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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학문아닌 '전 과정'에 녹아 있어야 <21>
별도 학문아닌 '전 과정'에 녹아 있어야 <21>
  • 의사신문
  • 승인 2007.03.0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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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에서 인문사회학을 가르쳐야 하나? '인문사회의학' 유감

최근 들어 의학교육계에서 `인문사회의학'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의과대학생에게 인문사회의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문사회의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아도 그런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의료인문학(medical humanities), 의료사회학(medical sociology), 사회의학(social medicine) 같은 단어는 있지만….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라고 시비를 걸 일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얼핏 생각하면 `인문사회를 치료하는 의학' 정도로 해석되는 이 단어가 우리에게 뜬금없고 생소한 것은 사실이다. 문자 그대로라면 `위기에 처했다'고 하는 인문학자들이 반색할만한 학문의 등장인 것 같다.

아무튼, 대체로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인문사회의학이란 `의사의 사람다움(인문), 사람관계에서의 올바른 상호작용(사회)'를 다루는 영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엄밀하게는 `의료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연구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고 이에 근거하여 개념을 정리하자면 의료 인문사회학(medical humanities and sociology)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기왕의 조어인 `인문사회의학'을 우선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겠다. 언어는 개념 이전에 관습이니까(물론 잘못된 언어는 의식을 `잘못'되게 규정한다)…. 이렇게 정의하기도 애매한 용어이지만, 이 단어가 주로 등장하는 것은 의학교육과정에서 `생물의학(biomedicine)'이 `지나치게, 일변도로' 강조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이다.

#의학의 밑바탕은 '인문과 사회'

실제로 인문사회의학을 표방하는 교육과정은 의학과 문학, 의학과 사회, 의학철학, 의학과 종교, 의료 커뮤니케이션, 의료경제학, 의료인류학, 의료사회학, 의료윤리학, 의료테크놀로지 비평 등등으로 구성된다.   의학이 `순수한 자연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의학은 생명을 다루므로 근원적으로 인간다움을 추구하며 의사는 다른 누구보다도 인간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의학은 인문학적 성격이 강하다. 또한 의학은 환자-의사 관계 속에서 성립하며 의학이 추구하는 환자의 안녕은 사회학적으로나 생태학적으로 사회관계 속에서 담보되는 것이므로 의학은 사회학적 성격이 강하다.   이는 의료전문직의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의사가 단순히 자연과학적인 기능인 혹은 기술인인 한 특별히 전문직으로 존중받거나 자기 자신을 스스로 관리할 특권이 주어질 이유는 없다.   의사가 전문직으로서 사회적 존중과 자율적 자기관리의 특권을 보장받아온 근거는 온전히 의사가 갖추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인문학적, 사회학적 소양 때문이다.   즉, 자연과학적 기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믿기에 이런 통찰을 키워주는 학문으로는 철학, 문학,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등등이 있다. 요컨대 인문사회의학이 강조되는 배경에는 의학교육과 실천(진료를 비롯한 의사의 활동)에 있어서 `생물의학' 전횡에 대항하는 테제가 숨겨져 있다.

#'2+6' 교육체제에서 예과교육 방기

우리 자신이 위에서 언급한 인문학적, 사회학적 소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는 논외로 하고, 이런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개원가에 있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생물의학 지식이나 기술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관리, 그리고 사람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국 등에서 학부교육을 3년 이상 마친 사람이 의학교육을 받도록 한 것이나 우리나라에서 의예과라는 것을 둔 것은 사실 이 때문이다. 원래는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생물의학의 전일적 지배'로 그 스스로 허덕일 뿐 아니라 의료계 전체를 `인간(인문) 및 관계(사회) 실종'의 빈사상태에 빠뜨리게 된 연유는 `2+6'년제 교육체제에서 예과교육을 방기하고 본과교육이 생물의학 전공자들의 시간 탐욕에 포식되도록 방기한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의학교육에서 인문학과 사회학적 사고의 강조는 너무 뒤늦은 감이 있다. 졸업 후 교육과 연수교육을 포함한 의학교육에서 인문학과 사회학적 사고를 진작부터 강조하였더라면 2000년 의약분업 사태의 귀추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교육시간 할당만으로 해결할 수 없어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사회의학을 내세운 최근의 논의에는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앞에서 잠시 시비를 걸었지만, `인문사회의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함축하는 `또 하나의 학문적 정체성'이 그것이다.   일각에서는 인문사회의학을 전체 교육시간의 몇 % 이상 가르쳐야 한다는 식의 단선적인 접근을 하는데, 사실 의과대학의 4년은 이미 수많은 학문체계와 교육내용으로 꽉 들어차 더는 어떤 콘텐츠도 수용할 틈새가 없다. 또한 인문학적, 사회학적 사고는 별도의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의학교육의 전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때 가장 효과적으로 교육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의료윤리를 별도의 학문으로 교육하는 것보다는 현실의 실천 속에서, 즉 임상실습 중에 열리는 (가칭) `Ethics and Professionalism Grand Round' 같은 것을 통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교육될 수 있다. 의학교육과 실천에 있어서 `생물의학'의 전횡은 구체적인 실천(Practice)의 맥락 속에서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지 교육과정의 몇 %를 `차지'한다고 해서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학제에 따라 접근방식 달라야

이런 측면에서 필자는 학문체계로서는 `인문사회의학'보다는 `의료의 인문사회학'이라는 개념을 선호하고, 교육과정 측면에서는 `환자-의사-사회 교육' 혹은 `프로페셔널리즘 교육'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또한 의학교육의 학제에 따라 이 영역에 대한 접근이 달라야 한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2+4년제 의과대학(예과가 본과와 완전히 구분되어 있는 대학)'에서는 교양인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인문사회학은 예과에서 학습하는 것이 원칙이다.   본과에서 그런 소양교육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인문학이나 사회학이 아니라 프로페셔널리즘 교육(전문직으로 존중받고 자율성을 담보받기 위해 필요한 인간과 관계에 대한 소양 교육)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물론 `6년제 의과대학(예과가 별도로 없이 6년 전체를 의학교육과정으로 운영하는 대학)'에서는 `2+4'의 예과에서 다루는 내용을 보다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소위 `4+4'의 의학전문대학원 교육과정에서 인문학과 사회학 그 자체를 교육내용으로 다루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당초 `4+4'가 지향하는 바는 의학교육을 받을만한 충분한 교양과 소양, 인격적 성숙을 갖춘 학부졸업생을 선발하여 의학교육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의학전문대학원에서의 인문사회의학교육은 프로페셔널리즘 교육에 국한하고, 입학생 선발 시 의학교육을 받을만한 충분한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교육과정의 효율에서 볼 때 보다 올바른 접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좌섭 <서울의대 의학교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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