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단이 다르면 처방도 달라야 한다
[칼럼] 진단이 다르면 처방도 달라야 한다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9.11.01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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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의사 상대 흉기난동 사건···비슷해 보이지만 원인은 전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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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4일 서울 노원구 을지병원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사건은 여러모로 작년말 벌어졌던 고(故)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을 연상케 한다. 어느날 환자가 불쑥 진료실로 찾아와 무방비 상태에 있던 의사에게 흉기를 휘둘렀지만 병원에선 이를 제재할 만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한 명은 유명을 달리했고, 다른 한 명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왼손 엄지의 90%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의료계 안팎에선 “임세원법이 생기고 얼마 되지도 않아 어떻게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할 수 있느냐”며 분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언뜻 닮은 듯한 두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임세원 교수 사건의 경우 환자가 양극성 정동장애, 즉 '조현병'을 앓고 있는 정신질환자였다. 정신질환이 심해지자 지난 2015년 동생의 신고로 강북삼성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뒤 폐쇄병동에 입원한 전력이 있다. 해당 피고인에 대한 1심 재판도 정신질환을 범행의 가장 큰 원인으로 봤다.

자연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감독 문제로 관심이 옮겨갔고, 사건의 후속 대책에 해당하는 '임세원법'은 의료인 폭행에 대한 가중처벌과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을지병원 사건은 우선 정신질환자의 소행이 아니다. 장애판정을 받을 수 있도록 진단서를 끊어달라는 환자 측의 요구를 담당 의사가 의학적 소견 상 재활을 통해 나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거부한 것이 발단이 됐다. 즉, 이번 사건은 환자의 '이해(利害)'와 의사의 직업적 '양심'이 충돌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건에서 의사를 보호하려면 의사와 환자가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진료한 의사의 소견에 따라 장애진단이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는 환자가 전적으로 자신을 치료한 담당 의사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를 위해 별도의 감정 의사가 진단서 발급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프랑스 등 국가에서는 해당 진단서를 전담하는 별도 감정 의사가 존재한다. 

일선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장애진단서나 보험금 수령을 위해 보험사에 제출하는 진단서와 관련, 환자와 의료인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작년 7월에도 강원도 강릉의 한 병원에서 장애등급 판정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망치로 병원 기물을 파손하고 진료 중인 의사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도 자신의 장애등급이 3등급으로 판정돼 장애수당이 줄자 장애진단서를 발급한 의사에게 불만을 품고 범행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올 여름 유행한 A형 간염과 감기는 언뜻 증상만 놓고 보면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원인인 A형 간염에 감기약을 처방하면 증상이 호전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의사를 대상으로 한 잇따른 흉기 난동 사건도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고 그에 맞는 예방책을 처방해야 한다. 

진단이 다르면 처방도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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