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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의사가 천직, 수술 잘됐을 때 가장 큰 보람”
“외과 의사가 천직, 수술 잘됐을 때 가장 큰 보람”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02.2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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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윤규 영등포구의사회장
“의협 회장직은 데모하는 자리가 아냐···정치적 안목과 유연성 필요”

“선천성 코 기형으로 몇 번이나 자살까지 시도했던 중년 여성분의 코를 제대로 성형수술시켜 드렸다고 환자분께서 지금도 명절마다 카드를 보내시네요. 성형을 통해 예뻐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특히 이럴 때 성형외과 의사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박윤규 영등포구의사회장<사진>은 최근 의사신문과 만나 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은 연세의대 86학번으로 세브란스병원에서 성형외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한 뒤 전임의를 거쳐 지난 2005년부터 현재까지 영등포구에서 박윤규성형외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한성형외과학회·대한두개안면성형외과학회·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IPRAS 정회원,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를 역임했고, 영등포구의사회에서는 법제이사·법제 담당 부회장을 역임하고 작년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됐다.

박 회장은 어려서부터 천상 외과 의사의 소질을 타고난 것 같다. 유년 시절부터 학업 성적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손재주도 뛰어나 프라모델 조립이 취미였다고. 얼마나 좋아할 정도였냐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도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거나 하지 않고 밤새서 프라모델 조립을 완성할 정도였다고 했다. 고교 시절 이과 전교 2등을 할 정도로 학업 성적이 우수한 그였지만 막상 의대에 진학할 생각은 딱히 없어서 당시 이과 우수생에게 또 다른 선택지이기도 했던 ‘전자공학과’로 진학을 고민하기도 하다가 입시철이 되자 당시 아버지의 갑작스런 권유로 결국엔 의대에 진학하게 됐다고 했다. 다만 “의대공부가 고3의 대학입시공부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은 입학한 후에 알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워낙 빠르면서도 섬세한 손을 가진 덕택에 수술에 재미를 느껴 밤새 수술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이런 그가 의대 졸업 후 인턴 과정을 마쳤을 때 많은 외과 계열의 진료과에서 ‘러브콜’을 보냈다. 그도 이비인후과나 일반외과를 놓고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성형외과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전 국민 의료보험’과 ‘의약분업’의 여파로 “이제 대한민국의 외과는 끝났다”며 외과 행을 만류한 그의 선배의 충고를 받아들여 차선책으로 ‘성형외과’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전공의 수련을 마친 그의 주위에선 모두 그가 모교에서 교수를 할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집안 사정으로 인해 주위의 강력한 만류를 뿌리치고 갑작스럽게 개원으로 진로를 변경하게 됐다고. 그의 스승인 박병윤 연세의대 명예교수는 지금도 종종 그에 대해 “교수를 했어야 하는데...”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내곤 한다고 했다. 개원 당시 그도 다른 성형외과 개원의들처럼 서울 강남에 자리를 잡을지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의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성격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강남 바닥만의 치열한 경쟁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거기선 남을 밟고 올라가야지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데 이런 건 저의 성격상 맞지 않았죠. 그러던 중 다양한 사람들로 유동인구가 많은 ‘사람냄새’ 나는 영등포에 개원을 하게 됐네요.”

실제로 소탈한 성격의 박 회장은 워낙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해서 늘 그에겐 이런저런 약속이 끊이지 않는다. 낚시도 워낙 좋아해서 덕적도 보건지소장을 하던 30대 공중보건의 시절에는 가장 큰 낙이 스쿠터를 타고 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바다낚시를 즐기는 것이었다고. 당시 덕적도의 파출소장, 해경통제소장, 수협지점장, 면사무소 직원 등과 자주 어울리며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도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오죽하면 늘 낚시를 하고 있다가 환자가 지소에 내원했다고 ‘방송’을 통해 전해 듣고 즉시 스쿠터를 타고 달려오는 그의 모습에 주민들이 ‘박크루소’라는 별명 내지 애칭까지 지어줬다고.

이런 그의 ‘친화력’이 결국엔 영등포구의사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된 계기가 되기도 한 것 같다. 이렇게 인간미 넘치는 박 회장은 그를 찾아오는 환자에게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정성과 실력을 믿고 환자들이 찾아준 덕택에 지금도 환자 중 영등포 주민은 2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정말 다양한 지역에서 찾아온다고 한다. 워낙 환자를 꼼꼼하게 보는 편이라 환자 한 명당 진료하는 데 보통 2~30분을 할애하기도 한다고.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직을 역임한 이력도 구의사회 회무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단톡방 활성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회의가 어려운 지금과 같은 시기에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상임이사회를 열고, 244명의 모든 영등포구의사회 회원들이 참여한 단톡방도 만들어 실시간 소통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사회 참여 필요성을 절감한 신규 회원들도 점점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코로나19로 전무후무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회원들에게 어떻게든 이겨내시라고 당부했다. 특히 “서울시의사회에서 회원들이 재택치료, 백신접종 등에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이외에도 다른 고충처리를 위해서도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영등포구의사회도 늘 회원들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시라”고 말했다.

박 회장의 정치적 성향은 철저히 ‘중립’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대선과 관련해서도 전문가로서 한마디 했다. “대통령이라고 모든 분야에 대해 잘 알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만큼 정책을 수립할 땐 무엇보다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반드시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친김에 의료계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을 털어놓으며 유연성과 정치적 안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의협 회장직은 데모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각종 의료악법이 등장할 때마다 의협 회장이 머리띠를 두르고 직접 데모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고 협회의 위상만 추락할 수 있다”며 “그보다 회장은 막후에서 회원의 실제적인 권익을 위해 로비와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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