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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글쓰기란 ‘염색체’···일상을 정렬해 삶 돌아보게 해”
“나에게 글쓰기란 ‘염색체’···일상을 정렬해 삶 돌아보게 해”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02.17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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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홍영준 원자력병원장 “세상은 잠시 살지만 글은 영원해”
‘의사신문’에 연재한 ‘공릉역 2번 출구’ 칼럼들 엮은 수필집 출간

“가끔씩 글쓰기가 세포 분열 직전에 선명하게 정렬되는 ‘염색체’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흐물흐물 퍼져있는 우리의 일상을 응축시켜 염색체처럼 가지런히 정렬해보는 것. 그래서 나의 상태도 돌아보고 미래에 일어날 일도 예상해보는 것. 그게 글쓰기 아닐까요”

홍영준 원자력병원장<사진>은 최근 의사신문과 만나 홍 원장 자신에게 글쓰기란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답게 글쓰기를 염색체에 비유했다. 

홍 원장은 최근 ‘마음치유’ 에세이 <공릉역 2번 출구, 그곳에서 별을 보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작년 1월부터 현재까지 본지인 <의사신문>에 그가 연재했던 <공릉역 2번 출구> 칼럼들을 엮은 수필집이다. 홍 원장은 주 1회 발행하는 의사신문에 연재를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칼럼을 쓰고 있다. 냉정과 형식이 앞서는 의료 현장에서 소독약 냄새보다는 사람 사는 냄새가 밴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담아내 긴 호흡의 감동과 여운을 주며 애독자층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전공의 1년차 때 백일장 1등, 글쓰기 본격 입문···군의관 시절 PC통신 칼럼니스트로도 활약

홍 원장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생 시절부터라고 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대개 그렇듯이 홍 원장도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탔다고. 이후 중고등학교 및 서울의대 재학시절에도 그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았지만 전공의 1년차 시절 겪었던 특별한 경험이 단순한 취미활동보다 그를 더 적극적으로 글쓰기에 임하게 만들었다. 그가 태어나 30년 이상 살았던 서울 신촌에서 당시 ‘제1회 신촌문화제’가 열렸고 여기서 백일장을 개최했는데 ‘제발 오줌싸지 마세요’라는 수필로 당당히 1등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후엔 서울대병원 뉴스레터 ‘함춘시계탑’에 전공의 신분으로 ‘껌과 지식’이라는 글을 써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손쉬운 환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껌’에 비유하는 비인간적인 의료계 은어들이나 지하식당을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너무 지나치게 약어를 많이 쓰는 관행에 대해 반성하고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아울러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과 좀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갖도록 노력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꽤 인상이 깊었는지 지금도 그 글을 기억하는 동료들이 있네요.”

여기에 그가 본격적으로 ‘글쟁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더 큰 계기가 된 사건이 있다. PC통신이 태동한 초창기 시절 군의관이었던 그에게 ‘하이텔’에서 기명칼럼을 연재할 수 있게 해준 것. 이후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며 다양한 글을 통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엔 SNS 시대가 열리면서 자유롭게 글을 쓰며 하나둘씩 팔로워들이 늘어갔는데, 그러던 중 서울시의사탁구회에서 함께 운동하던 김성배 서울시의사회 전 총무이사의 추천으로 의사신문에도 칼럼을 연재하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니 연재 글을 묶어 언제 책으로 내냐는 주위의 성화도 늘어나 결국 이번에 책을 출간하게 됐다.

◆인문학적 글 써도 ‘팩트’에 큰 관심···일상에서 ‘글감’찾으려 언제나 노력

그는 책을 출간한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젠 아내가 더 이상 책을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글쟁이답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어 그의 집엔 늘 서점처럼 책이 쌓여 있어서 그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책을 강제로 한 번씩 버리곤 한다고. 하지만 “이제 책을 내고 나니 아내도 남편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 더 이상 책을 버리진 않는다”고 했다. 여러 분야의 책을 다독하는 편이지만 이중에서도 특히 관심 있게 보는 책의 종류는 과학자나 의사가 문화나 예술, 혹은 정치, 경제 등 다른 분야에 대해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이라고. 

또 매주 월요일 의사신문 지면에 수필을 연재하다 보니 월요일이 되면 종종 자신도 모르게 아침부터 졸 때도 있다고 했다. 한 주 동안 글의 재료를 찾은 그가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는 시각은 보통 일요일 밤 10시나 11시 정도. 이후 새벽 2시 정도에 글쓰기를 끝내고 의사신문에 송고하는 생활을 1년 이상 지속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긴 습관 같다고.   

