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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와 시장경제' 새 길을 열자
한국 의사직의 탈 전문화
'한국의료와 시장경제' 새 길을 열자
한국 의사직의 탈 전문화
  • 승인 2007.01.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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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국민 건강 수호자' 도구화 말아야
얼마전 의료계의 지도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2008년 정권이 바뀐다면 의사들의 어려운 처지가 좀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필자의 동의를 구하였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NO!”였다. 그 이유는 의사들이 고난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의 원인과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정리할 줄 모른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라면 사회단체이든 각 정당이든 의사가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반대로 그들은 의사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선이 그어지지 않는다. 교과서적인 진료와 수가 현실화 이외에 드러나는 게 없다. 뒤집어보면 치료 잘 해줄 터이니 품삯이나 넉넉하게 쳐달라는 얘기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설마 국가가 사람 잡는 보험제도를 만들 리 만무하고, 더욱이 의사는 어떤 경우에도 환자를 저버리지 않는다거나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의사들의 정서는 이른바 `탈 전문화'에 대한 불만으로 압축될 수 있다. 이 현상은 정치사회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를 피해가기 어렵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의 마음속에 의료는 이데올로기와 무관하다거나 아니면 그래야 한다는 잘못된 확신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생략한다. 또한 의사들은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그 바탕인 자유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어 기본적인 자세에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 분명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자유주의가 발달한 곳에서 각종 학문이 발달했고 의사와 환자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았으며 인간의 생활이 풍요로웠다는 사실이다.

의사직의 `탈 전문화' 혹은 `프롤레타리아화'에 대한 주장은 1960년대 후반 소비자주의의 확산과 신좌파 운동에서 비롯된다. 이것들은 어찌 보면 자본주의는 모순에 의해 스스로 멸망한다는 막스주의자들의 기대인지도 모른다. 의사전문직은 전 세계적으로 `지식·자율성·윤리'의 모델로 인식되나, 1973년 어느 학자는 이른바 `의사직의 탈 전문화'를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즉 컴퓨터의 발달로 지식이 보편화되어 지식의 독점이 깨지고, 소비자주의의 확산으로 의사의 자율성은 침해되고, 윤리에 대한 의사들의 주장을 허구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15년 뒤인 1988년 그는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발표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탈 전문화 현상이라고 미국에서 호들갑을 떤 내용은 동료심사제, 의사의 결정에 대한 환자의 이의 제기, DRG, HMO, 총액계약제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서 이러한 내용은 부분적으로 정부에 의해 이미 강제 시행되고 있다. 더구나 좌파 인사들은 이를 시대적 추세로 당연시하며 폐기된 미국의 탈 전문화론을 현실로 구현하고자 욕심을 부린다.

또한 의료에 대한 공공의 통제가 증가하고, 공보험이 확대되면서 행정사무의 양이 폭주하고, 과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개원을 유지하는 게 적어도 미국의 기준에서 더 힘들어졌다. 개원의가 감소하고 의사의 취업이 증가한다. 미국의 신막스주의자는 이 현상을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의사의 `프롤레타리아화'라고 주장하며 전문직의 몰락을 예언한다. 다시 말하면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의 과정 즉 노동의 목표와 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다. 의사가 프롤레타리아의 신분으로 격하되면 의학지식의 사용과 목적을 고용주가 정하게 되고, 그 결과 의사는 환자를 위하기보다 주인에게 충성을 하게 되어 윤리마저 파괴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의사라는 특권 직업과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막스주의자의 입장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의사는 실제로 관료제적 조직체 속에서도 자율성을 가지며 여타 보조직종의 노동을 지휘하고 전통적인 의사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리고 이 점에 미국의 신막스주의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최근 영리법인의 도입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다. 반대 측의 논리는 주로 미국 막스주의자들의 우려와 기대를 되풀이 하고 있다. 또한 일부 시민단체는 영리병원의 원장을 비의사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병원은 영리이든 비영리이든 행정원장과 의무원장이 양립하고 있으며 의무원장은 행정의 권위에 비토권을 가진다. 이것은 영국의 NHS도 마찬가지고 국내의 일부 종교재단의 병원에서 운영되고 있는 실례다. 또한 정부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달이 미숙한 단계에 머물고 있음에도 영리법인의 극단적 유형인 주식회사를 상정한다. 이에 영리법인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단계적 도입을 주장하는 의사협회의 주장이 책임감 있는 자세로 단연 돋보인다.

한국에서 의사직의 탈전문화는 예나 지금이나 의사를 도구적으로 쓰려는 정권과 정부 그리고 일부 학자에 의해 자행됐다. 의사 윤리의 법률적 강제, 환자와 의사의 선호 불인정, 강제지정제로 인한 의사의 기본권 유보, 수가와 약가의 일방적 결정, 일부 지불제도의 일방적 변경, 행정 전산화의 강요, 진료비의 무분별한 삭감 등이 그러하다. 서구의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약대의 6년제와 약사의 일차진료 허용, 간호사의 단독 진료 허용, 한의사의 영역 확대 등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탈 전문화 정도가 아니라 정부에 의한 전문직의 해체인 것이다. 따라서 의사집단의 최우선 과제는 국가자율성 아니면 국가조합주의 상황을 어찌 극복하느냐 일수밖에 없다.

의료는 국가와 개인들에게 꼭 필요한 분야다. 국가는 자신이 보다 안정되기 위해 건강한 국민, 막강한 군사력, 튼튼한 노동자가 있어야 한다. 또한 개인은 국가의 필요를 떠나 자신의 인생을 살찌우기 위해 건강을 추구한다. 국가가 무엇이라하든 어떤 제도를 만들든 그것에 관계없이 개인들은 자신의 몸에 애착을 갖는다. 국민과 국가는 의료가 감당해야 하는 두 가지 기본축이다. 이제 의사들은 주장의 논리를 보다 명료하고 충실하게 다듬어, 의사라는 전문직이 제대로 존재해야 국가와 개인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설득할 역량이 있어야 한다. 지난날 의사 선배들은 일본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고 건국 서훈을 받은 사람이 수십 명에 달한다. 그리고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했다. 그뿐 아니라 직업의 자유를 유보 당하면서까지 전 국민에 대한 의료보험을 확립하여 경제개발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의사들은 한국 사회 속에서 기죽을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원인이 어디에 있건 사회에서 의사를 바라보는 눈이 곱지 않음에도, 의대를 지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현재의 의사에 불신과 불만이 많은지 몰라도 의사라는 직업 자체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의업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좀 더 넓은 시야를 갖는다면 자신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또 스스로 개선하고 노력하여 국민들을 설득할 여지가 있다.

이것은 아마 의사나 의학이 시민권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가능성을 외면하고 의료계는 희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박호진 <충북 청주 박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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