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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전문적 권력을 지켜나갈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전문적 권력을 지켜나갈 것인가
  • 의사신문
  • 승인 2006.11.1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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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3년,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신 경영을 선언했었다. 그리고 겨우 10년 만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기업의 글로벌 환경 못지않게 우리 나라의 의료계도 지난 2000년 의약분업을 기점으로 현재 어마어마한 변화의 정점에 서 있다. 이러한 변환기의 1년은 과거 우리가 지나왔던 평화로운 10년보다 더 많은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짧은 시간에 너무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인력과 예산을 가진 보건복지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파트너로서 견제와 협력을 통한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료계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정책적으로 제어하려하는 국회 내의 반의료계 정서에 맞서서 끊임없이 투쟁을 해야만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흔히 주변의 동료 의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열 명에 아홉은 현재의 처지에 대해 울분을 토로하고, 때로는 정부 여당을 매우 강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곧장 체념하는 투로 자조 섞인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필연적인 측면이 상당히 많다. 과거 우리는 지금에 비해 많은 권력을 갖고 있었다. 권력에 대한 `French & Raven'의 분류에 따르면 의사들은 전문적 기술이나 지식, 독점적 정보에 바탕을 둔 `전문적 권력'을 충분히 누려왔다. 즉 지식과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절대적인 존경을 받아왔으며 거기에 상응한 경제적 부를 누리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의약분업을 계기로 의사들이 독점하고 있던 의료 정보들이 부분적으로나마 공개되게 되었고, 이러한 정보 공개의 요구들은 갈수록 거세어지고만 있다. 이러한 상황들이 의사를 끊임없이 수세로 몰아가고 있으며 동시에 전문직의 독보적인 위치를 허물어뜨리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그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정당히 누려야 할 전문적 권력을 지키기 위한 정교한 전략이나 로드맵을 갖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서 아주 빠른 속도로 전문적 권력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권력이 아직은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권력은 어떠한 물리적 강압에 의해서 박탈되기 힘든 무형의 것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료 의사들은 우리가 가진 이 권력 구조의 변화에 대해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줄어드는 수익에 급급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수많은 도전에 직면한 의사들의 현재 상황은 단 시일 내에 간단히 해결될 내용의 문제들이 아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는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통상적인 사고의 틀이 아닌 변화와 혁신의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정부·대국회 활동을 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 각 분야와 단체들에 의사들이 많이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인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협이나 시도의사회 뿐만 아니라 시군구의사회도 그 나름대로 지역사회 직역단체의 대표로서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하여야만 할 것이다.

더불어 전문직의 자율성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윤리적 준거를 갖고 우리 스스로를 담금질해야만 할 것이다. 과거의 관행이란 핑계로 이루어졌던 모든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관습, 과거에 횡행했던 권위주의적 자세, 리베이트 논란 등 제약사와의 부적절한 커넥션, 전문직이 갖기 쉬운 배타성이나 폐쇄성을 우리가 스스로 타파해 나갈 때 비로소 우리의 전문성이 새롭게 평가받게 되고 전문가적 권위도 바로 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의료계를 바라보는 한국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의 시각을 우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됨으로써 의료계는 현재 남아있는 전문적 권력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봉식 <노원구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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