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시간 지각···내부고발자가 단죄돼야 했던 이유
[칼럼] 1시간 지각···내부고발자가 단죄돼야 했던 이유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9.09.19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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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지각, 캐비닛 잠금 소홀…'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이의경)가 최근 강윤희 심사관에 대해 내린 징계처분 사유서에 기재한 주요 징계 사유들이다.

기자는 강 심사관이 근무한 식약처 산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징계처분 사유설명서를 입수해 꼼꼼히 살펴봤다. 사유서에 적시된 강 심사관의 '성실의무 위반' 부분을 살펴보면, 식약처는 국회앞 1인시위에 다녀오기 위해 '반가'를 신청한 강 심사관이 착오로 (복귀시간인 오후 1시를 넘겨) 오후 2시쯤 사무실로 복귀해 1시간 지각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 

식약처는 또 강 심사관이 임상시험 서류 캐비닛을 잠그지 않고 퇴근한 부분을 지적하며 불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문서 보관 부주의 사유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근무지침에 해당하는 '근로자 운영 규정'엔 의무 사항으로 규정돼 있지 않았다. 이에 식약처는 '복무 및 보안 위반자에 대한 세부 조치기준'이란 것을 찾아내 위반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식약처의 비전문성으로 인해 국민 건강이 위협 받는다며 자신의 직(職)을 걸고 내부고발을 단행한 피고용인에 대한 징계 사유라기엔 '너무 구차하다'고 느낀 게 비단 기자뿐일까. 

식약처가 강 심사관에 대한 징계 이유로 제시한 의무위반 사유는 크게 △성실의무 △비밀업무의무 △명령 준수의무 △품위유지 의무 등 4가지다.

특히 식약처는 조사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말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 강 심사관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믿을 만하다고 판단하는 '일관성'을 보여줬다. 

즉, 항암제 안전성과 관련해 식약처 직원이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고 발언한 내용을 두고 강 심사관이 "I과장 등 3명이 발언을 들었거나 목격했다"고 주장하자 식약처는 관련자들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식약처는 3명 모두 "기억이 없다"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며 당사자가 본인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점을 고려할 때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고 했다. 

혈혈단신으로 조직과 맞서 내부고발을 한 상대적 '약자(弱者)'에 대해 사실상 한편인 내부 직원들이 단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자 약자를 거짓말쟁이로 단정한 것이다. 한쪽의 일방적 의견만 듣고 사안의 허위 여부를 판단하는 게 과연 우리나라 국가조직이 맞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조사과정만 '편파적'이었던 게 아니다. 징계를 의결한 인사위원회는 녹취를 금지하고 회의록을 남기지 않도록 '불투명'하게 진행됨으로써 사실상 강 심사관의 '방어권'을 박탈했다. 

조직 내부 규정상 소속 직원이 마땅히 지켜야 할 준수사항을 어겼다면 올바른 절차에 따라 징계가 내려지는 것은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부당한 방법으로 시시비비가 가려지거나 당사자의 마땅한 방어권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그 징계 결과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 공평한 잣대로 강 심사관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됐다면 2년 넘게 일하면서 1시간 가량 지각했다고, 캐비닛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성실하지 않은 직원으로 치부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강 심사관이 국회 1인시위를 진행하지 않았더라도 같은 행위가 성실 의무 위반으로 징계 사유에 해당했을까.

식약처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인사위가 강 심사관의 주장을 충분히 고려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인사위가 내놓은 스무 장에 달하는 의결 사유서를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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