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참 나쁜 의사입니다"
"당신은 참 나쁜 의사입니다"
  • 의사신문
  • 승인 2007.04.2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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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과 3월은 서울시의사회원들과 서울시의사회 입장에서는 숨 가쁘게 돌아간 두 달이었다. 2월 6일 서울시의사회 주관의 의료법 개악 저지 과천집회를 필두로, 11일 과천 전국집회, 3월 15일 보사연 의료법 공청회장에서의 반대집회, 16일부터 23일까지 정부청사와 국회 앞에서의 릴레이 1인 시위, 이 여세를 몰아 다시 21일 명실상부한 범의료계 과천 전국집회가 개최되었다. 일요일의 과천집회를 제외하더라도 최소한 서울시의사회원들은 2∼3차례 진료실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의사들은 2000년 의권투쟁 이후 수차례에 걸친 집회에 이제는 이골이 나서 의약분업같이 내일 당장 그 변화가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심각성과 위기상황을 집행부가 아무리 호소해도 쉽사리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 현재의 분위기다.

더구나 작금의 상황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내 발등의 불부터 끄는데 급급한 나머지, 불과 1∼2년래 코앞에 펼쳐질 심각한 위기상황에 대해서도 내 귀와 눈에는 실감나게 들어오지 않는 처지다.

더더욱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때 의료계의 격렬한 투쟁에 놀란 이후 얄밉게도 의료계의 여러 정황을 면밀히 관찰 분석한 뒤, 교묘한 작전과 전술을 사용하여 각개격파 식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허나 이에 대응하는 의료계는 전술 전략 면에서 크게 미흡해 정부가 의도하는대로 각 과별, 각 직역별로 복합한 경제적 이해관계와 이해득실에 따라 분열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우리는 의사'라는 한 울타리에서의 동질성과 정체성마저도 언제 상실할지 모르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최근 나에게 단골로 오는 환자가 내원했다. 습관적으로 환자의 병력을 보니, 과천 전국집회 전날인 3월 20일에 내원하여 2일치의 처방을 받고 간 환자였다. 2주가 지나 다시 내원한 환자의 진료기록을 검토해 본 결과 치료를 계속 받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않았음을 환자 보호자에게 책망 겸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보호자 왈, 다음날 열이 나고 상태가 좀 더 심해져 급히 내 클리닉을 방문하였으나 집회 참석 안내문만 덩그러니 붙어 있고 문이 잠겨져 있더란다.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수소문 끝에 멀리 떨어진 동네까지 가서야 비로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어 “그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종합병원까지 갈 뻔했는데 다행이었어요. 그 선생님이 어찌나 고맙던지요…”라며 오히려 `환자를 볼모로 한 당신, 당신은 참 나쁜 의사입니다'라는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며 나를 책망하는 것 같았다.

순간, 부아가 확 치밀어 올랐다. 누군 비오고 바람 부는 날 문 닫고 나가 떨면서 구호 외치며 `나쁜 의사' 자처하고, 어떤 분은 따스한 진료실서 다른 의원의 단골 환자들까지 진료하며 의사로서의 소명과 책임을 다하시는 `좋은 의사' 되시고….

물론 집회에 불참한 대다수 회원들도 개인사정으로 인해 집회참석만 못했을 뿐 집행부의 뜻에 따라 진료실 문을 닫았고 실제로 당일 집회 날 진료를 시행한 회원들은 극소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간 2000년 이후 전개됐던 수차례의 집회투쟁 후에 비록 그 숫자가 적을지라도 참가자와 비참가자, 성금 납부자와 미납자간의 형평성문제는 늘 해결되지 않는 갈등과 분열의 불씨였다. 결국, 확실한 해결책 없이 참가여부는 순전히 본인의 가치관과 인생관에 따라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의 가장 큰 이슈인 의료법 개악 저지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 또 어떤 투쟁방식으로 회원들을 지금보다도 더 곤혹스럽게 할지 알 수는 없다. 면허증을 반납할 수도 있고, 무기한 진료거부 투쟁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바라건대 그 어떤 투쟁방식이 되든 `당신은 참 나쁜 의사' `당신은 참 좋은 의사'로 국민들에 의해 양분되는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의사들은 자신을 찾아주는 환자들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또한 갈등의 해결방식에 있어서도 대다수 의사들은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고 국민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공허한 원칙론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진료실을 떠나는 투쟁방식에 또한 문제가 많다는 사실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단 어쩔 수 없이 행동통일을 요하는 어떤 극한상황이 도래했을 때, 원칙론을 따지기에 앞서 바로 옆 의원의 내 동료의사가 나로 인해 `참 나쁜 의사' 라는 올가미에 씌워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박상호 <서울시의사회 의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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