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물고있는 해골
담배를 물고있는 해골
  • 의사신문
  • 승인 2006.10.3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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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궤양 앓던 고흐 담배 · 죽음 결합시킨 본능적 감각 놀라워

암스테르담은 참 재미있는 도시다. 운하로 이루어진 도시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네덜란드인의 유연한 사고방식이 이루어 내는 독특한 도시의 분위기가 사람을 매료시킨다. 마약을 처음 합법화 시킨 것도, 홍등가를 공인한 것도, 안락사를 처음 인정한 것만 봐도 그렇다. 또 필자가 전공하는 호흡기학에서는 COPD의 병인과 관련해서 전통적인 학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Dutch Hypothesis'를 들고 나와 결국에는 그 타당성을 증명해 낸 것도 이곳 사람들이었다. 또 공항은 얼마나 편하게 되어 있는지, 면세점 또한 얼마나 구매욕구를 느끼게 만들어 놓았는지…. 시저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패러디해서 `보았노라, 샀노라, 날아갔노라(See, Buy, Fly)'라고 써진 노란 쇼핑백은 웃음이 절로 나게 만든다.

강박적 성격속의 `유머' 암스테르담에서 반드시 가 보아야 할 미술관이 3개 있으니 바로 국립 중앙미술관격인 Rijks Museum, 현대 미술관, 그리고 반 고흐 미술관이다. 반 고흐 미술관을 둘러 보면 눈길을 끄는 자그마한 소품이 하나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하는 `담배를 물고 있는 해골'(1885년,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이라는 작품이다. 30×25cm의 작은 그림이지만 독특한 소재로 항상 이 그림 앞에는 많은 관객이 모인다. 짙은 검은 색 배경에 노란 빛이 도는 밝은 색으로 해골을 그려 넣었다.

비스듬한 각도에서 보는 두개골만 그린 것이 아니라 경추와 빗장뼈, 견갑골, 늑골까지 있지만 얼기설기 쌓여 있는 느낌이지 해부학적으로 제대로 위치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사진처럼 꼭 보이는 그대로 그리지 않아도 좋은 그림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 대중에게 입증한 화가답게 미켈란젤로식의 인체의 구조에 대한 치열한 탐구심이 아예 없었기 때문일까…. 해골의 입에는 불이 붙어 있는 담배가 물려 있다.

입술이 없는 해골의 아래 윗니가 꽉 물려 있어 담배를 납작해 지도록 잘근잘근 씹고 있는 형국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짓게 한다. 고흐의 강박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순간이지만 이 장면만큼은 유머가 느껴지기도 한다. 불붙은 담배에서는 흰 연기가 검은 배경속으로 피어 오른다. 위장병으로 고통받던 고흐의 일대 저항 이 그림은 고흐의 앤트워프 시절의 작품으로 화가로서는 초기의 작품이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이었던 해부학 공부중에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 고흐는 위궤양으로 추정되는 위장병과 치통으로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던 시기에 있었다.

이 그림은 “시들어 가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낀 고흐가 일대 저항, 또는 반격을 다짐하는 의미로 그려졌다”고 해석하는 비평가들이 많다. 하지만 반 고흐 미술관의 도록은 고흐가 `장난삼아 그린 그림(joke)'이라고 짤막하게 해석하고 있다. 전통적인 관념에서 보면 담배는 남성다움과 어른스러움을 상징하는 기호품이다. 남자는 죽어서도 여전히 남성다움과 어른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는, 남성우월론과 일맥상통하는 유머일 수도 있겠고 죽음 자체에 대한 야유일 수도 있겠다.

이 시기에 고흐는 이 것 말고도 또 다른 두개골의 그림과 검은 고양이가 있는 배경에 해골이 교수형을 당하는 그림을 남긴 바 있다. 초년병 시절에 해골을 그리는 것은 당시 해골을 잘 그려 유명했던 벨기에 화가인 Rops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담배를 피우면 위궤양 통증이 나빠지게 되어 있다. 위궤양으로 고생하던 고흐가 이 점 때문에 담배와 해골을 연관지었을까? 19세기 후반부를 살았던 고흐가 담배가 만성 폐쇄성 폐질환, 암, 동맥경화의 주범임을 당시에 알았을 리는 만무한데 담배와 죽음의 이미지를 결합시킨 본능적 감각이 놀랍기만 하다. 담배와 죽음의 이미지 결합 잘 알려진대로 고흐는 초기에 소위 민중미술에 경도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대표작인 `감자 먹는 사람'(1885년,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복권 판매' 같은 그림을 보면 이 그림처럼 화면이 전체적으로 검은 색을 기조로 하고 있다.

후기의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를 구사한 화가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감자먹는 사람'에서는 농부 일가족이 힘든 하루의 노동을 마친 후 옹기종기 둘러 앉아 감자로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이 정겹게 그려졌다. 이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따뜻한 눈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당시의 민중미술은 요즈음의 민중미술에서 느껴지는 호전적인 독기가 없고 다만 대상이 된 하층계급의 사람들에 대한 담담한 애정과 관심이 있을 뿐이다. 짙은 검은 바탕에 노란 색의 해골이 이루는 강렬한 명암의 대비는 다가올 강렬한 색상의 잔치를 예비하는 듯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의 담배갑에는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라고 적혀 있는데 이런 말보다 이 그림 한 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담배와 죽음의 이미지가 결합된 이 독특한 19세기 말의 그림은 금연운동의 포스터로 썩 어울릴 듯 한데 금연운동가들이 미술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아직 포스터로 이용되는 것은 보지 못했다.

한성구 <서울의대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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