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에 빠진 의료계 "개별의사 문제 아냐, 진단서 수정 강요 못하게 법적으로 막아야"
충격에 빠진 의료계 "개별의사 문제 아냐, 진단서 수정 강요 못하게 법적으로 막아야"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9.10.2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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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 산재·자동차 보험 환자 불만 많아 상시 위협에 노출
의료계, ‘반의사불벌죄폐지’ 등 의사 방어권 법적으로 보장돼야  

작년말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고(故)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진료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진료 중이던 의사를 흉기로 찔러 상해를 입힌 사건이 일어나 의료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의료계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는 한편,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통해 의료진을 보호하는 동시에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선 법적·제도적 보완과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진료거부 권리와 환자의 처벌 제도 있어야 

대한정형외과학회는 25일 "진료실에서 환자가 휘두른 칼에 유능한 정형외과 의사의 엄지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의사는 수술을 받았지만 오랜 시간의 치료가 필요하며 자칫 정형외과 의사로서 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어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는 피해 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뒤 불만을 품고 장애진단서를 끊어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거절 당하자 범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학회는 의사가 소신껏 진료할 수 없는 현재 의료계의 문제점에 대해 꼬집었다. 환자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소신껏 작성한 진단서로 인한 의사는 환자로부터 소송을 당하거나 협박 및 살해 시도를 당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법적인 요구에 응해 진단서를 과장해 써준다면 보험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허위진단서 작성으로 형사 처벌을 받고 면허가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학회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의료사로 불만으로 치부하고 지나칠 경우 제2, 제3의 피해 의사가 나오지 않으라는 보장이 없다"며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고 배상이나 보상을 목적으로 의료인에게 진단서나 의무기록의 수정을 강요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병원 교수 C씨는 “의료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내몰려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진료를 거부할 권리가 없는 의사들의 진료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 현장에서 의사들이 환자 등의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난동을 부려도 실제로 중범죄는커녕 처벌받는 경우도 드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난동을 멈추면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된다는 것이다. 

C씨는 “병원 내에서 이뤄지는 비정상적인 행동들에 대해 엄히 처벌하는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며 “의료단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법 개정과 진료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 산재·자동차 보험 환자 불만…정형외과 의사 ‘위협’

그동안 의료기관 내에서의 의사 폭행 및 상해사건은 응급실과 정신과에서 주로 일어났다. 이번 사건은 정형외과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실 정형외과 의사들은 산재보험환자나 자동차보험환자의 ‘장애등급’ 판정을 두고 벌어지는 분쟁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형외과 개원의사 D씨는 “진료과를 가리지 않고 의사를 상대로 한 흉기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 충격적”이라며 “정형외과의 경우 산재와 자동차보험 보상과 관련해 환자가 생각만큼 장애등급을 받지 못할 경우 의사에게 위협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 병원도 한 달에 한 두번 꼴로 이런 일이 일어나 CCTV 설치에 이어 호신용 물품까지 구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정부가 대안을 마련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흐지부지된다"고 꼬집었다.  

일선 의료현장에서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로 인한 의사들의 법정구속 사건 등을 계기로 의사들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환자와 의사간 신뢰관계가 구축되지 못한 점도 문제로 꼽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을 개별 병원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범행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 국민 인식 개선과 함께 ‘반의사불벌죄폐지’ 돼야 

대한의사협회 박종혁 대변인은 "의료기관 외부에서 일어나는 폭력보다 의료기관 내 폭력이 더 위험하다"면서 "무방비 상태의 의료진이 폭력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안전한 진료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며, 의료기관 내 폭행에 대해서는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규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대변인은 “의료기관 내 폭력과 의료인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도 사건 당일인 지난 24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임 교수 사건에서 언급했듯, 병원에서 보건의료인에 대한 폭력사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며 "폭력사태에 대한 대책을 수없이 호소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의료인 폭행방지법'에 처벌조항이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 일선에서는 주취나 심신미약에 대한 고려 등의 이유로 벌금형이나 가벼운 처벌에 그치고 있다”며 “가해자에 대한 구속수사와 함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준하는 처벌을 통해 의료인이 교육받은 지식과 윤리대로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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