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7:57 (목)
불확실성을 받아들일 때 우회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
불확실성을 받아들일 때 우회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
  • 의사신문
  • 승인 2019.12.03 14: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집Ⅱ- 흰 가운을 벗고 비상하는 의사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우회로가 필요해
황 지 민‘디지티’ 만화 작가연세의대 졸업
황 지 민 ‘디지티’ 만화 작가 연세의대 졸업

최근 대학 입시에 대한 담론이 불거지면서 조셉 피쉬킨의 저서 ‘병목사회’에 대한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 획일화된 성공의 기준과 한정된 기회가 존재하는 오늘날의 ‘큰 시험 사회(big test society)’를 한 걸음 물러나 살펴보면 거대한 병목과 같은데, 이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약된 한두 개의 ‘성공 공식’에서 벗어나 ‘우회로’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의과대학 입시라는 치열한 관문을 통과한 ‘병목 생존자들’이 포진해 있는 의대와 병원은, 어쩌면 가장 우회로에 익숙치 않은 집단 중 하나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욱, 우리에게는 우회로가 필요하다.

나는 올해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1년간의 탐색기를 가지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심장학에 대한 강렬한 동경, 만화작가 ‘디지티’로서의 정체성, 세상에 새로운 지식을 내놓고 싶은 과학도로서의 이상을 모두 간직한 채 산다는 것이 가능한 꿈일까. 나조차도 반신반의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넉넉한 도화지에 여러 가능성을 그려 보고 싶어서 미국 유학을 계획하게 되었다. 거창한 도전도, 대단한 업적도 없는 지금의 내겐 청사진뿐이지만, 그런 만큼 이 시기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적어 보고자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읽고 쓰는 일을 즐거워했지만, 병원 밖의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한 기폭제는 역설적으로도 본과 공부였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는 오히려 흥미를 느꼈다. 잘만 이해하면 복작복작 살아 숨쉬는 도시 같이 따뜻한 우리 몸인데, 대체 왜 의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이토록 딱딱하고 차가운 것이며, 건강에 대한 부정확하고 위험한 믿음은 이토록 쉽게 세간을 떠도는 것인지…. 의학의 ‘참을 수 없는 귀여움’을 알리고자 나는 필명 ‘디지티’로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의대 시절 내내 대중가요 개사, 팟캐스트 방송 등을 시도하며 대중매체로 끊임없이 실험했다.

이 시기 최대 고민은 ‘딴짓(미디어)’과 ‘본업(공부)’의 균형이었다. 애초에 환자를 볼 ‘자격’보다도 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얻고자 의대에 온 것이었기에 의대 내 삶에도 충실하고 싶었다. 그런 나의 일상이 저글링(juggling) 곡예 같기도 했지만, 만화를 그리면서 의학 지식이 공고해지고 의과대학 생활에서 만화의 영감을 얻는 이 ‘이중생활’ 속에서, 작가로서의 자아와 의학도로서의 자아가 서로를 먹여 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만큼 어느 하나를 빼놓고는 서로를 정의할 수 없었다.

 

병원은 치열한 입시 관문 통과한 ‘병목’ 생존자들이 포진한 곳
의대 졸업 후 1년간 미래 탐색…만화 작가 활동하며 미국 유학 준비

 

학생 신분으로 ‘딴짓’을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의대생이라는 테두리, 의과대학이라는 든든한 소속이 있다는 사실은, 어떤 시도를 하든지 그 과정에서 조금 균형을 잃어 과몰입하게 되더라도 내가 감수할 것은 학과 공부밖에 없음을 의미했다. 더욱이 우리 학교의 P/NP 제도는 불필요한 경쟁이나 압력에서 우리를 해방시켰고, 나는 마음편히 다양한 분야를 탐색할 수 있었다.

이것이 도전의 장벽을 얼마나 낮추어 주었는지,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고 나서야 뼈저리게 실감했다. 긴 시간 동안 동기 집단을 이탈하는 숫자가 현저히 적은 의과대학 특성 상 학교생활과 이어지는 병원 생활은 마치 기차 여행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예과 2년과 본과 4년, 그 이후 모교에서의 인턴, 레지던트, 많은 경우 펠로우 과정까지, 대다수가 탑승한 고속열차는 아무도 이름 붙이거나 정의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공고한 ‘표준’이었다.

올해가 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온전히 시도해 보기 위해서는 이 기차에서 내려야 했다. 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의학을 연구하고, 건강 정보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도구로서 의학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기에 인턴 수련을 포기하고 오랜 서울 생활을 청산한 뒤 대전의 본가로 내려갔다. 동고동락했던 동기들과도, 날 키워 준 모교와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들어 있었고, 한국에서의 임상에 대한 미련도 컸기에 이 결정은 짧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선택이었다. 먼저 걸어본 선배들은 드문드문 있지만 내 상황과 목표에 맞는 길은 나만이 계획하고 개척해야 한다는 것은, 평생을 기찻길 위에서 살아온 내겐, 더더욱 두근거리면서도 막막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학문으로서의 의학을 사랑하여도 철길에서 내려설 수 있고 환자를 보고 싶다고 해서 반드시 정해진 ‘가장 빠른 길’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누군가 해주었더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흔히 명확하게 구분짓는 병원 안팎, 임상과 비임상은 날카롭게 분리된 흑백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형화된 길을 벗어난 도전이나 탐구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영영 임상 현장을 등질 것임을 의미하지도 않고, 반대로 환자 경험을 조금 덜 쌓았기 때문에 그만큼 상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만화가로서의 정체성과 의료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서로를 유지시키고 성장시켰듯이, 다양한 경험은 현 시스템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다채롭고 지속가능하게 해준다.

올해 초 캠퍼스에서 ‘도전의 가장 큰 적은 경험하지 않은 자의 조언’이라는 현수막을 보았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지, 모르는 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나에게 투영하려는 건지 불분명한 ‘조언’ 좀 들어본 사람이라면 백 번 공감할 말이리라. 하지만 동시에, 도전의 가장 큰 기폭제는 경험자들의 조언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각과 목적으로 ‘남들 다 가는 길’ 바깥에서 본인의 길을 만들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 용기를 주었고, 외롭고 초라할 때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대학생 이후 내가 쌓아온 삶과 관계 대부분을 놓고 간다는 심정으로 내려온 대전에서 뜻밖의 동네 친구를 사귀었다. 걸어온 길도, 졸업 시기도, 성향도 비슷한 우리는 종종 카이스트 주변에서 맥주를 마신다. 지금 왜 이곳에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처음 털어놓던 날, 친구는 대학병원을 떠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다 씩 웃으며 말했다.

“십 년 뒤의 내 모습이 너무 명확하게 그려지면 재미없지 않겠어요, 선생님?” 어쩌면 우회할 수 있는 용기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에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병목을 답답해하는 미래의 의료인들은 조금은 덜 용기내도 되도록, 경험한 자들의 조언이 쌓이고 쌓여 머지않은 미래에는 좁아진 말초동맥 주위에 잘 발달된 곁가지 혈관과 같이 아주 다양하고 멋진 우회로들이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