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을 보내며 아내에게
장모님을 보내며 아내에게
  • 의사신문
  • 승인 2007.01.2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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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아이들과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7세 지능의 자폐증을 가진 남자가 아기를 키우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였다. 영화가 끝날 무렵 둘째가 창밖을 가리키며 눈이 온다고 했다. 정말 함박눈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고 마치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정원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것 만 같았다.

그런데 어제 저녁 무렵부터, 집 사람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잠자리에 들면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더니 눈가에 이슬이 고이며 “엄마가 많이 위독하시데…” 하는 것이었다. 조금 전 처남으로부터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순간 나는 멍청이가 된 듯이 멍하니 그렇게 누워 있었고,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줄 곧 짝사랑을 했고 지금도 사랑스런 집사람의 슬픈 소식에, 내 마음은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친정에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원래 이번 크리스마스는 지방에 계시는 장모님 문안을 가기로 약속 했었던 터였었다. 얼마 전 장모님 병문안 갔다 오면서 너무나도 약해지신 장모님을 뵙고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었다. 아내에게는 장모님께서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다는 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침 9시경 막 출근하고 나서 아내로부터 장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믿기 힘들었지만 얼마 전 장모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과 이제 아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나, 아내의 마음이 어떨까, 무엇을 해야 하나, 막막했다. 막내아들 만삭 때(태어나기 한 달 전) 친정아버지를 잃고, 이제 어머니마저 떠나가 버린 내 사랑스런 아내 앞에서….

연애 시절 아내는 목이 가늘었고, 눈에 수심이 가득할 때면 나는 아내를 `노천명'의 사슴과 자주 비교하곤 했었다. 지금 장모님에게로 가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슬픈 표정으로 먼데 산을 바라보는 가여운 사슴처럼 보여 지고,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하는 내 초라한 마음을 둘 곳이 없어 안타까웠다.

장모님의 영전으로 가는 차 안에서 누워 하늘을 보니, 유난히도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이제 장모님도 영욕의 한 평생을 접고 또 하나의 별이 되어 우리 모두에게 희망으로 남으시길 기원한다.

흰 눈이 온 세상을 가리듯 우리의 슬픈 마음도 가려줬으면 좋겠다. 이제 내 아내에게는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객원기자〉







이용태 <광진구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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