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센쿠미의 병사 치료, 위생시설 개선 <18>
신센쿠미의 병사 치료, 위생시설 개선 <18>
  • 의사신문
  • 승인 2007.07.1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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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시험삼아 이사미가 통솔하는 장사들이 군거하는 모습을 한 번 볼 것을 희망하니 이사미는 차장인 히지가타 토시죠오(土方歲三 : 바쿠후 말기의 신센쿠미의 부장. 무사시 지역 출신으로 토바후시미의 전쟁에서 패배한뒤 관군과 싸우다가, 하코타테 고료오카쿠에서 전사함)에게 명하여 안내하게 하고 또 본인도 따라왔다. 그 상태를 보니 마치 양산박(梁山泊)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장사는 도검을 연마하고 소의(銷衣)를 철(綴)하여 용장격렬(勇壯激烈)한 모습이 대단히 장쾌하였다. 총인원은 수백 칠팔십명 정도일까? 그 가운데는 옆으로 누운 자, 드러누운 자, 또는 나체로 음부를 드러낸 자가 있었다. 매우 체계가 잡혀 있지 않고 그 무례하기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가 있었다.  

 내가 한 바퀴 돌고 나서 이사미를 책망하여 말하길, 오늘 순행하면서 한 번 보니 국장, 차장까지 모두가 나체로 앙와(仰臥)하여 그 모습을 고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어찌 웃사람에 대하여 지극히 무례한 짓을 하는가. 이들 장사를 지휘하는 법이 마땅함을 얻었다고 할 수 없다. 모름지기 규율을 엄히 하여 절제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사미가 대답하여 말하길, 진실로 귀설(貴說)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병자들이고 따라서 구태여 속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이에 대한 용서를 바랄 뿐입니다 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길, 총인원의 1/3이나 병자란 말인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생각하건대 의료를 베풀지 못한 것 같은데 어떤가? 이사미가 대답하길, 아닙니다, 의사를 초청하여 치료를 부탁하여도 각자 그 믿는 바를 따를 뿐입니다.  

내가 말하길, 정말로 그렇다면 이는 득책이 아니다. 마땅히 하나의 쾌활한 실내에 요를 나란히 두어 평와(平臥)케 하고, 의사는 날마다 이들을 회진하여 그 처방전을 만들어 약의 조제를 명하고, 간호부를 두어 기와(起臥:일상생활)와 음식의 사용을 처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 명의 의사로 다수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또 욕장(浴場)을 두어 전신의 불결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병원을 모사한 그림을 그려 보여주고 환자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고, 동시에 서양병원의 개략도 설시(說示)하였는데 그렇게 하는 사이 2, 3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히지가타(土方)가 와서 말하길, 이미 선생의 말에 따라 병원을 설치했습니다. 원하옵기는 한 번 둘러 보셔서 더 나은 지휘를 부탁합니다 라고 하였다.  

