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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 산모들에게 '긍정적' 이야기 전하고파 '틈틈이' 기록
고위험 산모들에게 '긍정적' 이야기 전하고파 '틈틈이' 기록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1.04.12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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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기획 Ⅰ] '대중(大衆)에 다가서는 의사들' ③
[인터뷰] '태어나줘서 고마워' 저자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교수
말보다 글로 쓰면 불필요한 오해 없애, 분만장에서 분출된 감정 즉시 기록
'곪았던 슬픔 씻겨졌다' 독자반응에 보람···다음엔 둘째딸이 서문 써주기로

오후 4시50분에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 그로부터 불과 2시간 뒤에 병원에서 걸려온 '산모가 위험하다'는 전화. 어렵사리 '총알택시'(?)를 잡아타고 돌아가 수술을 해 환자를 살려낸 뒤 의사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이토록 많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는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오수영 교수. 오 교수는 “고위험 산모들을 진료하면서 숨가빴던 순간들, 기뻤던 일, 안타까운 일들을 어는 순간부터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흐려지기 전에 얼른 써놨던 글들이 쌓였고 결국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환자 보랴, 학생 보랴, 쪽잠 잘 시간도 모자란 와중에 대중서까지 출간한 오 교수의 사연을 들어봤다.  

Q.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나

“처음부터 책을 써야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다만 고위험 산모들을 진료하면서 숨가빴던 순간들, 기뻤던 일, 안타까운 일들을 어느 순간부터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등장하는) 첫번째 에피소드는 2012년 정도에 쓴 것이다. 구순구개열이 있는 둘째를 낳았던 산모가 다음 아이를 임신해 다시 찾아왔을 때 둘째의 안부를 묻자, ‘안 낳았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지금은 둘째가 가장 예쁘다’고 말했다. 

이처럼 산모들로부터 들은 긍정적인 이야기를 비슷한 상황에 있는 고위험 산모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었다. 또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써 전달하는 것이 진료실에서의 ‘말’보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생명의 소중함을 공유하는데 더욱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두 딸들에게 엄마의 삶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던 점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 

Q.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방금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는데, 비결이 있나

“산부인과 의사가 된 이후 고위험 산모들을 보면서 진료실이나 분만장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상황과 그 때 소용돌이쳤던 감정들이 결국 글로 분출된 것 같다. 하나의 에피소드는 대개 사건이 있던 당일이나 그 다음날 적은 것인데, 그 때 느낀 감정은 하루가 지나면 흐려질 수 있는 만큼 대부분의 글을 사건 당일에 적었다.

2012년부터 썼던 에세이가 약 30편 정도 쌓이다보니 SNS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페이스북 친구들)이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댓글을 많이 달아줬다. 막상 책으로 마무리 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특히 책의 후반에 나오는 의학적인 상식을 정리하는 데는 집중된 시간이 필요했다. 작년 3월 코로나19로 본의 아니게 자가격리를 해야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시기가 없었으면 병원 일을 하면서 책을 마무리하기가 더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한다.”  

Q. 학창시절 작가의 꿈을 꾼 적이 있었나

“중학교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작가가 돼야겠다'가 아닌 '언젠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아버지가 기록을 잘 남기시는 편이다. 언젠가 '자서전을 쓰시겠다'며 여든이 넘은 나이에 '나는 업무방해죄를 범했다'는 제목의 짧은 자전적인 에세이를 만들어 가족들에게 소책자로 나눠 주셨는데, 혹시 아버지의 글쓰기 유전자가 나에게도 조금 전달된 것은 아닐까.” 

Q. 책을 펴낸 후 주변 반응은?

“가족들이 가장 많은 축하를 해줬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기뻐하셨고, 남편은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로 돌렸다. 두 딸은 제일 먼저 책을 구입해줬다. 1쇄 인세를 앞서 약속한대로 우리 병원에서 태어난 염색체 이상(에드워드 증후군)이 있던 아기의 치료비로 기부했고, 아기의 엄마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다. 조만간 2쇄가 인쇄돼 염색체 이상을 갖고 태어나는 아기들의 치료비에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Q.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인데, 기억에 남는 독자평이 있다면 

“책 출간 이후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보게 된 독자의 글을 읽고 '책을 낸 보람이 있다'는 마음에 너무나 뿌듯했다. 잠시 인용하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묻어두고 꺼내지 않았던, 그래서 치유되지 못한 채 곪아있던 나의 슬픔이 이 책을 통해 말끔히 씻겨졌다'는 내용이었다. 

책 서문에 적은 것처럼 '한 여름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면서 소나기가 내리치는 상황'이 하늘의 ‘실패’ 가 아니듯, 적어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합병증이 생기는 것은 누구의 ‘실패’가 아니다. 소나기 후 곧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는 것을 지금 막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고위험 산모들에게 알려주고 위로가 되고 싶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이 책을 통해 비교적 흔하게 발생하는 산과적 상황을 가급적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통해 임산부들이 마주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 결코 실패가 아님을, 궁극적으로 더 큰 행복이 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Q. 후속작 출간 계획이 있나

“앞으로 2편을 내지 않겠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고위험 산모를 진료하면서 드는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는 지속되고 있기에 지금도 기록을 틈틈이 남기고 있다. 1편에서는 큰 딸이 ‘산부인과 의사의 딸이라서’ 라는 서문을 작성해줬는데 나중에 2편을 내게 되면 둘째 딸에게 꼭 서문을 작성해 달라고 부탁해 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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