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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예방이 치료보다 우선이다
[기자수첩] 예방이 치료보다 우선이다
  • 조준경 기자
  • 승인 2023.08.29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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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의사들은 예방이 치료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명의 화타는 얼굴 빛만 보고도 병의 발생을 차단한 형들이 자신보다 낫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에 미우주무(未雨綢繆)라는 성어가 있다. 비가 오기 전에는 새도 둥지를 점검한다는 뜻이다.

교훈은 옛적에 다 나와 있는데 우리나라의 입법·행정기관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고대인들의 지혜를 못따라 가는 것 같다. 어떤 일은 예방은 커녕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켜 놓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 몇 주간 우리 사회 도처에 동시다발적으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 다수의 사상자가 나온 사건부터 큰 피해 없이 끝난 사건들도 있다. 피의자 중 일부는 조현병 진단을 받았으나 장기간 자의에 의한 치료 중단 및 거부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 같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중증정신질환자가 셀 수 없이 많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선 중증질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았다면 흉악 범죄들이 예방 될 수도 있었다는 의견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환자들이 적시에 치료를 받을 기회를 정부 기관과 국회가 앗아 갔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자 입원은 2016년 국회에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 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처리되며 어려워졌다. 헌법재판소가 앞서 가족 2인 동의와 전문의 1인의 결정으로 강제입원이 가능했던 구 정신보건법 24조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국회가 법률 개정으로 후속처리했다. 그 결과 비자의 입원은 이전보다 제출해야될 서류도 복잡해지고 절차도 까다로워졌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비자의 입원이 법 시행 이후 24%p 넘게 감소했다고 자찬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뭔가 대단한 개선이 이뤄진 것 같다. 하지만 정신질환자 관리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들이 지게됐다. 입원 절차 전반을 가족 부담으로 떠넘기니, 가정 안에서의 상처도 곪아 터지고, 결국 환자를 방치하는 지경까지 갔다.

자·타해 위험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단순히 위험징후 예측 만으로 입원시켰다가는 병원이 감당해야할 법적 부담이 크다. 그러니 누군가가 다쳐야만 입원시키는 사후약방문만 반복된다.

문제는 바뀐 입원 절차만이 아니다. 기존에 있던 정신과 병상도 2021년에 법안이 개정되며 대폭 감소했다. '코로나19 등 감염병관리강화와 입원환자의 인권보호'를 명분으로 병상 간 이격거리 확대의 결과다. 최재영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장은 입법예고가 나온 2020년 12월에 시행규칙이 개정되면 1만 8000명여명의 환자가 사실상 강제퇴원될 거라며 우려했다. 전자공청회 사이트에는 수천 건의 의료인 및 환자가족들의 반대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같은 기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병상 부족으로 정신과 응급입원 반려는 늘고 있었다. 이미 정액수가로 묶여서 경영난을 겪던 정신병원들의 폐원을 복지부가 거들어준 것이다.

모든 병이 마찬가지겠지만, 정신질환은 예방이 중요하다. 의사들은 조현병은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악순환에 빠져서 치료가 더 힘들어진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환자 스스로 문제인식을 하지 못하더라도, 필요하다면 비자의 입원을 통해 치료를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진정으로 환자와 주변인의 인권을 돕는 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중증정신질환의 경우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가가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지금에서야 '사법입원제'와 같은 대책이 나오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국민안심입원제'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예방책을 내놓았다. 환자가 치료받을 기회를 빼앗기는 것보다 큰 인권침해는 없다. 중증정신질환자 입원 절차는 서둘러 개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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