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
정부가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
  • 전성훈
  • 승인 2020.09.0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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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92)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최근의 의료계 파업을 유발한, 정부의 일련의 정책 추진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의사들 대부분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내용은 ‘부당한 것’이고, 그 방식은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판이하게 다른데, 정부는 정책의 내용이 정당하고, 의료계의 (일부이지만) 의견 수렴을 거쳤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정책의 ‘정당성’ 판단은 상대적이다. 낙태죄를 100년 이상 처벌하여 오다가 작년부터는 처벌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세제도가 우리에게는 법적 권리로 당연시된다. 이는 모두 우리가 정책적으로 정당하다고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정책 추진과정에서의 ‘의견 수렴’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경우 의견 수렴 대상이나 절차에 정해진 것은 없다. 만약 모든 정책을 해당 분야의 대표자와 ‘합의’하여 추진할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다면, 이상적이기는 하겠으나, 현실적으로는 대부분의 정책이 추진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논란을 정리하면 결국 이와 같다: 정부가 가진 민주적 정당성의 한계는 어디인가? 즉 선거에서 이겨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는 어디까지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가?

지난 만 년간 수많은 정치 체제들이 시도되어 왔다. 그리고 그 정치 체제들 대부분은, 통치의 정당성을 ‘피’에 의존했으며, 이것이 의심받으면 여지없이 ‘반란’이 일어나 엄청난 피를 흘려야 했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정통성이 교체될 때마다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고, 백성들은 큰 고통을 받았다.

그러다가 인지가 발달하자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의 정치적 정당성 교체가 너무나 소모적임을 깨닫고 “서로 죽이지 않도록 하는” 권력 교체 방법을 고안해 냈는데, 이것이 바로 선거제도이다. 그리고 선거에서 승리하여 권력을 잡기 위해 인적 집단을 경쟁적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정당제도이다. 이 ‘선거’와 ‘정당’을 양축으로 하여 현대의 ‘대의민주주의’가 성립했다. 명예혁명 이후로 수백 년간 수많은 정부 시스템이 시험되어 왔지만 그 중에서 대의민주주의만이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이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스템보다 정치의 본질, 즉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의 해결’에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 정치 체제의 최종승자가 된 대의민주주의에도 단점이 있다. 그 중 일부로서, 첫째 선거를 통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아야 하는 제도의 본질상, 정당이 위와 같은 정치의 본질보다 ‘여론 관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둘째 여론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여론을 쌍방향으로 전달하는 수단인 언론의 역할이 문제되기도 하는데, 즉 언론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론 형성에 개입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셋째 무엇보다도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동안 부여받은 정부(=정당)는, 이를 지속시키고 싶기 때문에 선거권자들에게 어필하여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하여,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게 만드는 큰 단점이 있다. 이른바 ‘임기내’의 ‘보이는’ 성과를 추진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가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하여는, 대부분 해당 분야의 기존 시스템과 ‘기득권’을 변경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과거에 비할 수 없이 경제와 사회가 발달한 현대 국가는, 사회 어느 분야이든지 그 시스템이 방대하다. 아무리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정부라 하더라도, 몇 명 안 되는 공무원들을 움직여 해당 분야의 시스템을 변경하여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성격까지 급하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나라 정부는 해당 분야에서의 추상적인 ‘권력’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영향력’을 원한다. 그래서 정부는 그 분야에 ‘분사무소’를 설치함으로써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영향력을 만들어 내고 강화한다. 분사무소라고? 이른바 공공기관이다.

미국의 경우 각 분야의 실무는 민간에 맡겨놓고 정부는 ‘심판’ 역할만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민간이 해당 분야의 공공적 필요성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 정부가 ‘플레이어’로도 뛰는 나라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도 대부분 이를 제한적으로 운용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정부가 심판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중요한 플레이어로도 뛰고 있다. 예를 들어, 학계에서는 민간에서의 연구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많은 연구기관을 두어 직접 연구를 수행한다. 금융계에서 정부는 산업은행,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등을 설립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부는 토지주택공사(LH)를 두어 개인에게는 집 장사, 기업에게는 땅 장사를 한다. 심지어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정부법무공단이라는 정부로펌을 두고 소송을 직접 수행한다.

우리나라의 이런 독특한 시스템은, 정부가 법이 부여한 심판으로서의 권력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로서의 영향력도 가지고 있었기에 해당 분야에서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단기간 내에 현재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형성된 것이다.

의사들은 “의료가 공공재”라는 말에는 분노하겠지만, 일정 정도의 공공성이 있음은 수긍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적 공공성을 이유로 정부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수립시부터 의료에 개입해 왔다. 그러다가 오랜 기간 공공의료인력 수급과 관련한 문제점들이 지적되자, 정부는 드디어 공공의대를 설립하여 공공의료인력의 ‘수급’ 및 ‘운영’ 분야에 있어서도,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가 되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의 보장성 강화 정책은 전 정권이 확정한 것이고, 이를 현 정권은 약간의 보완을 보태 자신의 업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보자. 정권과 무관하게 정부가 정부 자신의 필요성에 따라 움직이는 부분이 존재하며, 이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의료계는 정권과 정부를 분리하여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이번 공공의대 설립 정책은 그 목적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시기와 방법에서 매우 잘못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정책 추진은 현 정권이 의료계를 특별히 무시해서가 아니라, 앞서 본 것과 같이 민간 분야의 문제점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의 통상적이고 일관된 해결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만약 이번에 공공의대 설립이 철회 내지 보류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의료계는 중장기적 정책 대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근의 드라마 같은 상황이 언젠가 출연진만을 바꿔 리메이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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