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의사 스크랜튼의 어머니 스크랜튼 여사가 설립한 ‘이화학당’과 1887년 엘러스 의료선교사가 설립한 ‘정동여학당’ 시작은 가정 내 한정됐던 여성들이 밖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김점동은 1886년 이화학당 4번째 학생이었다. 근대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전문직에 진출하게 되고 여성교육기관이 확대되며 주체의식을 심어주고 여성지위를 높이는 변화를 서서히 일으켰다. 이어 획기적 사건, 한국 최초여성인권선언, 여학교설시통문(女學校設始通文), 이른바 여권통문(女權通文) 발표가 있었다. 독자들이 학창시절 접한 적 없는 역사일 터라 간략히 소개한다.
‘여권통문’과 ‘여권통문의 날’
127년 전인 1898년 9월1일, 북촌 양반 여성들이 주동하여 우리나라 최초 여성권리 선언 ‘여권통문’을 발표했다. 당시 뜻을 같이한 여성들이 300여명에 이르렀다고 황성신문, 독립신문, 제국신문은 전한다. 세계여성의날이 촉발된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 시위보다 10년 앞선 역사적 사건이다. 필자는 2012년에 이 사실을 접한 감동으로 역사 탐구가 오늘에 이르렀다. 이후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과 여권통문의 날 제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웅녀의 단군신화 이래 오천년 역사는 헌신과 희생으로 점철된 훌륭한 어머니들, 언니, 누이인 여성들 역사이기도 하다. 전 세계 100여개 여성(사)박물관들이 있듯이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은 우리 어머니들의 역사를 세우는 일로 모두의 역사적 사명이다. 2013년 12월 국회에서 국립여성사박물관 설립 개정안이 여성발전기본법에 담기고 국립여성사박물관건립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여권통문’은 교육권, 노동권(경제활동 참여권, 직업권), 정치참여권(참정권, 정치권) 등 3가지 권리에 대한 주장을 담고 있다. 특히 남녀평등권으로서 교육권을 강조했다. 1898년 10월11일, 고종에게 관립여학교 설치를 골자로 상소도 했는데 최초 여성들의 상소다. 지속적으로 관립여학교 설치를 요구했다. 북촌 양반부인들에서 시작했으나 서민층 부녀와 기생들도 참여했고, 남성들도 가담했다. 관립여학교는 세워지지 못했으나, 직접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를 세워 1899년 한국인 최초 사립여학교 ‘순성여학교’를 세웠다. 순성여학교는 초등과정 학교로 서울 느릿골(현 연지동)에서 30명 정원으로 개교했다. 1903년 교장인 김양현당 사망 후 재정 제약으로 학교는 문을 닫았다.
일제강점기에도 여권통문선언에서 시작된 여권운동 맥은 여성교육운동, 농촌운동, 독립운동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 해방 후 여성투표권, 평등교육권 등이 여성에게 쉽게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이어져 온 여권운동 결과다. 교육도 2005년 이래 여성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앞섰다. 여권통문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자 매년 9월1일을 한국 고유 여성의 날로 기념하는 ‘여권통문의 날’이 국회에서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어 2020년부터 시작됐다.
1회 기념일에 국회에서 한국여자의사회 주관, 여성가족부, 국립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여성단체들과 함께 기념식을 마련했으나 COVID-19 재확산으로 국회가 전날 전격 폐쇄되어 기념행사는 무산되었다. ‘한국 첫(여성)의사, 김점동(박에스더) 120주년’ 동시 기념행사였는데, 자료집 발간으로 그쳐야 했다.
한국 여성 교육 상황
1886년 근대여성교육이 시작된 이후 2025년 상황은 어떨까? 교육인적자원부 ‘2018년도 교육통계연보’에 의하면 2005년 전체 고교 여학생 대학교 진학률이 남학생 대학진학률을 0.4%p 추월한 후 지속적으로 격차가 커지며 약진을 보인다. 일반계 고교 격차는 더해서 2000년에 들어서며 이미 일반계 고교 대학진학률은 여학생이 남학생을 추월했다.
