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실사구시적 일관된 교육정신 아쉽다
실사구시적 일관된 교육정신 아쉽다
  • 의사신문
  • 승인 2006.10.24 12: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용일<을지의대 명예총장>

▲ 김용일 총장
전국의 41개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이 운영하는 교육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선조의 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이 입고 다녔던 도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10년이 넘는 세월 속에 비쳐진 각 대학 교육과정의 변천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을 위하여 교육과정을 바뀌고 있는가 하는 우려의 눈으로 교육계획을 볼 수밖에 없다.  

오스키(OSCE, 객관적 임상능력시험), 통합교육, 문제중심학습(PBL), 임상수기 교육, 의사소통 기법, 전문직과 윤리성 등 그 어느 하나도 의학교육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서 각 대학마다 그리고 해마다 새로운 교육과정을 추가하고 있는 것이현실이다.  

또 요즘에는 일본식 의사국가시험을 본떠서 컴퓨터를 이용한 공용시험이 거론되고 있건만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를 파악하기조차 힘든 일들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서양 어느 대학, 또는 어느 학술지에 근사하게 보이는 교육 프로그램이 소개되면 금방 하나씩 교육과정 중의 일부가 추가되기 시작하는 이상한 대유행이 일어나면서 이 나라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하나씩 추가되지만, 진작 가르침을 주는 교수들의 기본 교육정신(교수가 가르쳐야 학생이 배운다)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  4년 내지 6년간의 교육과정에 하나씩 새로운 교육계획이 추가되어가는 가운데 우리의 교육과정은 이퇴계 선생의 도포처럼 누더기가 되고 만 것이다.  

전체의 흐름을 읽으며 조화를 구하려는 생각 대신 조각조각이 되어버린 의과학적 지식이 학생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시류편승 즉흥적 누더기 교육과정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은 마치 퇴계 선생이 자신의 누더기 도포에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유학의 체계화에 자신의 일생을 바쳐 성리학의 개념을 이뤄낸 듯한 기분으로 자신의 소신에 맞추어 학생교육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20년도 넘는 때의 일이다.  

새로운 교육과정 개편을 위한 교수회의 석상에서 K 교수가 `교육과정이 바뀐다고 교육이 제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필요한 것은 교육에 임하는 교수의 마음가짐이다.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정성들인 교육이 있다면 교육과정의 변화 없이도 학생들은 훌륭한 의사로 자랄 수 있다'라고 교수들의 교육과정 개선에 대한 안이한 생각을 따끔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내과학계의 거성이었던 오슬러(Osler)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대학 당국의 잘못된 생각 즉 교육과정이 바뀌면 교육이 잘 되어질 것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파한 적이 있었다.  

교수들의 각성을 요하는 따끔한 이 말 한마디로 교수회의에 참가한 교수 모두를 숙연케 했던 장면이 생각난다.  

교육이란 장차 의사가 될 학생들의 숨은 자질을 끄집어내어 닦아주는 것이지 지금처럼 인터넷을 뒤지면 다 나올 수 있는 이야기를 교수들이 다시 읊어 주면서 교수의 지식을 학생 머리에 쑤셔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교육이라는 용어의 어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알맹이 튼실한 전체조감 교육계획 필요

교육이라는 영어 단어인 educat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educe에서 유래한 것이며 `끄집어낸다'는 뜻을 갖고 있다.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학생을 한 곳에 모아놓고 교수가 아는 것을 일방적으로 학생에게 `퍼 먹여 주는' 것이 아니다.  

대학은 장차 지역사회 주민의 건강을 담당할 의사의 자질 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목표를 다듬고, 이에 알맞은 필수와 선택, 자율적 학습과 협동을 강조하는 소단위 교육이다.  

암기형 지식의 강요가 아니라, 조만간 눈앞에 부딪힐 문제의 핵심을 찾아내는 문제중심 학습, 그리고 의사들의 직업성(professionalism)과 의료인 윤리성을 담을 실사구시적인 정신으로 교육전체를 조감하는 교육계획이 아쉽다.

김용일<을지의대 명예총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