실제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특징이 그에게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여행을 가서도, 아니면 그냥 길을 가다가도 어떤 현상을 보며 늘 ‘글감’을 찾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세상 모든 것이 글의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심히 지켜보며 관찰력도 점점 더 커진다고. 여기에 과학자로서 특징도 더해져 주장이 있으면 반드시 근거를 찾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감성적, 인문학적 글을 쓰더라도 ‘팩트’에 대해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레퍼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글쓰기는 어떻게 보면 저에게 요리하는 것과 마찬가지 같아요. 음식을 하려면 재료가 필요한데 저는 주로 재료 찾는 작업을 병원에 출퇴근하면서 합니다. 실제로 ‘쿠킹’은 의사신문 지면에 ‘공릉역 2번 출구’가 발행되기 전날인 일요일에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죠.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도 하지만 막상 ‘쿠킹(글쓰기)’ 시간은 보통 오래 걸리지 않아요. 이후에는 ‘손님(독자)’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어줄지 궁금하죠. 일상에서 글의 소재를 찾는 것 자체가 저에겐 큰 즐거움입니다.”

홍 원장의 글을 읽다보면 글을 쓰는 사람들의 특징인 남다른 관찰력뿐만 아니라 의사, 그것도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다운 냉철함이 느껴지는데, 여기에 특유의 유머감각도 돋보인다. 이에 대해 그는 나름 노력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의식적으로 ‘아재개그’를 연습해보기도 한다고. 당장 얼마 전에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앙리 마티스’ 전시회를 감상하고 왔는데 여기서 마티스에 대해 ‘말티즈’라고 ‘드립’을 쳐 주변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고도 했다. 

“마티스 어록에 ‘영감(靈感)이 오는 것을 기다리지 말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를 놓치지 않고 이상한 영감들 조심해야 한다고 했더니 가족들이 눈을 흘겼지만, 유머를 통해 우리의 일상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런 식의 노력을 꽤 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면 젊은 세대와의 소통 기술도 자연스레 늘게 되죠. 아무래도 우리 세대와 젊은 세대가 느끼는 재미는 다르겠지만 기왕이면 함께 웃을 수 있는 주제로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합니다.”

◆다양한 운동 섭렵,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탁구’···실력에 더해 “사람 냄새 나서 좋아” 

글쓰기 외에 그가 애정을 쏟는 또 다른 취미 활동이 있다면 ‘스포츠’다. 테니스, 골프, 배드민턴, 볼링에 스쿠버다이빙까지 다양한 종목을 섭렵한 그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라면 ‘탁구’를 꼽았다. 사실 그는 의료계에서 알아주는 탁구 실력자이기도 하다. 서울시의사회장배 탁구대회에서 2부 우승을 하기도 했고, 병원장 취임 이전 열린 노원구 탁구대회에서 우승을 한 이력도 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탁구를 통해 다양한 직종, 계층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점이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했다. 병원 근처의 탁구장에서도 탁구를 치는데, 이곳에서 자영업자, 직장인 등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땀을 흘리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탁구장에 오시는 동네 김밥집의 할머니 사장님과 친하게 지내는데 그래서 거기 가면 한 줄이라도 더 주시곤 하네요.(웃음). 탁구는 운동 자체도 재미있고 유익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 냄새가 많이 나는 운동입니다. 탁구를 통해 사람을 사귀고 그래서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지는 것 같네요.”

그는 ‘과잉진단’이라는 번역서를 통해 대한민국 의료의 명과 암에 대해 고찰하기도 했는데, 당시 탁구장 회원 중에 독서클럽 운영자도 있어 그 독서클럽 모임에 번역가이자 이 분야 전문가로서 초대를 받기도 했다고 했다. 

◆의사신문 칼럼 연재로 애독자 많아져···인생에서 ‘재미’와 ‘의미’ 잊지 말아야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인 홍 원장은 글쓰기를 우리 몸 세포 속의 ‘염색체’에 비유했다. 

“세포질 속에 흐물흐물 퍼져있는 유전 물질들이, 성장이나 생식을 위해 세포 분열을 시작하면 순식간에 리본 모양으로 응축되면서 세포 중앙에 선명하게 일렬로 늘어서지요. 그걸 우린 ‘염색체’라 부르며 염색체의 모양과 개수를 통해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미래 발병 가능성을 가늠하기도 합니다. 의미 있는 생산을 위해, 흐물흐물 퍼져있는 우리의 일상을 응축시켜 가지런히 정렬해보는 것. 그래서 나의 상태도 돌아보고 미래에 일어날 일도 예상해보는 것. 그게 글쓰기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한가요?(웃음)”

홍 원장은 의사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일상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의 글을 보고 알아봐주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고. 심지어 전혀 모르는 독자가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에게 그의 글을 보내 커피 쿠폰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그만큼 곳곳에 그의 독자들이 숨어있다는 뜻이다. 의사신문에 그의 칼럼이 매회 연재될 때마다 적게는 수천 건에서 많게는 수만 건의 조회 수가 발생하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의사 수필동인 박달회에서 의사신문에 연재된 그의 칼럼을 보고 그를 회원으로 영입해 기라성 같은 선배 의사 문인들과 홍 원장이 함께 활동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언행일치보다 무서운 게 ‘문행일치’랄까. 그만큼 글의 무게는 저에게 엄중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사람들이 세상은 잠시 살지만 사람들의 글과 책은 영원히 남습니다. 주변에 늘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인생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재미’와 ‘의미’지요. 이런 저의 진심과 의미를 독자분들이 느껴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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