곧 토방(土方)의 권유로 가니 홍간지(本願寺) 안에 있는 28일강(日講)의 집합소를 빌려서 병자를 이송하여 나란히 요에 누이고, 또 욕통 3개를 두어 욕장도 이미 정돈하였다. 나는 그 조치의 민첩함에 크게 놀랐다. 토시죠오(歲三)가 말하길, 병사는 졸속(拙速)을 존중한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일을 두고 말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서로 크게 웃었다. 곧 장부를 만들고 남베 세이이치(南部精一)의 약국에 가서 약을 조제하게 하고, 세이이치(精一)가 매일 아침 회진하는 것으로 하고 나는 일주일에 2회 왕진하여 치료를 베풀기로 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환자의 대반(大半)은 쾌복(快復)되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병은 대개 감기이고 골(骨) 관절통인 사람이 많았고, 식중독이 그 다음이고 매독이 또한 그 다음이었다. 다만 어려운 병은 심장병과 폐결핵에 걸린 두 사람뿐이었다. 그 밖의 70여 명의 환자는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완전히 나았다. 사람들은 모두 크게 기뻐서 그 은혜에 감사했다.   후에 어느 날 자세히 병실을 점검하니 주방이 매우 불결했다. 음식 남은 것, 썩은 고기 등이 여러 통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곧 국장에게 보고하여 말하길, 이 폐물을 이용하여 돼지를 키우면 반드시 4, 5두를 키우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그 돼지가 충분히 살찌게 되면 도축하여 대중(隊中)의 장사(壯士)가 먹을 수 있다. 체력을 더하는데 참 좋을 것이다. 또 패반(敗飯)을 씻어서 건조시켜 닭의 사료로 쓰면 알을 얻어 이것 또한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번에 왕진을 갔는데 이미 돼지 여러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이후 때때로 도살하여 먹게 되었는데 대원은 이것을 선생의 선물이라고 하여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또 도축된 돼지 방광을 가져다가 얼음찜질용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임시응급한 때를 위해서 금창(金創 : 검, 창에 의한 상처) 봉합을 가르쳤다. 대원 중에 야마자키 죠(山崎烝)란 자가 있었다. 원래 의가의 아들이고 성품이 온후하고 조용하여 일을 잘 감당하였다. 이사미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구급법을 구수(口授)하여 크게 대중에게 편익이 되었다. 죠오가 스스로 웃으며 말하길, 나는 신센쿠미의 의사다 라고 하였다. 안타깝게도 이 사람은 나중에 후시미(伏見;쿄오토오 남부)에 있었는데, 납량하던 저녁 때 유탄에 맞아서 죽었다고 들었다. 실로 지극히 비참한 일이라 할 것이다.  

쇼오군가는 칙명을 받들어 오오사카성에 있었다. 하타시타(旗下)의 사무라이에게 문무를 장려하고 날마다 서양식의 병사를 조련하고 때때로 검열하였다. 하타시타의 사무라이인 야마쿠치 칸베에(山口勘兵衛)를 사(使)로 삼아 쵸오슈우(長州)에 파견하여, 모오리(毛利:모오리 타카치카 에도 말기의 쵸오슈우 번주. 존왕양이를 주장하고 하마구리고몬의 변에서 패배하였으나, 후에 사츠마와 동맹하여 막부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함) 부자에게 상경하여 사죄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러나 쵸오번(長藩)의 폭인(暴人)이 밤에 그 여관을 습격하자 칸베에(勘兵衛)는 이들과 격투하였다고 하는데 중과부적으로 마침내 죽었다. 그 종자(從者)는 이미 주명(主命)을 받고 있어서 도망하여 오오사카에 와서 그 상황을 자세히 진술하였다. 생각하건대 칸베에(勘兵衛)는 검격(劍擊)을 잘하고 꽤 침착 용감한 자였고, 그래서 그 전사 상황은 살펴보니 매우 비참하였다.  

이 보고를 접하자 급히 병력을 진격하기로 결정했고, 300년 전의 예에 따라서 고오슈우(江州) 히코네(彦根)의 성주 이이 카몬(井伊掃部 : 에도말기의 다이로오. 오우미쿠니 히코네 번주. 칙허를 얻지 않고 일미수호통상조약을 조인함. 에도성 사쿠라다몬 바깥에서 죽임을 당함) 카미(頭)로서 선봉을 삼았다. 출진하는 날 쇼오군가는 근시(近侍)하는 자를 데리고 성루에 있고, 해자를 사이에 두고 그 행군을 바라보았다. 나도 또한 호종 중이었다. 이 때 히코네(彦根)의 총인원 400명은 케이쵸 (慶長 : 고미즈노오 천황때의 연호. 1596년 10월27일∼1615년 7월 13일)에 코오슈우(甲州)로부터 귀종(歸從)시킨 자로서 일찍이 무가)에서 일하여 적장(赤裝)의 구(具)를 입었다. 이것은 옛날 세이가 하라의 역(役: 세이가 하라의 전투, 기후현의 지명으로 1600년 이곳에서 승리한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의 실권을 잡음)에서 나오마사(直政)를 따라서 분투하고 아카오니(赤鬼)라고 불리우는 자의 후예로 이이가(井伊家)에서는 자부하는 자이지만 수 백년의 태평으로 인해, 뱀이 껍질을 벗듯이 그 외형만이 존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김강현 역<국립의료원 신경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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