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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사회적 신뢰
의사의 사회적 신뢰
  • 의사신문
  • 승인 2008.02.2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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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인제대 보건대학원 교수>

▲ 김광기 교수
어느 한 TV 드라마를 통해 본 의사들의 일상이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 어느 전문직 훈련과정보다도 더 힘들게 노력하지만 미래는 밝지 않고 심지어 흉부외과를 택하였다는 이유 하나로 잘나가는 전문과의 수련의에게 애인을 빼앗기어야 하는 장면, 임상의사결정에서 방어진료 행태가 최선이 되어야 하는 것,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 원인과 과정에 관계없이 의사는 환자 분풀이의 대상이 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면 일반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혹시 “진료하시느라 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의사 선생님께서 최선을 다 하셨을 텐데…어쩔 수 없지요…아무튼 감사합니다”, “의사선생님들 대우 좀 개선시켜주어라!”, “환자가 존엄성을 가진 인격체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제도를 바꾸어라!” 이렇게 말하는 국민들이 생길 수는 없는 것일까? 아마도 많은 의사들은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의협도 이것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가능할 것인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정부가 의료정책을 제시할 때, 의사에게 불리할 것 같은 것에는 “안돼!”라고 머리띠 매고 투쟁하는 전략으로 계속하면 될 것인가?

자본주의 국가 그것도 미국과 같은 곳에서 의사들이 전문가로서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고 집단의 노력에 의해 `쟁취한 것'이라고 한다. 사회가 사회적 지위를 그렇게 내어 줄 수밖에 없도록 의사협회가 그렇게 조건을 만들어 갔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일이다. 의사집단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내세우며 필요하면 자신의 치부를 과감하게 자율정화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로부터 `신뢰'를 `쟁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율을 확보하였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자정활동을 엄격하게 하면서 결국 자신들의 전문영역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내 왔다. 클린턴 정부가 그렇게 갈망하던 전국민의료보험제도가 제도화되지 못하였던 것도 미국의사협회의 반대가 크게 한 몫을 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의사들이 개인적인 비난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의사들이 국민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사회적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개인적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사집단 전체를 평가하는 국민들의 시각에 신뢰를 심는 일이라고 본다. 의사들의 전문성을 제고함과 동시에 전문가적 윤리를 강화하고 자율정화활동을 보다 엄격하게 하는 일과 함께 국민의 건강을 위해 봉사할 때 의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쌓여갈 것이다. 현재에도 이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인식 속에는 전문가적 윤리는 점점 약해지고 있고 자율정화보다는 `제 식구 감싸기'의 원형 같은 전문가 집단이고 사회봉사는 주도적이기보다는 다른 집단이 하는 것 만큼만 하는 집단 정도로만 각인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사회봉사를 하려면 국민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아직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한다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대학생 폭음폐해예방, 청소년 흡연 또는 음주예방, 어린이 안전사고예방 등과 같은 것을 전략적으로 선택해 과감한 투자와 함께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소위 부가가치가 있는 사회봉사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특정문제를 전략적으로 선택해 한정된 자원을 그곳에만 집중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문제를 해결 해낸다면 그것이 부가가치가 있는 사회봉사라고 생각한다. 미국의사협회는 지금 대학생 폭음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위해 여러 대학교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건강에 관한 것이지만 정부도 잘 나서지 않는 일, 그렇지만 꼭 필요한 일, 지금 당장은 의료서비스를 많이 이용하지 않지만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집단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면에서 부가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의사집단을 지켜보다 보면 저절로 “의사 선생님”이라는 존칭이 국민들 일상 속에서 쉽게 나올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왜?' 라는 의심을 할 것이고 바로 이 때, 의사 개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고 우리가 만든 제도 때문에 환자들이 이렇게 병원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점을 알린다면 의사들이 원하는 제도는 좀 더 쉽게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너무 순진하고 철없는 생각인가? 그렇지만 한번 해 봄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광기<인제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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