결과적으로 이미 40대 여성들도 남성보다 고등교육을 더 받았음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여성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심각한 고려 없이 미래를 생각할 수 없는 현상이다. 최근 성별갈등에 대한 사회적 고려와 성평등 사유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불평등 경험을 겪지 않은 당당한 딸들의 약진에 주목한다. 저출산 시대 능력있는 고학력 여성들 사회활동에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
한편, 참정권 행사 여성들이 늘고 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투표율 75.8%)에서 선거 역사상 처음 여성 투표율(76.4%)이 남성(74.8%)보다 높았다. 여성대통령 탄생에 대한 여성의 열망이 높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14년, 2016년 선거는 다시 남녀투표율이 역전되었다가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이래로 여성 투표율이 남성보다 높다. 우리 미래 삶 예측을 위해서도 여성 삶의 변화를 잘 분석하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거참여는 높으나 인구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대의정치 참여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비례대표 남녀동수 개념이 도입됐다. 300명 전 국회의원 중 39명(13%) 여성국회의원이 탄생하여 처음으로 10% 벽을 넘었다. 2024년 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60명 여성국회의원이 선출되어 20%가 되었다. 2010년 센서스에서 여성인구가 남성인구를 앞서 다수지만 대의민주주의 50%는 물론, 여성할당제 30%도 아직 요원하다.
2017년 행정부 국가직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고위공무원은 2023년 본부 과장급 여성 비율 28.4%,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비율은 11.7%로 느린 속도지만 약진하고 있다. 지방 공무원은 5급 이상 여성비율은 30.6%다.
대한변호사협회 연구에 의하면 2023년 국내 활동 중인 28,118명의 변호사 중 8,269명(29%)이 여성이다. 최근 공식통계 ‘2024 보건복지통계연보’에서 2023년도 의료인은 여의사 27.3%(37,600/137,698), 치과의사 28.4%(9,763/34,361), 한의사 24.1%(6,819/ 28,233), 약사 64.8%(49,807/76,822)로 증가 추세다.
1886년 근대여성교육이 시작되고 1898년 여성교육권을 외치던 시기에서 약 1세기 만에 교육에서 남성을 추월했다. 각 분야 여성 약진은 대한민국 미래 발전 원동력이 될 것이다. 1900년 첫 의사 김점동 이후, 2023년 시점 전체 의사의 27.3% 3만7596명이 여의사다. 현 의대생 약 35%가 여학생이고 의대를 지망하는 여학생 비율이 증가하고 있어 여의사들 수는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김점동을 전후한 우리나라의 서양의학 교육
구한말 고종 시대, 김점동이 1877년 3월16일 태어나고 8세 되던 1885년 4월10일 제중원이 알렌에 의해 문을 연다. 알렌은 다음 단계로 조선인 의사양성을 위한 의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1885년 12월1일 미국 공사 폴크를 통해 ‘의학당’ 설립을 조선정부에 요청했다. 정부는 선발시험을 치러 16명 학생 대상으로 1886년 3월 29일 최초로 의학 교육이 알렌, 헤론, 언더우드에 의해 시작됐다. 그러나 2년 정도 유지되다가 여러 이유로 중단됐다.
1896년 4월7일 서재필 주도로 창간한 독립신문은 의학교 및 병원 설립 여론을 주도했다. 독립협회는 1898년 3월 최초로 만민공동회를 개최했고 7월 학부대신에게 의학교 설립을 건의했다. 11월 지석영은 의학교 설립에 관한 청의서를 제출하고 의학교 교장으로 자신을 천거했다.
이어서 1899년 3월 ‘의학교 관제’가 마련됐다. 1899년 9월4일 50명으로 개교한 의학교는 3년제로 1902년 7월 졸업시험에서 19명이 통과했으나 부속병원이 1902년 8월에야 개원하여 실습을 마치고 1903년 1월 졸업식을 치렀다. 1900년 8월 일본에서 귀국한 김익남은 의학교에 교관으로 합류했고 후에(1901년부터로 추정) 사저에서 환자도 진료했다고 전해진다.
1900년 10월 귀국 직후부터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바로 진료하기 시작한 김점동(박에스더)은 우리 국민 곁의 진정한 활인(活人) 의사로 고국에서 의사생활을 시작했다. 남녀를 막론하고 환자를 돌보는 첫 한국인 서양의사였다. 다음 호부터 본격적으로 김점동의 후예, 대한민국 여의사들의 발전사를 살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