가시험 관리 행태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며, 국시원의 본래의 설립 취지에 맞게 우수한 한의사를 배출할 수 있도록 한의사 국가시험을 의사 국가시험과 명확하게 구별하여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이원성 취지에 맞게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상근부회장은 “한의사 국가시험은 한의사의 무면허의료행위를 조장하고 양산하는 시험대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이는 한의사의 불법행위를 부추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없는 위험한 처방 및 처치로 인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의협은 국시원 및 관계 당국에 '그간 출제된 한의사 국가시험 문제를 의료계 등 관계 전문가들과 전수조사를 거쳐 면밀히 분석하고, 한의사의 무면허의료행위를 차단하고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개천대책을 마련할 것'과 '의과영역 침범 및 무면허의료행위를 조장하는 한의사 국가시험 문제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국시원 및 관계당국 책임자를 엄중 문책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황 변호사는 앞서 출제된 시험 문제들의 위법성을 묻는 질문에 “무면허 의료행위의 교사까지 나아갈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본다”라며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추후 전달해 드릴 것”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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