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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 : 여원재~중재
백두대간 종주 : 여원재~중재
  • 의사신문
  • 승인 2006.10.2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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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뮤직' 명장면 떠올라

다시 여원재. 쏟아지는 별을 이불 삼아 숨쉬는 대지를 침상 삼아 밤을 보낼 2박 3일의 산중 야영에 기대를 걸며 몇 날을 설레며 준비했던 산행이었건만 장마철 장대비가 앞을 가로 막았다. 갑자기 발달한 장마전선이 야속했지만 우리의 종주길을 막을 순 없었다.

배낭 어깨 끈도 맞추고 텐트도 살피고 정성스레 배낭커버도 씌우고 우의도 챙겨입었건만 앉은키를 능가하는 배낭은 왜그리도 무거웠던지. 게다가 배낭이 비에 젖어 더욱 무거워질 생각을 하니 마음도 따라 무거워졌다. 10명의 종주대는 더욱 거세지는 빗줄기를 뚫고 대간의 품으로 향했다. 굵은 빗줄기 탓에 등산로를 이탈하는 몇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한길을 넘는 갈대와 관목 그리고 가시넝쿨을 헤치며 도착한 고남산.

날씨만 좋았더라면 판소리 동편제의 고향 운봉고을이 저아래 시야에 들어왔을텐데. 이어 도착한 곳이 매요마을. 빗속이라 밥을 지을 수 없어 마을에서 제일 인심 좋은 지혜네 집에서 지어준 더운밥 한그릇 씩을 뚝딱 해치우고 다시 대간 능선에 올랐다. 비에 젖은 배낭 무게에 어깨가 저려오고 다리는 휘청거렸다. 한반도 남쪽 동서를 연결하는 88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사치마을을 지나 지리산 휴게소를 등뒤로 하고 산으로 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새맥이재. 저멀리 대간능선을 타고 땅거미가 우리들 곁으로 기어들 무렵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택해 첫날 야영지로 정했다.

야속한 빗줄기는 여기까지 잘도 따라붙었다. 막영터를 고르고 텐트를 치고 빗물을 받아 식사준비를 하였다. 우리는 쏟아지는 빗줄기 덕에 떠먹어도 떠먹어도 김치찌개 국물이 줄어들지 않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쏟아지는 별빛 대신 빗줄기를 친구 삼아 반주 삼아 그 날밤 우리모두는 가수가 되었다. 열려진 텐트 틈새로 밝은 빛이 스며들 무렵 다행히 비는 멎어 있었다. 텐트를 걷고 아침을 지어먹고 배낭을 다시 꾸렸다. 이때 아랫마을에 사시는 어르신 한 분이 올라오셔서는 인심 좋게도 산딸기를 한아름 따서 내놓으신다. 우릴 보니 타향에 나가 있는 아들생각이 나신단다. 그 따스함에 정겨움에 힘을 얻어 다시 대간을 밟아 나갔다. 그러나 밤새 물먹은 배낭과 내용물은 더욱 무거워 졌다. 온종일 오르고 내리고 걷고 또 걸어 철쭉으로 유명한 봉화산 자락에 이르렀다. 모든 장비가 물에 젖어 야영이 불가능한 탓에 산중턱의 민박집을 찾았다. 별이 쏟아지는 그 날 밤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개기월식 장면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주먹밥을 만들어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발길을 서둘렀다. 봉화산 기슭에서 정상에 이르는 길은 온통 철쭉이었고 산정상은 푸른 융단같은 아직 덜자란 갈대 군락. 무릎정도 키의 갈대숲 능선을 따라 걷는 대원들의 마음은 이미 하늘을 걷고 있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명장면 중의 하나인 산정상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떠오른다며 누군가가 노래를 제안했다. 모두들 동요에서 가요 그리고 가곡을 부르며 오르고 내리기를 한참여. 이번 일정의 마지막 봉우리인 월경산을 넘어 목적지 중재에 이르렀다. 힘든 종주를 무사히 마친 대원들은 서로를 격려했고 등뒤 저멀리에는 다음 산행에서 만나게될 백운산이 정겹고 든든하게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서동면〈삼성서울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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