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유공자 및 가족, 빈민 지역 저소득층 등 총 2951명 진료
의대 진학 유공자 후손에 장학증서 수여···수해 이재민에 티셔츠 기부도
박한성 이사장 “PEFTOK와의 교류 자랑스러워···교육 통한 인재 육성 중요”
장영민 단장 “단기적인 약 처방 넘어, 지역민의 자체적인 건강 증진 도울 것”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 황규석)가 다시 한번 필리핀을 찾았다. 지난해 의료봉사 이후 딱 1년 만이다.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은 지난 8월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선한의료포럼(이사장 박한성 전 서울시의사회장)과 함께 필리핀 라구나주 산페드로시에서 6.25 참전유공자 및 가족들과 빈민 지역 저소득층을 위한 해외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필리핀 라구나주 산페드로시의 빈민가(사우스 사이드). 정부 정책으로 강제 이주한 빈민들이 쓰레기 매립지 위에 만든 판자촌으로, ‘쓰레기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열악한 지역이다. 마을 곳곳에 쓰레기 처리장이 있고, 도로 한복판에 방치된 쓰레기에서 종종 악취가 풍겼다.
▲낙상으로 골절상을 입은 환자의 다리.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돼 상당한 고통을 호소했다. (우)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간단한 진료와 처치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환자들이 부지기수였다. 한 환자는 건물 2층에서의 낙상으로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지만, 치료받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거동이 불편할 정도의 고통을 호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초기에 시술로 제거하는 ‘쥐젖’이나 ‘지방종’이 마치 ‘혹 덩어리’처럼 커진 환자들도 많았다.
이들을 위해 △의사 14명(내과 2·가정의학과 1·소아과 1·피부과 2·안과 2·산부인과 1·재활의학과 1·영상의학과 2·성형외과 2) △간호사 5명 △임상병리사 3명 △간호학생 5명 △일반봉사자 3명 △행정 및 지원 인력 4명 등 총 34명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현지에서는 간호사·코디네이터·정부 지원 인력 등 90여명이 투입됐다.
매일 아침 임시 진료소가 제대로 구성되기 전부터 지역민들이 몰려들었다. 진료 시작 직후 각 진료과 앞에 대기 환자들이 늘어섰고, 찾아온 모든 환자의 약 조제를 담당하는 약국은 인산인해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장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진료소의 시설 역시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극심한 더위에도 제대로 된 냉방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탓에 봉사단은 대형 선풍기에 의지해 땀을 뻘뻘 흘리며 환자를 살폈다.
▲강하게 내린 비에 정전된 진료소. 암흑 속에서 휴대폰 불빛을 켜고 약을 조제하는 약국의 모습. (우)
더욱이 봉사 마지막 날에는 강하게 내리는 비에 진료소 건물 전체가 정전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익숙하다는 듯 휴대전화의 불빛을 비춰가며 묵묵히 각자의 역할을 하는 모습에는 놀라움을 넘어 존경심마저 들었다.
이러한 노력과 헌신에 현지인들도 봉사단을 따뜻이 환영했다. 그들 역시 더운 날씨 속에서 장시간 대기함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눈이 마주치면 밝은 미소와 함께 먼저 손을 흔들거나,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인사를 건넸다. 진료 후에도 연신 ‘Thank you’라며 감사를 전했다.
봉사는 첫째 날인 지난 13일 참전용사기념관(PEFTOK KOREAN WAR MEMORIAL HALL)에서, 이후 본격적으로 빈민 지역 의료봉사가 시작된 둘째 날부터는 각각 △San Antonio 지역의 SV3A Extension Day Care(14일) △San Vicente 지역의 Bayan-Bayanan Super Health Center(15일) △Cuyab 지역의 Cuyab National High School(16일)에서 진행됐다.
봉사단은 4일간 △내과 661명 △소아과 549명 △피부과 441명 △안과 649명 △재활의학과 209명 △영상의학과 194명 △성형외과 57명 △산부인과 191명 등 총 2951명을 진료했다.
검사 및 조제 건수로는 △초음파 189건 △산부인과 초음파 191건 △임상병리 244명·3727건 △안과 649건 △약 조제 2059건을 시행했다.
이 외에도 진료소를 방문한 모든 환자에게 치약·칫솔 세트와 비타민 C, 삐꼼·씨, 메가트루 633 등 영양제를 배부했다.
■ 6.25 참전의 은혜, 의료로 보답해···참전용사 3명 등 140명 진료
특히, 이번 의료봉사 방문 첫날(13일) 진행된 6.25 참전용사 진료는 서울시의사회 의료진들과 참전용사기념관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이날 봉사단은 6.25 참전용사 3명(88·92·94세)과 미망인 1명(90세)을 비롯해 참전용사들의 후손 등 총 140명을 진료했으며, 선한의료포럼은 참전용사와 미망인에게는 교통비 등 소정의 성금을 제공해 은혜에 보답했다.
