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제시한 근거에 ‘2000명 증원’ 수치 언급 없어”
“어떤 의료 원하는가에 초점 맞춰야···사회적 합의 우선”
“정부가 의대 증원의 근거로 제시한 연구자료 어디에도 ‘2000명 증원’ 수치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주장에는 많은 오류가 있어 신뢰하기 어려운 만큼, 우리나라 적정 의사인력을 추계하는 연구를 진행해 근거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은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연구원 창립 22주년을 기념해 의협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의대 정원 증원의 객관적·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안 원장은 “의사 추계는 ‘방법론의 한계’ 때문에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맞춘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추정치에 추정치를 더해나가는 방식이다 보니 결국 오차로 끝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사가 양성되려면 10~15년이 소요되는데, 그 사이 사회가 변화하는 만큼 당초 예상했던 숫자가 절대 맞아 떨어질 수 없다는 게 안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의사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하려면 지역과 전문과목 등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조사해 의사 수 추계를 정해야 하는데, 의료 이용률이나 어느 시기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결국 추정치를 얼마나,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연구보고서가 여러가지인 만큼, 과학처럼 보이지만 결코 과학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2000여명 증원된 의사들이 지역에 남을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10년이 지난 이후에도 이들에 지역에 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의 의사 수 추계를 신뢰하지 않는다. 결국 실패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어떤 의료를 원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정부와 의료계, 국민이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거친 정책이 실행돼야 한다는 게 안 원장의 주장이다.
안 원장은 “GP 주치의 제도를 시행하는 영국은 주치의 1명이 환자 2000명까지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국민이 5200만명이면 주치의 3만명만 있으면 된다”며 결코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또한 “단순히 의사 숫자가 많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며 “정부가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내놓은 이번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국민들이 만족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적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특히 그는 “정부가 2000명 증원의 근거로 제시하는 연구자료의 저자들조차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야 한다’는 논리가 해당 논문에 담겨있다는 사실을 부정했다”며 “해당 논문들에는 ‘2000명 증원’ 수치에 대한 언급 또한 없다”고 지적했다.
안 원장은 이번 의정 갈등에 대해 “정부와 의료계, 국민이 모두 행복한 의료체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정부와 의료계 간의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며 “누가 틀리다 맞다가 아니라, 지금은 정부와 의료계,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료정책연구원에서는 우리나라 적정 의사인력을 추계하는 연구와 관련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며 “공신력이나 공정성 이슈를 고려해 국내 학술지는 물론 해외 학술지에 게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와 함께 안 원장은 연구원이 ‘의료계의 씽크탱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의료전달체계 개편, 전문의 중심 병원, 인턴·전공의 제도 개편 등의 연구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그는 “최근 정부는 필수의료 위기, 지역의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어젠다를 던졌다”며 “의료전달체계 개편, 전문의 중심 병원, 인턴·전공의 제도 개편 등 하나하나의 주제가 중장기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젠다 별로 단기적 대응, 중장기적 연구의 필요성 등을 잘 구분하고, 계획하는 것이 급선무인 만큼 현안이 아니더라도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연구과제로 선정해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을 위한 연구과제를 개발, 추진하겠다는 게 안 원장의 목표다.
아울러 안 원장은 3년 임기 안에 ‘의사 면허관리기구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겠다는 포부도 내놨다.
앞서 그는 지난 제40대 의협 집행부 당시 자율적이고 독립된 ‘면허관리기구 설립’을 목표로 해외국가들을 시찰하고 관련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안 원장은 “올바른 의료시스템을 확립하고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의사면허제도가 체계적·효율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국제적으로도 의사면허를 자율 규제하고 있는 것이 추세인 만큼, ‘의사면허관리원 설립’을 통해 독립된 면허관리기구를 마련함으로써 자율 규제와 전문 직업성을 확립해야 궁극적으로는 국민 건강과 생명이 담보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40대 집행부에서 추진됐던 면허관리기구 설립의 지속적 진행을 위해 관련 후속 연구들을 수행하고 싶다”며 “무엇보다도 의료정책연구원이 전문성과 연속성을 기반으로 국민의 건강과 올바른 의료제도를 확립해 나갈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