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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하는 의사들’ 유행하지만 의사의 본질은 ‘환자 진료’
‘딴짓하는 의사들’ 유행하지만 의사의 본질은 ‘환자 진료’
  • 의사신문
  • 승인 2019.12.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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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Ⅱ- 흰 가운을 벗고 비상하는 의사들

“의대는 나왔지만 꼭 의사는 아닙니다”
이 은 솔메디블록 대표, 한양의대 졸업
이 은 솔 메디블록 대표, 한양의대 졸업

필자는 진료를 하는 의사가 아닌 사업을 하는 의사라는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부터 사업을 하려고 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의미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매다 보니 어느 순간 이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프로그래밍에 빠져 살았었고, 고등학교 시절 ‘한국정보올림피아드’라는 프로그래밍 경시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의대에 진학한 이후에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차별성을 구축해보고자 하였다. 당시에는 공학, 특히 소프트웨어와 의료의 접목은 많지 않았었기에 이러한 접목을 통해 나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 수 있을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너무나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두 분야를 접목을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찾아보고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의대 졸업을 앞둔 본과 4학년 때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영상 처리 연구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이 연구실에서는 의학 외에도 공학 전공자들이 모여서 영상의 정량 분석, 인공지능 등 다양한 형태의 연구를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던 주제 중 하나는 SVM (Support Vector Machine)이라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Lung CT 영상 자동 분류 시스템이었다. 지금은 딥러닝 (deep learning)을 이용하여 이러한 연구를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연구자 자체가 매우 드물었다. 연구실에 참여하면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길을 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의료 AI 연구자를 꿈꾸면서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전공의 과정에 들어갔다. 의외였던 것은 영상의학과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판독과 시술이 매우 재미있었다는 점과 연구는 생각보다 고달프다는 것이었다. 기획을 하고,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을 해서 결과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 결과를 학계의 언어를 통해 논문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렇게 미래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면서 내 길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환경 자체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AI가 돌풍을 일으켰다. 의료 분야에서도 루닛(Lunit)과 뷰노(Vuno)와 같은 의료 인공지능 전문 기업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구글 등 글로벌 기업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러한 딥러닝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수 없이 많은 의미있는 데이터가 필요하였으나, 그 데이터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슈가 있었다. 당시 필자는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저녁시간과 주말을 이용하여 고등학교 친구들과 인공지능, 그리고 이의 의료에 대한 접목, 파생 가능한 비즈니스 등에 대해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수없이 많은 의료 서비스에 대해 고민을 하였지만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 제공하려고 해도 결국 데이터 획득 방법과 획득한 데이터의 신뢰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이슈가 계속 발생했다. 이는 플랫폼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환자 - 의료기관’, ‘의료기기를 비롯한 IT 기기 - 데이터 수요자’ 등이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여러가지 사회적, 기술적 이유로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찾던 중 환자 중심의 생태계,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 등을 사용하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블록체인을 이용한 환자 중심의 플랫폼은 매우 매력적이었고, 이를 정말 실현할 수만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행하냐는 것. 대학병원에서는 이를 실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료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남은 시간을 쪼개서 연구, 프로젝트 등을 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대기업에 합류하여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방법도 고민해봤지만, 이제 막 사회에 나온 뜨내기 의사의 제안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속도나 진행속도에도 많은 제한과 제약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실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창업을 선택했다. 그렇게 우리는 2017년 4월 공중보건의 생활이 끝나는 시점을 기점으로 ‘메디블록’을 창업했다.

 

의료AI 연구자 꿈꾸며 영상의학과 전공, 마침 ‘알파고’ 열풍
데이터.플랫폼 고민하다 블록체인에 관심, 기술 실현 위해 창업

 

지금 시점에 되돌아보면, 매우 무모했고 또 쉽게 보았던 것 같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훨씬 더 많고 태산 같아서 언제 이것들을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혼자만 잘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파트너들과 긴밀한 협업을 통해 결과를 내야하고 정부 정책과 사회 환경 또한 뒷받침이 되어야 할 수 있다. 밖에서 지켜볼 때와 내부에서 직접 플레이어로 뛰어드는 것은 많이 달랐다. 병원에서도 월화수목금토일 근무를 하면서 진료, 연구, 학습 등을 병행하기가 힘들었지만, 그 때보다 훨씬 높은 강도로, 무거운 책임감을 바탕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즐거움, 그렇게 해서 나오는 결과물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금이 인생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함께 세상을 향해 기여할 수 있다는 묘한 흥분감, 그리고 그것을 내가 지금까지 갈고 닦아온 의료 분야의 지식과 경험 등을 바탕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없이 행복해진다.

‘딴짓하는 의사들’이라는 키워드가 유행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의사가 해오던 분야를 벗어나 창업, 취재, 정치, 투자 등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는 의사들을 일컫는 말인 것 같다. 의학이라는 분야가 점점 더 커지고,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면서 의사가 해야만 하는 일과 자연적으로 의사들을 필요로 하는 분야 역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본질은 환자의 진료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을 더하여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많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제 3의 기회를 찾아 떠나고, 또 찾아내서 세상 곳곳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면 우리 의사들의 저변도 크게 넓어지리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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