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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나, 글쓰는 나…미래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무대 위의 나, 글쓰는 나…미래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 의사신문
  • 승인 2019.12.0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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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Ⅱ- 흰 가운을 벗고 비상하는 의사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곽 재 혁피터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소설 (걸그룹이 된 아재) 저자
곽 재 혁 피터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소설 (걸그룹이 된 아재) 저자

최근에 출간된 책 <트렌드 코리아 2020 (미래의창)>에서 제시한 2020년 트렌드 키워드는 ‘MIGHTY MICE’다. 해마다 그해의 띠 동물이 포함되는 영문으로 트렌드 키워드를 구성해온 전통에 따라 만든 두문자어(acronym)인데, 단수인 mouse가 아닌 복수의 mice로 한 이유인즉슨, 2020년의 위기 상황을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복수의 시민들이 함께 힘을 합쳐 극복해나가자는 결의가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Me and myself(멀티 페르소나), Immediate satisfaction(라스트핏 이코니미), Goodness and fiarness(페어 플레이어), Here and now(스트리밍 라이프), Technology of hyper-personalization(초개인화 기술), You’re with us(팬슈머), Make or break(특화 생존), Iridescent OPAL(오팔세대), Convenience as a premium(편리미엄), Elevate yourself(업글인간), 이렇게 2020년의 트렌드를 설명하는 8개의 키워드 중에서 그 첫 번째는 바로 ‘멀티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란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오늘날에는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자아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 현대사회가 점점 개인화된 다매체 사회로 변화하면서, 이 페르소나라는 용어가 중요한 개념으로 떠올랐다. 집에 있을 때의 나, 직장에서의 나, 주중의 나, 주말의 나, SNS 속에서의 나 등, 현대인들은 상황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한 채 살아가고 있다.

위의 책에서는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트렌드가 복잡다단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바로 멀티 페르소나로 설명했다. 사람들이 상황에 맞는 여러 개의 가면을 그때그때 바꿔 씀으로 인해, 욕망의 표출 또한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에는, 인간의 다원성은 확장되었으나 정체성의 기반은 상대적으로 불안정해졌다는 역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도 다양한 모습의 페르소나로 살아온 것 같다. 진료실에서의 나, 거실 소파 위의 나, 출근길의 나, 퇴근길의 나,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의 나, 동네 돼지국밥 집에서의 나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페르소나가 내 안에 숨어 있다가 상황에 따라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그 무수한 페르소나 중 지금의 내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던지는 두 가지를 소환해보기로 한다.

내 안에 평소의 나와는 다른 얼굴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의대생 시절에 한 연극반 활동이었다. 무대 위에 선 내 모습, 그것이 바로 내가 소개할 첫 번째 페르소나다. 무대 위에서 작품 속 캐릭터를 연기하며, 내가 한 번도 내보지 못한 목소리를 내보고 일상에선 한 번도 꺼내 보지 못한 감정을 발견해가는 작업은 정말이지 내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이 들수록 서로 닮아가는 내 안의 페르소나들
정체성 오히려 확장된 느낌…미래가 기대되는 이유

 

현실 속에서는 스스로 허용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을, 무대 위에서만큼은 나와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연극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무대 위에서의 나와 현실에서의 나 사이의 괴리가 몰고 온 허탈감에 빠진 채 한동안 폐인처럼 지내곤 했었다.

무대 위에 서 있을 때의 내 모습은 평소의 나보다는 좀 더 정열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나는 현실 속의 나보다 무대 위에 선 내 모습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나 면접 볼 때 등을 제외하면, 무대 위에서만 나타났던 그 녀석을 현실 속에선 좀처럼 마주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소환할 페르소나는 글 쓰는 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백일장에 출전해서 썼던 생활문을 시작으로, 중고등학교 시절 스프링 노트에 긁적였던 습작 소설과 연극반 시절에 워크샵 공연을 위해 직접 쓴 극본을 비롯해 근년까지 꾸준히 관리해온 바 있는 블로그 포스팅에 이르기까지, 나의 글쓰기는 멈춤 없이 이어져 왔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글로 써서 풀어내지 않으면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 편이었고, 말보다 글이 더 편한 사람이었다.

같은 글쓰기라 해도, 소설을 쓸 때의 나와 감성 에세이를 쓸 때의 나, 그리고 내 전공과 관련된 실용문을 쓸 때의 나는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가 가진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 점점 서로 비슷해지고 있는 듯한 변화를 느낀다. 이를테면, 말보다는 글로 진심을 전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웠던 내가 말하기를 글쓰기만큼이나 편안하게 느끼게 된 변화 따위 말이다.
그리고 무대 위에 섰을 때만 발현되었던 말투와 행동들이 진료실에서 환자를 볼 때도 자주 나타나게 된 것 역시 그런 변화의 징후 중 하나다.

다시 말해, 마치 서로 독립된 생명체처럼 각자도생하던 내 페르소나들이 점점 서로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요컨대, 삶의 다른 영역에서 각각 키워지면서 서로 힘겨루기를 하던 다수의 페르소나가 점차 서로 융화되고 통합되어가면서, 나는 정체성의 혼란이 아닌 더 확장되고 발전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만약 내 안의 멀티 페르소나들이 서로 힘을 합친다면, 나란 인간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과거 혹은 현재의 나보다, 미래의 내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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