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차의 이런 부분이 좋다
나는 이 차의 이런 부분이 좋다
  • 의사신문
  • 승인 2007.10.10 1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합리함도 잊게하는 자동차가 주는 감성

필자에게 얼마 전 엔진이 망가진 mi16을 한 대를 기증한 분이 있었다. 나이가 50대 후반인 분이 얼마 전까지 꼼꼼하게 차를 살피고 만지면서 1990년식 차를 타고 다녀서 마니아들 모두가 놀랍게 좋은 차의 상태를 신기해 하기도 했다. 차의 정비에 대한 글도 많이 남기고 여러 가지 작업도 많이 했다. 주인의 사랑을 이토록 받은 차는 아쉽게도 24만킬로에서 2번 크랭크의 문제로 블록이 깨지면서 엔진이 완전히 망가지고 만 것이다. 바로 직전에 차는 정기검사와 정밀검사를 가볍게 통과했고 연료펌프와 서스펜션 그리고 필터 같은 것을 완전히 정비했다. 클러치도 얼마 전 교환했고 하부도 모두 새 것으로 갈았다. 오로지 엔진만 망가진 것이다.

필자는 같은 마니아로서 블록과 크랭크를 그냥 드리겠다고 제언했다. 평상시의 필자의 성향으로 보면 파격적인 제의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차를 타보고 싶다는 것이 차주의 생각이었고 그 정도 고생했으면 차로서도 본전은 다 한 셈이다. 물론 그 차에는 많은 돈이 들어가서 거의 조금 탄 차 수준의 정비가 된 상태이고 그 전에도 전 차주였던 미캐닉이 차의 모든 것을 갈아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10년이 지난 차인데도 고장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자 차는 한 두 군데씩 망가지고 우리들은 고치는 과정까지도 동호회의 사이트를 통해서 잘 알고 한편으로는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차가 한번 완전히 망가지자 새로운 차종으로 바꾸자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하긴 고치면서 질리는 것은 당연하다. 오래된 차의 실제라는 것은 배전기(디스트리부터)를 한번 당기니 푹하고 부스러지는 세계를 말한다. 호스를 당겨도 그냥 찢어지는 수가 있다. 타다보면 질린다. 그러니 대부분 차를 바꾸게 된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차의 수명은 거기서 끝난다.

결국 그 차를 받아서 엔진을 새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모든 엔진 주요부품이 새것으로 한 두 벌씩은 있었고 언제가 한번 오버홀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그 꿈이 실현된 것이다. 차들은 많으니 한 대가 더 늘어봐야 애물단지인 것을 알면서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영국에서 206rc의 엔진을 직접 들여와 구조변경 신청을 하고 180마력의 차를 만드는 일은 아주 나중으로 미루어 질 것이 분명했다. 그냥 성능이 좋은 155마력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신 필자의 창고속에 있던 신품의 엔진 부품들이 세상에 나올 기회가 생겼다. 운이 나빴으면 한 번도 사용되지 못하고 버려질 수도 있었던 부품들이다. 필자에게는 다시 만든 엔진들이 몇 개가 있기 때문에 엔진들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사용될 기회가 없다. 그래서 엔진을 새로 만들어도 그냥 그저 그런 것이다. 대신 돈만 들어간다. 차를 견인해도 돈이 들어가며 인건비와 오가는 시간을 포함 이들은 모두 돈이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동차의 중고가격은 이미 한참 초과하고도 남는다. 몇 배가 더 든다.

문제가 일어난 엔진을 빼면 나머지는 꼼꼼히 관리되었다. 차를 복원하거나 오래된 차를 살려보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첫 번째 조건이 차의 상태가 아주 좋아야 수고롭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태가 아주 좋은 차는 매우 드물다. 모든 부속을 갈아대다 보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치고 만다. 어떤 부분을 교체했는데 다음달에 그 옆의 부분을 고치기 위해 같은 부위를 또 뜯어야 한다면 지쳐버리고 만다. 그리고 계속 고장이 난다. 이것이 오래된 차나 클래식카의 문제들이다.

정비성이 좋으며 고장도 잘 안 나는 차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매니아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이런 것들은 모두 소용이 없다. 아주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탈리아의 차들이 차를 아주 좋아하는 차주의 속을 태우기도 한다. 부품이 비싸며 구하기도 어렵지만 차를 몰 때의 그 기분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 아무리 닦고 말려도 한쪽 구석에서부터 녹이 좌악 번지는 것을 보며 살짝 미쳐버리는 사람도 있다. 감성이나 `나는 이 차의 이런 부분이 정말 좋다'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것으로 차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이 정도가 되면 자동차 생활이 아니라 그냥 문화활동으로 보아주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자동차 마니아를 남편으로 둔 부인들은 그냥 낚시광이나 골프광처럼 보아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조금 이상하게 보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일들을 설명하는 이유는 많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란치아 이야기'는 비슷한 문제를 재미있게 설명했다. 다음주의 주제이기도 하다. 

〈송파 대광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