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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1895년의 의료개혁 <24>
1894~1895년의 의료개혁 <24>
  • 의사신문
  • 승인 2007.03.1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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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 을미 개혁

1894년에는 우리 근대사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 해 2월 전라도 고부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조선 왕조의 통치 기반을 허물어 버렸고, 농민봉기 진압을 구실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했던 청, 일 양국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이 땅에서 전면전을 치렀다. 특히 일본은 처음부터 전쟁을 작정하고 조선에 파병했으며, 파병 직후 경복궁을 점령하여 국왕 고종을 인질로 삼고 미리 준비한 프로그램에 따라 `내정개혁'을 강요했다.

이른바 `갑오 을미 개혁'은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개혁'을 통해 신분제도가 공식 폐지되었고, 화폐제도와 조세제도가 개편되었으며, 태양력(太陽曆)이 채용되고 단발령이 강행되었다. 이 기간 동안 보건 위생 및 의료제도에서도 중요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서양근대의학을 표준으로 한 보건의료제도

개혁 과정에서 우리나라 중세의 대표적인 관리임용제도였던 과거제(科擧制)가 폐지되었는데 이와 동시에 의과(醫科) 시험도 사라졌다. 의과(醫科)가 폐지됨으로써 의관(醫官) 선발 방식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전통의학에 대한 국가적 공인(公認)도 중단됐다. 개혁 정부는 그 대신 일본을 모델로 하여 서양근대의학을 전문으로 교육하는 근대적 의학교를 설립하고자 했다. 의학교와 부속병원은 1896년에 개교할 예정이었고, 그를 위한 비용이 예산안에 계상되었다. 그러나 1896년 초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고 친일 개화파 정부가 전복(轉覆)되어 의학교 및 부속병원 설립안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의학교육 및 서양식 병원 설립 계획을 제외한 보건의료 개혁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종두의양성소 설립계획이 실현되었고, 내무아문에 보건행정 담당 관서로 위생국이 설치됐다. 위생국은 전염병 예방 및 의약, 우두(牛痘) 등 1880년대 서양근대의학 수용의 성과를 총괄하는 기구로 설정됐다. 정부는 처음 제중원을 위생국으로 개편하려 하였으나 외아문이 내무아문의 동의 없이 제중원을 에비슨에게 이관함으로써 이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또 내무아문(1895년 이후 내부)과는 별도로 경무청도 전염병 예방, 소독, 검역, 종두 등 일부 위생행정 업무를 관장했다. 보건의료 관련 기구가 일차 정비되자 정부는 1895년 여름 검역규칙, 호열자예방규칙, 호열자병소독규칙 등 서양근대의학에 입각한 위생 및 방역규정을 공포했다. 검역과 방역 사무에는 서울 및 각지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 의사들이 참여했다.

서양근대의학이 의학의 새 표준으로 자리잡은 배경

조선 정부는 1880년대 초부터 서양근대의학을 학습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고, 제중원을 통해 의학도를 양성할 계획도 세운 바 있었다. 미국 감리교나 영국 성공회도 따로 선교병원을 만들었고, 개항장 외국인 거류지에도 서양식 병원이 문을 열었다. 특히 외국인 거류지에서는 근대적 의학지식에 입각한 위생사업이 자체적으로 진행됐다. 조선 정부는 이런 상황을 보고 겪으면서, 서양근대의학이 전염병을 비롯한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1894년의 청일전쟁은 서양근대의학이 이 땅에 확산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전쟁의 주무대가 한반도였기 때문에 민간인 사상자도 많이 나왔는데, 그들 중 일본 군의의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 `혈의누'는 바로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전쟁 중 석탄산 소독법이 일반적으로 실시되어 큰 효과를 보았고, 전쟁에서 의학이 큰 구실을 한다는 점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이 시점에서 서양근대의학을 국가의료의 표준으로 삼는 것은 필연이었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사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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