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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의료기기 허용' 대법 판결에 의료계 반발 고조
'한의사 의료기기 허용' 대법 판결에 의료계 반발 고조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3.01.02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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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허 의료행위 봇물 터질 것… 국민 생명에 위협"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의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의료계의 반발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앞으로 유사한 무면허 의료행위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국민의 생명을 더욱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지난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현행법상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의사가 진단 보조 수단으로 쓰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강원도의사회는 지난 29일 성명을 내고 “이 사건은 무려 10년 전, 오진을 한 한의사를 처벌해달라는 사건으로, 대법원은 묻고 따지지도 않고 한의사에게 ‘오진’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향후 초음파라는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판례를 바꿔 준 것”이라며 “대법원은 부끄러운 거짓말로 얼룩진 판결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의사회는 “한의사가 초음파 검사의 적임자이며 오진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과 자격을 갖췄느냐. 시대 변화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면 법은 언제 만들어야 하느냐”며 “한의학적 원리 행위와 무관해 증명이 안됐다고 했는데, 한의학적 원리가 무엇인지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한의사에게 '국민의 선택권을 넓혀준다'는 미명아래 현대의학 의료기기가 인체 위해성이 낮으니, 널리 사용해도 된다고 종용하고 있다”며 “희대의 엉터리 판결은 의료 면허제도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남편이 한의사이면서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대법관이 제척사유임에도 회피하지 않고 판결에 참여한 점은 공정하지 못한 재판이므로, 절차적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며 “방사선 피폭이 없다고 해서 인체에 위해가 없다고 판단했으나, 암을 제대로 판독하지 못해 환자의 소중한 건강과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보건위생상의 소극적 위해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비논리적이며 결론을 정해놓고 필요한 내용만 가져와서 짜 맞춘 듯한 판결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며 “잘못된 판결이 불러올 재앙에 대비해, 뜻을 같이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결사 항전·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같은 날 대한내과학회도 "초음파 진단기기의 사용을 허용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의료의 근간을 무너뜨린 처사"라며 "대한민국 의료의 전문성을 부정해 앞으로 국민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는 국가 재난 상태로 이어질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학회는 “초음파기기를 이용해 진료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지 않다는 결정은 초음파기기 사용에 대한 무지함의 소산”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을 허용한 대법원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국회와 정부는 즉시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하는 의료법령 개정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동시에 향후 파기환송심에서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도 “정확한 진단이 보장되지 않는 진단 행위는 그 자체로 환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며 “전문적 수련을 받지 못한 한의사가 교육과정 중 수업을 이수했다고 해서 임상에서 환자 진료에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성 제고의 기초가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운전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이번 판결에 찬성표를 던진 대법관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본인이나 가족이 아플 때 한의사에게 초음파 검사를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의사회는 "대법원의 판단 기준은 결국 면허의 범위를 모호하게 만들어 이원화돼 있는 대한민국 의료체계에서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무자격자들에 의한 무면허 의료행위가 만연하게 만들어 국민 건강에 위해가 될 것”이라며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에 현명한 판단을 촉구했다. 

대한일반과의사회 역시 “과학적 원칙을 무시하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시키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노골적으로 비유하자면 '사법 살인'이나 다름없다”며 “향후 한의사들의 몰지각한 초음파 사용으로 인해 제때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한 환자가 치료시기를 놓쳐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사법부가 자행한 살인”이라고 경고했다. 

의사회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의 상업적 이득을 위해 면허자격이 없는 자들이 마음대로 무면허 의료행위를 자행하고 법원에서 소송을 끄는 동안 많은 환자들이 죽어나가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어도 이를 복구할 방법이 없다”며 “사법부가 의학의 전문가인 의사들의 의견을 외면하고 내린 외눈박이식 판결로 인해 피해받게 될 국민들의 고통과 눈물에 대해 참담함을 감출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국민과 함께 잘못된 판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법리상으로도 다시 한 번 올바른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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