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리더십의 오만
리더십의 오만
  • 의사신문
  • 승인 2007.03.14 17: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어사전에서 Lead(리드)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수많은 해석 중에 유독 `모범' 이란 단어가 눈에 띤다.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참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리더란 대중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도 아니고 달콤한 언변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달변가도 아니다. 포퓰리즘의 망령에 젖어 신기루의 환상으로 대중을 이끄는 것은 분명 이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리더가 아닐 것이다. 리드의 뜻 중에 `모범'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리더란 대중 앞에서 스스로 기준이 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중도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존중과 공감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동의'를 통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리더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리더십이란 방향을 제시하기 전에 스스로가 나침반이 될 수 있어야 하고, 이상향을 말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대중에게 이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적지 않은 아이들이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이름을 말한다고 한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제 한참 크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분은 존경해도 좋은 분이니 반드시 인생의 모범으로 삼거라'라고 말해줄 만한 정치인이 한 명도 없는 것이 개탄스럽고 미안할 따름이다.

리더십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바이러스와도 같다. 리더의 사상과 행동은 그 사회 전반의 시대적 트렌드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며, 대중들은 리더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간에 그 눈높이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말들 중에 “괜찮아. 윗분들도 다 그러는데 뭐” 혹은 “가장이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와 같은 표현들이 리더십의 전염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존경받는 리더십과 비난받는 리더십은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대와 민심을 읽어낼 줄 아는 `균형 감각'의 정확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균형 감각이 소신과 민심의 중간 정도에 위치했을 때 그 리더는 타협과 포용으로 조직을 다스리는 선군으로 평가받지만 어느 한 곳으로 치우쳤다면 그 리더는 폭군, 독재자 혹은 허수아비 리더 정도로 평가받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균형감각은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리더 자신과 상반된 의견을 주장하는 단체를 얼마나 수용하며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 하는 포용력을 전제로 할 뿐이다. 자신에게 동조하는 참모진들을 측근에 배치시키고 정책 결정시 각계각층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같은 노선의 목소리에 더 힘을 싣는 의사 결정 방식은 선군이라 불리기엔 포용력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최근의 의료법개정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의사를 비롯한 관련 단체들과의 충분한 사전논의를 거쳤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 마디로 균형 감각이 결여된 정책 결정이었다.

투약권, 간호사 진단권과 같은 독소 조항들이 장기적으로 의료 수준의 질적 저하를 가져 올 것이 뻔 한데도 우리 의사들의 투쟁을 집단 이기주의 정도의 밥그릇 싸움으로 가치 절하시키고 있다. 도무지 의료계의 질적 수준 향상과 전문성을 고려할 줄 모르는 윗분들의 바른 길이 어디인지 답답하기만 한 지경이다.

리더란 언제나 앞에 서야 하는 자리가 아니다. 때론 대중 속에 파묻혀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읽어낼 줄 아는 시민이 되어야 하며, 가끔은 그들의 뒤에서 조직의 낙오자를 챙길 줄 아는 성직자도 되어야 한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서 조직의 큰 틀을 볼 줄 아는 의연함도 필요하며, 맨 앞에서 조직의 안위를 책임질 수 있는 강력한 카리스마도 필요하다. 이러한 마음가짐만이 `리더십의 오만'이라는 함정을 안전하게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오만에 치이지 않고 희망에 속지 않는 비전 있는 리더십, 빛과 그늘을 구별할 수 있는 생각이 바로 선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권기철 <서대문구의사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