Jovena Damasen 참전용사기념관장은 개회사에서 “선한의료포럼과 PEFTOK의 인연이 몇 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항상 노력해 주시는 박한성 이사장님께 감사드린다”며 “단순한 의료봉사가 아니라,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계속 찾아주시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주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환영한다”고 인사했다. 선한의료포럼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감사패도 전달했다.
Art Joseph Francis Mercado 산페드로시 시장을 대신해 행사에 참석한 Maria Thomas 보건국장은 “선한의료포럼과 10년 동안 교류를 맺고 계속해서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에 굉장히 감사하다”며 “이러한 관계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에서 선한의료포럼은 참전용사의 후손 중 Far Eastern University(FEU) 의대에 진학하는 Marion Villar 씨에게 숭고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는 장학증서를 수여했다.
이에 따라 포럼은 현 학기 장학금 1462만1334페소(한화 365만5325원)를 지급했으며, 향후 4년간의 등록금을 전액 지원할 예정이다.
박한성 선한의료포럼 이사장은 “PEFTOK을 방문해 참전용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감사를 표한 지 10년이 됐다”며 “이제는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는데, 이번에 참전용사 세 분과 한 분의 미망인을 뵐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봉사를 통해 질환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필리핀의 의료 문제에 대해 근원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국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교육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장학증서 수여가 이러한 변화의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진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를 교육이 아닌 의료봉사를 통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선한의료포럼은 이에 더해 산페드로시에 수해 이재민들을 위한 흰 티셔츠 240벌도 기증했다.
■ 늘어나는 10대 어린 산모···“피임 교육 이뤄지면 좋을 것”
이번 의료봉사에서 주목할 또 한 가지는 일찍 결혼하고 출산하는 필리핀 여성들의 진료를 위한 ‘산부인과 전문의’의 동행이다. 산부인과는 초음파 검사 등 4일간 총 191명을 진료했다.
앞서 장영민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장(대외협력이사)은 산부인과 전문의 부재 등 지난해 봉사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언급하며, 이번 준비 과정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밝힌 바 있다.
필리핀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가톨릭 국가 중 하나로, 낙태를 죄악시하는 종교적 신념이 정책에 깊이 반영되면서 이를 엄격히 금지하는 법이 유지되고 있다. 더불어 성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서, 10대의 어린 산모들도 급격히 증가한 상황이다.
실제 봉사 현장에서 만난 한 소녀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출산해 41세의 어머니와 함께 3개월 된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와 가족들의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진료소)에 왔다. 가족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이번 의료봉사에 너무 감사하다”며 “저뿐만 아니라 다른 미혼모(single mom)들과,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지원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봉사 마지막 날인 16일에는 임신 16~17주의 16·17·18세 소녀들이 함께 산부인과 진료를 받기도 했다.
이에 관련해 의료봉사에 동행한 김정화 원장(김정화산부인과의원·관악구의사회 법제이사)은 “필리핀은 분만율·출산율이 높고 아이들이 많다는 점에서 매우 젊은 나라이고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다만, “(16~18세의) 산모들이 임신에 대해 물론 기쁘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가톨릭 국가라 어떨지 모르겠지만, 피임 교육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하는 시점에 적절하게 임신할 수 있도록 피임 교육이 이뤄지면 좋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 서울시醫 의료봉사단, “보완 거듭해 현지인들의 자체적인 건강 증진 도울 것”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은 앞으로도 보완을 거듭해 약 처방으로 끝나는 단기간의 봉사가 아닌 현지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건강을 유지 및 증진할 수 있도록 돕는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장영민 의료봉사단장은 먼저 지난해 봉사 후 아쉬웠던 점을 보완하기 위해 준비했던 ‘혈액 검사기’와 ‘산부인과 전문의 동행’에 대해 전부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장 단장은 “씨젠 의료재단에 도움을 요청해 갑상선 질환자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혈액검사를 시행할 수 있었고,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약물 처방 등 환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산부인과 전문의가 동행한 것에 대해서도 “10대부터 시작해 2~5번의 출산을 하는 필리핀 여성들이 스스로 여성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며 “긍정적 결과가 나와 내년에도 산부인과 진료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나아가 다음 봉사활동을 위해 보완이 필요한 부분으로는 “봉사 의료진 구성에 어려움이 크다. 더 나은 봉사가 되기 위해서는 넓은 풀의 의료진이 중요하다. 봉사단에서 계획 마련과 함께 실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암 확진 검사나 수술이 신속히 이뤄져야 할 경우 현지 의료진으로의 의뢰(전원)가 잘 될 수 있도록 해결 방안도 찾아야겠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향후 의대 진학 학생에게 장학증서 수여를 통해 의사로서의 인재 양성에도 기여할 것”이라고도 했다.
끝으로 장영민 의료봉사단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의사를 만나서 진료받는 것 자체에 대해 ‘Thanks, Doc!’이란 인사말과 함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환자들과의 만남은 최근 한국에서 의사로서의 힘든 삶을 오히려 위로받는 시간이었다”며 “많은 분이 함께해주시고, 한 마음으로 봉사했기에 잘 마칠 수 있었다”고 이번 봉사의 소회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