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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뜻 같은 거 없어요. 진짜 외과의사 하지 마세요.”
“속뜻 같은 거 없어요. 진짜 외과의사 하지 마세요.”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1.04.12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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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기획 Ⅰ] '대중(大衆)에 다가서는 의사들' ②
[인터뷰] '하지마라 외과의사' 저자 엄윤 클린성모외과의원 원장
책 속 대화 따라가다 보면 불합리한 수가체계, 진상 환자에 함께 공분
환자-의사 사이에 심평원 등 끼어들어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용 삭감

“‘하지마라 외과의사’라는 책 제목의 속뜻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거 없습니다. 정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면 말이죠.” 

지난 2월에 출간된 ‘하지마라 외과의사’의 저자 엄윤 클린성모외과의원 원장. 책 제목에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그의 말에서는 대한민국 의료 현실에서 소위 필수의료과 전문의로 살아가는 데 대한 회한이 가득했다. 

한때는 그저 사람 살리는 일이 너무 하고 싶어 의사가 되고자 열심히 공부해 의대에 진학했고, 그 어렵고 힘들다는 외과 수련과정을 견뎌낸 끝에 지금의 외과의사가 되었다. 그 누구보다 외과의사로서의 자부심이 가득했던 그가 어쩌다 후배들에게는 의사를, 그 중에서도 콕 집어 '외과의사'를 하지 말라며 책까지 낸 것일까? 

때로는 듣기 거북하고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막상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지난 1998년부터 지금까지 23년 이상 의사로 살아온 이야기를 환자와 의사와의 대화 위주로 구성해 구어체에 맛깔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환자, 때로는 심평원 직원 등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나라 수가 체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실감하며 어느새 함께 공분하게 된다. 또 비용이 정해진 급여항목 수술·치료비를 깎으려 하는가 하면 '의사가 그런 것도 모르냐'며 타박하는 일부 환자들의 목불인견 행태를 소개할 때는 읽는 사람의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책장을 덮을 때쯤 왜 저자가 외과의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Q.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외과로 개원해서 환자가 (병원에서 근무할 때보다) 별로 없다 보니 남는 시간에 페이스북을 통해 진료실에서 매일매일 느끼는 감정을 쓰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에게도 반응이 좋아서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제안이 와서 결국 정식 출간까지 하게 됐다. 지난 2016년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 100여 개 있는데 그 중 20개 글을 모아 책을 냈고 오는 6월에 2권이 나올 예정이다.”

Q. 재미있어서 금방 읽힌다. 평소에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하나? 

“워낙 한문을 좋아해서 지금도 한시 같은 걸 가끔씩 쓴다.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글쓰기에 특별히 소질을 보거나 평소 글 쓰는 것이 습관화되지는 않았다. 그저 매일같이 환자들을 마주하며 대한민국의 의사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군더더기 없이 구어체로 쓰니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고들 하더라.”

Q. 책을 낸 후 주변 반응은 어땠나? 일반 독자들은 거부감을 가질 법한 부분들도 눈에 띈다. 

“(의사, 의대생 합쳐) 15만 명의 주 독자층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같은 의사라고 책을 사주는 것도 아니더라. 하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히 있다고 해서 4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2~3시간 만에 다 읽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반인들 중엔 ‘병원을 자주 가면서도 대한민국의 의료현실에 대해선 알 기회가 없었는데, 의사들에게 그런 고민이 있는지는 몰랐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Q. 소위 ‘진상’이라고 부를 만한 환자들 사례가 많다. 

“사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진료를 받으러 와서 의사의 이야기를 잘 듣고 완쾌해서 환자나 의사나 서로 고마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인상에 잘 안 남지 않나. 그래서 특별히 인상이 많이 남은 '악질' 케이스들이 책에 많이 나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설명하면 'Selection Bias(선택 편향)'가 생겼다고 할 수도 있다.”

Q. 책을 통해 일반인들도 극심한 저수가 체계가 빚어 낸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사람들이 의사에 대해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에는 우선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있고 그 다음으론 건강보험 청구대행이 있다. 건강보험 가입자인 국민들에게 공급자인 의사들이 의료서비스만 제공하면 되는데 대체 왜 심사평가원과 건보공단이 중간에 끼어드는 것인가? 

정확히 말하면 두 당사자 간의 일이기 때문에 다른 사보험처럼 우선 환자가 진료비 전액을 내고 공단에 진료비를 사후에 청구하는 게 맞다. 불합리하게 의사가 정부에 대신 청구를 하다 보니 의학적인 판단에 따라 적절한 처치를 하는 데 필요한 기구나 기계, 소모품 비용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삭감되는 것이다. 만약 의사가 아닌 일반 국민이라면 정부가 그렇게 ‘갑질’을 할 수 있을까?”

Q.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민간보험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미국이 무조건 옳다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가 자유시장체제 국가라면 그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의료를 표방하는 영국의 경우 모든 의사를 공무원처럼 고용하다 보니 의료 질이 크게 떨어지고 인도, 파키스탄 의사들을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급여를) 삭감하며 두들겨 패기만 하다 보니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생겨나고 있지만 정치권은 이 문제를 알고도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의사 편을 들면 표가 떨어져 나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사들은 불가피하게 바이탈과를 기피하고 비보험 진료 영역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Q. 책에 한방의 폐해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대한민국 의사, 특히 나 같은 외과의사라면 한의사들이 저지른 문제(예를 들어 장침을 찔러 없던 기흉을 만들어 온다던지)를 뒤집어 쓴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환자들이 의사의 말은 믿지 않고 한의사의 (기가 쇠했느니 하는) 비과학적인 말을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또 인터넷에서 15분 동안 검색해 알아온 정보를 15년, 30년씩 진료해온 의사의 말보다 더 신뢰한다. 오죽하면 일부 의사들 사이에서 '이런 의식을 가진 국민들에게 의료는 사치'라는 말까지 나올까. 하지만 아무리 한의사들이 코로나19 접종과 진료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해도 한방에 우호적인 현 정부조차 그러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Q. 최근 의협과 서울시의사회 회장 등 새로운 의료계 수장들이 선출됐다. 그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선 모든 의사 직역들의 '공통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또 후배 의사들이 미국이나 일본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 (물론) 미국과 면허 교류 협약이 체결된다면 누가 대한민국에 남아서 의사를 할지 모르겠다. 저만 해도 미국에서 시민권이 아닌 영주권만 줘도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

Q. 마지막으로 ‘하지마라 외과의사’라는 책 제목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다른 거 없다. 진짜 대한민국에서 외과의사는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휴일에 가족들과 놀러도 가고 그렇게 사람답게 살고 싶다면 절대로 피해야 하는 직종이다. 정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면 결혼도 하지 말고 가정도 꾸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만, 외과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 의사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미용·성형이나 정형외과 같은 전공은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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