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22:07 (화)
국가 만능주의-전문 직업성 `충돌'…해결책은 신뢰
국가 만능주의-전문 직업성 `충돌'…해결책은 신뢰
  • 의사신문
  • 승인 2019.01.0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율규제권 확보를 위해 필요한 노력은?
최재천 변호사(전 국회의원)

의료인 `자율규제'의 핵심은 면허관리다. 실질적으로는 징계권이다. 국가 만능주의에 젖어 있는 보건복지부 관료의 입장에서는 시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들의 특권적 권한을 절대로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바탕은 의사에 대한 불신과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다. 이쯤에서 자신들은 늘 공공선을 대표하는 사도다. 때로는 개별 사건을 일반화시켜 시민들의 분노를 조직화하고, 이를 통해 관료 절대주의를 강화시켜 나간다.

반면, 의료계의 입장에서 `타율규제'야말로 의학전문직업성에 대한 본질적 침해다. 직업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간섭이다. 과도한 국가의 개입이요, 행정 권한의 남용이다. 의료계는 “협회가 알아서 면허관리를 하고 자율적으로 징계권을 행사할 테니, 정부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지만, 정부의 동의를 구하기는 어려운 상황. 해묵은 대립은 간단치 않다. 진부한 표현이 되겠지만, 사막에서 모래 폭풍을 만나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야 한다. 무조건 뚫고 달려나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 현실과 정책에 대한 성찰과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좌표의 확인이 우선이다.

첫째, 관료제에 대한 이해다. 우리의 관료제는 단임제 대통령제 아래에서 더욱 강화됐고, 더 이상 그 누구도 관료의 독점적·배타적 속성을 거세하지 못한다.
보건의료분야야말로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관료들은 자신들의 개입을 선으로 과포장한다.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힘을 신뢰하지 않는다. 국가와 시민의 중간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국가와 시민은 늘 세종로에서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대관업무가 정교해져야 한다.

둘째, 의료 엘리트에 대한 시민의 저항은 강렬하다. 지향하되, 냉소적이다. 자율과 신뢰와 책임은 분리될 수 없다. 당연하지만 의료계 스스로의 혁명적 자정 노력과 신뢰회복만이 자율과 책임을 담보 받을 수 있다.
의료접근권에 대한 평등과 공공성에 대한 요청은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실정. 법률소비자는 제한적이지만, 의료소비자는 일반적이다. 신뢰회복에 대한 일관되고 겸손한 접근이 절실하다.

셋째, 같은 맥락에서 자격증은 더 이상 평생 직장이 아니다.
변호사 등 전문직 자격증이야말로 시장의 지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진입의 자유만큼이나 퇴출의 자유가 존재하는 곳이 시장이다. 제한적 진입이 제한적 퇴출의 특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전체의 신뢰를 위해 엄정한 접근이 필요하다.

넷째, 대한변호사협회의 자율규제권은 중요한 비교적 사례다. 의료과실만큼이나 변론과실도 많다. 리베이트만큼이나 전관예우 등 법조비리는 일상적이다. 그럼에도 대한변협은 강력한 자율규제권을 보유한다. 이른바 `법조삼륜'이라는 틀 속에서 변호사단체, 법무부, 대법원은 상호 견제와 균형의 틀을 절묘하게 유지한다. 대한변협은 일정 사유에 해당하는 변호사들의 등록을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방식으로 개업 자체를 봉쇄한다.

예를 들어 공무원 재직 중 위법행위로 인해 형사소추 또는 징계처분을 받거나, 위법행위 관련해 퇴직한 자 등으로 포괄적 해석의 여지를 두고 이를 통해 적절하게 권한을 행사한다. 전직 법무부 장관이나 전직 검찰총장조차 개업하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 등록뿐만이 아니다. 독자적인 징계권 또한 변호사법에 명문화되어 있다.

의사협회는 징계요구권에 머무르고 있지만, 변협은 1993년경 법 개정을 통해 독자적인 징계권을 가져왔다. 입법정책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의료계는 의료계만의 독자적 방식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다섯째, 이해와 설득은 온전히 의료계의 몫이다. 다른 나라의 자율규제 모델들이 한국 의료계와 시민들을 위해 어떻게 긍정적 기능을 해낼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이해시키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 연구는 충분하다. 문제는 대중에 대한 설득력이다. 대한의사협회만큼 전국적인 조직이 또 어디 있겠는가. 다만, 의료계 내부의 역학관계와 변호사단체와는 다른 구조적 차이에 대해 모른 체하고 싶지는 않다. 의료계의 문제는 이미 의료계 스스로가 더 잘 안다. 의협이 중심이 된 의료계가, 어쩌면 `콘클라베' 수준의 대화를 통해 2019년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먼저다.

마지막으로 소박한 의미의 방법론, 혹은 의협의 대관업무방식 혹은 정책적 이슈에 대한 접근법에 대해 제안하고 싶은 사례가 있다. 2009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소르본 법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3세의 아들을 라데팡스개발위원회 의장에 임명했다. 고학력 청년 실업자들 중심으로 엘리제궁 앞에서 시위가 시작됐다. 그저 피케팅이나 샤우팅이 아닌 지극히 프랑스다운 방식. 청년들의 캠페인은 “사르코지 가문 입양신청.” `당신의 성이 사르코지라면 직업을 구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지금 당장 입양을 신청하십시오. 새 아버지가 보수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구해줄 것입니다.' 야당인 사회당은 아예 정당 홈페이지에 입양신청서 양식을 올려놓았다. 입양신청이 쇄도했다.

사르코지의 아들은 의장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의 자유, 청원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모두의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를 추구하는 방식이 일률적일 순 없다. 의료인의 직업적 특장과 신뢰를 드러내 보이는 방식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