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 돈벌며 뒷바라지해 온 ‘창작’이란 ‘마약’
의사로 돈벌며 뒷바라지해 온 ‘창작’이란 ‘마약’
  • 의사신문
  • 승인 2019.12.0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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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Ⅱ- 흰 가운을 벗고 비상하는 의사들

영화가 뭐길래
송 윤 희영화감독, 아주의대 졸업
송 윤 희 영화감독, 아주의대 졸업

딴 짓의 시작은 본과 2학년 휴학 때부터였다.
휴학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첫째, 2000년 의사 파업의 여파로 방학이 사라졌더랬다. 방학 없는 의대 한 학기라니. 냉동 닭가슴살보다 더 퍽퍽하다. 쉼이 필요했다.

둘째, 우물 안에서 의학 공부만 하다 파업으로 ‘투쟁!’을 외치며 밖에 나가보니 사회에 대해 영 무지함을 깨달았다. 나이 들어 무식한 전문가로 고착화되는 게 싫었다. 넓은 안목을 키우고 싶었다.
그리고 셋째, 가장 큰 이유는 영화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크게 세 가지 이유로 휴학 신청을 했고 소원대로 말랑한 1년을 보냈고 영화도 만들었다.
사회에 대해선 여전히 무지한 채로 남았지만 조금은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휴학 기간 가장 큰 딴짓이었던 영화 제작은 매혹적이었다. 달달 암기식 학습만 해댔던 의대생이 처음으로 제대로 인간을 고민했다.

시나리오를 쓰며 인물을 연구하고, 그의 대사를 상상했다. 즐거움에 입안에 침이 돌았다.
창작의 쾌감에 침샘이 아려왔다. 행복했다. 살아있는 것 같았다. 중독의 시작이었다.
그 쾌감을 잊지 못해 전문의 자격증을 딴 이후 다시 창작의 길로 들어섰다.

6시 퇴근을 한 이후 시나리오 학원을 다니며 갈증을 해소했다. 휴학 때 싹트기 시작한 의식이 발화되어 2011년에는 우리나라 의료 체계를 다룬 <하얀 정글>이라는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그 이후 영화 아카데미에 진학해서 본격적인 연출 공부를 시작했다.
중견 영화사인 ‘명필름’에서 콜을 받고 영화 각본가로서 처음으로 돈 받고 창작 일을 했다.

그렇게 점차 인생에서 ‘의사’ 짓보다 ‘창작’ 짓의 비중이 커졌다. 물론 이 때도 주 수입은 파트타임 의사 업무에서 들어왔다.
창작으로 돈 벌기는 쉽지 않다. 재미있고 매혹적인 일의 대가가 바로 그거다. 일하면서 생계 해결 못 하기. 하지만 난 의사 면허라는 수입원 덕에 ‘창작 마약’을 꾸준히 주입할 수 있었다.

이제 이 길로 접어든지 어언 10년. 마약의 쾌감은 사라졌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쓰고 또 쓰고, 8고 9고를 가고, 원고가 까여서 돌아오길 반복하자 쾌감보다 고통이 더 커져버렸다. 괜히 시작했네. 의사나 할 걸. 여러 번 혼자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길목에 들어섰다. 한 번 담근 발은 빼지 못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너무나 잘 안다. 뼛속 깊이 딴따라라는 걸. 논문 하나 쓰기보다 픽션을 만들어내는 게 훨씬 더 즐거운 사람이라는 걸. 이제 겨우 몇 개의 영화 시나리오 작업과 드라마 하나를 끝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나이 마흔, 영화를 꿈꾸는 게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 발을 뺄 수 없다. 계속 가야 한다. 쾌감이 사라진 마약인데도 힘겹게 그 마약을 삼켜댄다. 이제 이 길은 업보가 되어버린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영화를 가장 존중하는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라고. 영화 만들기는 정글이고 아수라장이다. 긴 연휴 후 새벽 한 시의 대학병원 응급실 같달까.

 

  본과 2학년 휴학 후 창작의 쾌감에 빠져 영화계 입문
 “나이 마흔, 어느덧 이 길이 업보가 되어버린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수억, 수십억의 돈도 오간다. 여럿 인생 상처받고 망하기도 한다. 100명의 스탭들, 영화 노동자들의 노고 뒤에 각광을 받는 이는 감독과 배우들뿐이다.
능력에 따라 철저한 계급이 형성된다. 따라서 매우 공평하면서 동시에 매우 냉혹한 곳이다. 의료계는 2만 명 의대생이 졸업하면 2만 명 거의 다가 의사가 되어 진료를 한다.

영화계는 해마다 대략 1000여 명이 졸업한다 해도 영화계에서 꾸준히 전문성을 키우며 일하는 이들은 십분의 일도 안 된다. 삼십대 까지는 어찌어찌 버텨도 40대가 되면 선택의 기로에 선다. 꿈을 꾼답시고 생계도 위태롭게 내버려둔 채 나이 먹어 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꿈을 포기하고 땅에 발을 내리고 정착할 것인가. 결혼율, 출산율도 낮은 곳이 영화계다. 그만큼 지속하기 힘겨운 길이다.

메인 크레딧에 이름을 꾸준히 올리고 다음 작품 제작이 불투명하지 않은 이들-감독, 촬영, 미술, 음악 등 메인 감독들-은 손에 꼽는다.
그래서 누군가 이 길을 가고자 한다면 추천하지는 않는다. 자식에게도 이 길은 마다하고 싶다.

그러나 이 길을 갈 사람은 업보처럼, 숙명처럼 갈 것이다.
숙명은 너무 거창하다. 다시 소박하게 꿈이라고 불러보자.

난 아직도 작은 진실 한 조각을 영화에 담고 싶은 꿈을 꾼다. 그 진실이 누군가를 울리고 웃겼으면 좋겠다.
울고 웃는 와중에 인간으로서 자기 삶과 사회를 한 번 더 곱씹어 볼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다. 근데 참 그게 힘들다. 힘들기에 재밌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그 힘든 일을 내가 해냈으면 좋겠다.
이제는 딴 짓이 아니라 본업으로서. 그렇게 18년 전에 살아 있다고 느꼈던 그 핍진한 창작을 이어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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