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1 (금)
의사 10명 중 9명, "원격의료 도입시 법적책임 규정이 최우선 과제"
의사 10명 중 9명, "원격의료 도입시 법적책임 규정이 최우선 과제"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1.10.29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시의사회, 회원 대상 원격의료 설문조사 결과 발표
"피할 수 없는 대세" 인식 많지만···정부 주도 방식은 반대

원격의료 도입과 관련해 의사 10명 중 9명은 '명확한 법적 책임 규정 마련'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 사태 이후 언택트(Untact·비대면) 시대에 접어들면서 의료계도 이제는 원격의료 도입을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본격적인 원격의료 도입에 앞서 의료사고나 오진 등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의료계에서는 특히 원격의료에 대한 '무조건 반대'보다는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잘 취합하고 적정한 수가를 마련하는 등 향후 논의 과정에 이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STRG)는 29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원격의료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STRG는 최근 <의사신문>을 통해 '원격의료의 개념과 장·단점', '원격의료는 해야 하는가', '원격의료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기획연재에 이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22~28일까지 1주일간 실시된 이번 조사에는 서울시의사회 소속 회원 675명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선 원격의료에 대한 이해도(원격의료, 비대면 진료, 전화진료, 헬스케어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있다)를 묻는 질문에 81.5%인 550명이 '안다'고 응답했다. 특히 '잘 안다'거나 '확실히 안다'는 응답이 30%가량 됐다.

원격의료의 수요 증가 전망에 대해서는 '증가'할 것이라는 응답이 86.7%(585명)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그동안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해왔던 의료계도 '원격의료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의사 A씨는 "원격의료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구한말 쇄국정책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라며 "무조건 반대만 해서는 발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의료계 전체가 다른 나라에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의사 B씨도 "피할 수 없는 미래라면 의협이 선제적으로 전문가들을 섭외해 원격의료 도입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격의료 도입에 무작정 반대만 고집하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소외된 이후 나중에 불합리한 정책으로 고통받는 것보다는, 오히려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내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격의료의 수요 증가 원인(복수 선택 가능)에 대해서는 '국민의 편의성과 건강관리에 대한 요구 증가 때문'이라는 응답이 81.6%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의료수요가 치료에서 케어 개념으로 발전(42.7%)', '의료의 주체가 의사에서 환자로 이동(37.2%)', '사회적으로 메타버스 등 가상현실 관련 인프라 구축의 증가(36.4%)', '치료의 개념이 빅데이터 중심으로 예방적 구축(23.1%)' 순이었다.

원격의료 수요 증가 시 준비해야 할 부분(복수 선택 가능)에 대해서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법적 책임의 명확한 규정'이 86.7%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원격의료가 실시될 경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복수 선택 가능)에 대해서도 응답자들은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문제에 대한 현실적이고 명확한 제도 마련'을 90.1%로 꼽은 만큼, 이 부분이 향후 원격의료 도입 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 C씨는 "원격의료의 편의성 이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나 오진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며 "가령 원격의료 환자가 보유한 기계의 오작동으로 부적절한 수치 등을 보고받아 잘못된 처방이 내려진 뒤 환자가 악화되면 누가 온전히 책임져야 하느냐"고 말했다.

원격의료 수요 증가 시 준비해야 할 부분과 관련해 '적정한 비대면 진료수가의 확립'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68.9%로 많았다. 이는 원격의료 도입 추진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직결된다.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복수 선택 가능) 중에서도 '정부의 저수가 의료정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이 72%로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의사 D씨는 "현재의 '박리다매' 저수가 정책 하에서 원격의료는 전혀 필요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의사 E씨도 "원격의료가 저수가 의료정책으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서는 의사들이 결사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원격의료 도입 반대 이유로는 '환자의 안정성·효과성이 확실하지 않다(61%)', '대면진료의 원칙이 훼손돼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53.9%)',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에 부적절하다(47.6%)', '원만한 원격의료실시에 따르는 기본적인 IT 기기의 설치에 문제가 있다(15.4%)' 순이었다.

의사 F씨는 "원격의료가 시행된다면 대학병원에서 콜센터를 만들어 저렴한 임금으로 의사들을 고용한 뒤 전국 각지에 원격의료 분점을 내고 동네 의원들을 '대형마트 앞의 슈퍼마켓'처럼 죄다 말살시키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다. 다른 의사 G씨의 경우 "집 근처 1㎞ 반경 안에 여러 병원이 있는 우리나라에 왜 원격진료가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거동이 제한적인 노인이나 의료취약지에 국한해 (원격의료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에 대해서는 반대가 63.7%(430명)로 찬성 의견(16.9%, 114명)을 압도했다. 정부가 원격의료 도입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과정에서 의료계와의 협의 없이 화상 의료장비 지원 사업을 추진하는 등 원격의료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주도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한 분석 필요성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는 응답이 81%로 많았고, 특히 '꼭 필요하다'는 응답이 55.6%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의사 H씨는 "원격의료와 관련해 이익을 보는 사업자들과 정책 부서의 주도 하에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른 의사 I씨도 "정부 주도의 원격의료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원격의료를 현 시점에서 꼭 해야 되느냐'는 질문에는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61.6%로 '적절하다'는 응답(20%)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한시적으로 도입된 전화진료에 대해서도 '좋은 사업'이라는 응답은 16%에 그친 반면, '적당하지 않다(30.2%)'거나 '적극 반대한다(27.3%)'는 등 부정적인 의견이 57.5%로 훨씬 높았다.

의사 J씨는 "원격의료는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 등에 한정해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등 환사와 의사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며 "지금은 무작정 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특히 "원격의료는 평상시 진료보다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아 10배 이상 힘들다"며 "정부의 재정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의사 K씨는 "비대면 진료는 의료취약지나 의료 시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의 진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지, 진료 접근성이 문제되지 않는 환자들이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으로 오·남용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김성근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장은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원격의료에 대한 회원들의 우려를 파악할 수 있었다”며 “원격의료 도입 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와 안전성 문제는 물론, ‘저수가 정책으로 가는 것 아니냐’ 등의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다만 무조건 ‘결사반대’ 보다는 ‘조금 더 냉철하게 현 상황을 파악해 의사 주도로 정책을 만들어 가자’는 회원들의 입장도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시대가 변한 만큼 환자의 안전과 함께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작은 부분부터 준비해야지, 맹목적으로 제도가 시행돼서는 안 된다”며 “의료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 정책입안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올바른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