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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안 될 땐 연구하며 머리 식혔어요”
“공부 안 될 땐 연구하며 머리 식혔어요”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1.07.29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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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근 2년간 SCI급 논문 7편 게재한 의대생 하재인 양(고려의대 본과 4년)

최근 의대 4학년 학생이 SCI급 국제학술지에 비만대사질환 논문 7편을 제1저자로 게재하는 등 비만대사질환 연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학장 윤영욱) 의학과 4학년 하재인 양<사진>.

하재인 양은 비만대사수술 후 당뇨의 관해 등 메커니즘이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 많다는 점에 의문을 갖고 의학과 1학년부터 고대안암병원 비만대사센터에서 연구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SCI급 국제학술지 10편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이 중 7편에는 제1저자로 참여했다. 졸업논문을 위한 연구가 필수가 아닌 의대 학부생으로서 매우 이례적인 성과다.

이번 연구는 최근 비만대사수술 환자들의 수술 후 미세영양소 상태와 적절한 시점에 관한 연구로, 세계적 권위의 국제 학술지인 <Obesity Reviews(IF=9.3, 내분비대사 분야 상위 10% 이내)>에 게재됐다. 하 양은 연구에서 현재 비만대사수술 후 대부분의 병원에서 진료지침 권고보다 부족한 영양제를 처방하고 있음을 지적했으며, 비만대사수술 환자 1만 4천여 명을 메타 분석해 적절한 미세영양소 검사 스케줄을 최초로 제안하여 주목받았다.

뿐만 아니라 하 양은 직접 작성한 연구 제안서의 창의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아 ‘제51회 보건장학회 학술연구비’에 유일한 학부생 수혜자로 선정됐다. 지원받은 연구비로 비만대사수술 후 대사 효과에 대한 예측 물질 발굴을 위한 대사체 연구를 수행했으며, 이 연구를 토대로 비만대사수술 분야에서 대사체 연구의 중요성과 현시점에 대해 요약한 리뷰 논문이 세계비만대사외과학회 공식 학술지인 <Obesity Surgery(IF=4.1, 외과 분야 상위 10% 이내)>에 게재 승인됐다.

사실 의사들도 위장관외과 전공 의사가 아니라면 비만대사수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학부생인 하재인 양이 이 분야 연구에 참여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열정과 함께 우선 학교 측의 배려 덕분에 가능했다. 고려대 의대는 학생들이 학부생 시절부터 자발적으로 연구회를 조직해 연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하 양은 박성수 고려대병원 위장관외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회에서 비만대사수술에 대해 알게 된 것에 대해 ‘운명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 덕분에 그의 진로까지 이 분야로 고려하게 됐다고 한다.

“원래 대사질환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연구회 지도교수님이 박성수 교수님이셔서 자연스럽게 비만대사수술 관련 연구를 하게 됐고, 연구를 하다 보니 비만의 수술적 치료를 통해 당뇨까지 눈에 띄게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껴 이 분야를 전공할 생각까지 갖게 됐으니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현재 고려대의료원은 산하 3개 병원(안암·구로·안산)이 모두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연구를 중시하는 학풍이다. 하 양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수님들도 학생연구지도에 굉장히 관심이 많기 때문에 많은 분량의 의대 공부를 하면서도 연구와 병행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하재인 양은 천상 연구자적 기질이 보였다. 사실 학부생에게 연구 활동은 학점이나 졸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지만 하 양은 연구를 하면서 늘 “공부하다가 잘 안 되면 머리를 식힐 겸 연구를 한다”라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한다. 즉, 그에게 연구란 학과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히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라는 것. 이런 그가 고려의대에 입한한 것도 운명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 나아가 하 양은 오히려 학부생이 더 연구하기에 좋은 조건에 있다고 말했다.

“학생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부담없이 물어보고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열려 있고, 무엇보다 제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뛰어든 연구에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하 양은 연구 활동을 하면서 무엇보다 의학 발전에 일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고 한다. 특히 “주 연구자로 참여하며 관련 분야 학회 활동과 대사체학, 통계학 등 타 분야 박사님들과 소통 등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비만대사분야 연구자로서의 구체적인 꿈이 생겨서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하 양의 논문을 읽은 미국 콜롬비아대학 의과대학 교수도 먼저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 “흥미롭게 읽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 양이 경이로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두 지도교수의 힘도 컸다. 박성수 교수와 권영근 가정의학과 교수는 하 양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항상 귀 기울여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일례로 하 양이 만성적인 염증상태에 노출된 비만환자들이 영양소 흡수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표적 단백질 실험을 제안했을 땐 두 교수가 즉시 실험을 할 수 있게 배려해 줬다고 한다. 하 양은 “늘 이런 식으로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방면에 있어 도움을 주셨다”며 특히 “두 교수님들은 매일 환자를 마주하는 임상 의사로서 저 같은 의대생이 아직은 알 수 없는 임상적 의의와 통계분석 방법, 논문작성법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주시고 통계강의나 워크숍 기회도 주셨다”고 감사함을 표시했다.

사실 하재인 양의 어릴 적 꿈이 딱히 의사는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하 양이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연구자로 여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의 부친은 화학공학을 전공한 연구원으로 이 덕분에 하 양은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화학, 특히 유기화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그때부터 장래에 ‘신약개발’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었다고 한다. 하 양은 “신약개발을 위해선 인체와 질병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결국엔 의대 진학을 희망하게 됐다”며 “다행히 의대 공부가 적성에 맞았고 특히 임상실습을 하면서 환자들과 소통하는 것도 즐거워 앞으론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구체적 계획을 밝혔다.

지금은 의대 본과 4학년으로서 의사국시 준비에 여념이 없지만 국시에 합격해 의사가 되면 ‘비만대사질환의 내시경적 치료’ 분야의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고 싶다는 구체적 계획도 밝혔다. 이 분야는 비만수술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선 활성화돼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생소한 분야이다. 하지만 하 양이 이 분야를 전공하게 되면 현재 비만대사수술과 수술 후 관리 및 비만관리를 하는 고려대병원 비만대사센터에 합류해 ‘비만대사 내시경술’이라는 새로운 치료옵션을 선보일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상상도 하게 했다.

워낙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한 하재인 양은 궁극적으로 ‘꿈과 열정이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지금도 하루하루 행복한 이유가 꿈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꿈과 열정을 갖고 노력하면 환자들에게도 더 좋은 의사, 그리고 더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나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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