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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유감
히포크라테스 유감
  • 의사신문
  • 승인 2024.03.1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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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100)

미술 선생님이었던 작은 어머니 손을 잡고 초등학교 1학년 여름에 난생 처음 미술관에 가보았다.  덕수궁 석조전에서 국내 최초로 프랑스 화가 ‘장프랑수아 밀레’ 작품전을 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가 ‘만종’, ‘이삭 줍는 사람들’ 같은 그림이 세계적인 걸작인지 알 리가 있겠는가. 그저 화가가 시골 아줌마, 아저씨들을 푸근하게 잘도 그렸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굉장히 유명한 그림이란 걸 곧 알게 됐다.  유심히 살펴보니 동네 이발소며 허름한 식당이며, 여기저기에 밀레 작품들이 꽤 많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개 싸구려 복제품이거나 아르바이트생의 습작이라 어린 아이 눈에도 예술성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였다. 밀레가 한국에서 이렇게 대접 받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예전에 재래식 화장실을 쓰던 시절엔 동네마다 ‘분뇨수거차량’, 그러니까 ‘똥차’가 자주 드나들었다. 그 차들이 후진할 때면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이 ‘엘리제를 위하여’ 선율이 흘러나왔다. 똥차의 기억이 워낙 강렬하게 남아서 그렇지, 쓰레기차나 덤프트럭도 마찬가지였고 상당수 승용차들 역시 후진할 때 이 음악을 애용했다. 아마 주변의 주의를 순식간에 확 끌 정도로 유명한 곡인 동시에 멜로디가 간단하여 차량 장착이 쉽다는 이유에서였으리라. 너무나 애잔하고 사랑스러운 멜로디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소 무식한 용도로 사용한 것 같아 베토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국에서 고생하는 서양 유명인 이름 중 히포크라테스를 빼놓을 수 없다. 의료계 문제로 의사들이 불만을 제기하거나 어떤 요구를 할 때면 어김없이 곳곳에서 히포크라테스가 소환된다. 의대정원 이슈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 요즘 또다시 기원전 4,5세기 인물인 그의 이름이 모든 언론에서 쏟아진다. 히포크라테스가 썼다고 알려진 한 장짜리 문서, <선서> 때문이다.
  
‘언제나 따뜻하고 공평하게,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겠노라’ 운운하는 ‘검사 선서’는 일반인이 잘 알지도 못하고 왜 그대로 못하느냐 시비도 별로 안 건다. ‘국익을 위해 양심에 따라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겠노라’는 국회의원들 선서 따위에는 아예 기대도 안 거는 듯하다. 하기야 죽도록 사랑하겠다고 엄숙히 맹세한 혼인서약을 부부 네 쌍 중 하나가 아무렇지 않게 내팽개치는 사회에서 남들은 다 선서대로 살아야한다고 주장하는 게 좀 민망할 것이다. 그러나 유독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만큼은 유별나다. 이들은 선서의 딱 한 대목, 곧 ‘의사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해야한다’만을 줄기차게 되뇐다.
  
2,500년 전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과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히포크라테스는 그 가문이 대대로 의업에 종사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아스클레피오스의 18대, 혹은 19대 후손이라고 한다. 뱀이 휘감은 막대기가 상징인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로 이른바 ‘반신반인’이다. 죽은 사람까지 자꾸 살리는 신묘한 의술을 발휘하다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벼락을 맞고 죽는다. 항의하는 아폴론을 달래는 차원에서 제우스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의술의 신’이란 지위를 부여하고 그를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어준다. 히포크라테스가 이렇게 족보상으로 신의 혈통이기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어쩔 수 없이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낙태 목적의 기구(pessary)를 주지 않겠다, 칼 쓰는 수술은 하지 않겠다, 결석(結石) 환자는 딴 사람에게 맡기겠다, 등등 오리지널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등장하는 난해한 조항들을 보면서 이게 한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당시 인기 있던 다른 그룹(가령 피타고라스 학파)의 철학이나 신조와 혼합된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도 있다. 히포크라테스 전문가인 반덕진 교수는 히포크라테스 가문이 독점하고 있던 의료인 카르텔에 외부인이 들어가려 할 때만 이 선서를 요구했을 것으로 본다. 스승을 부모처럼 여기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스승의 아들들에게는 무료로 의술을 가르쳐야 한다는 조항이 그래서 들어갔으리라고 반 교수는 설명한다.
  
요컨대, ‘의학의 아버지’처럼 묘사되는 히포크라테스는 고대 주술적 질병관에서 탈피하여 섭생법이나 합리적 추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업적이 있지만 그의 스토리에는 팩트가 아닌 신화와 전설로 포장된 부분도 적지 않다. 다만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담긴 박애정신은, 나치 범죄에 의사들이 가담했던 과오를 반성하는 의미로 세계의사협회(WMA)가 1948년 새롭게 제정한 ‘선서’, 일명 ‘제네바 선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1948년 이후 총 6차례의 크고 작은 보완을 거친 이 제네바 선언의 가장 최근 개정판(2017)에는 의미 있는 조항이 삽입됐다. 그 무렵 과도한 업무 부담을 견디다 못한 전공의들이 파업까지 벌였던 뉴질랜드에서 한 용감한 의사가 WMA를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얻어낸 결실이다.
  
“I WILL ATTEND TO my own health, well-being, and abilities in order to provide care of the highest standard.” 
  
환자에게 최상의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의사들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건강과 복지’, 그리고 ‘스스로의 역량’을 살뜰하게 챙기겠다는 다짐이다. 유감스럽게도 이게 한국 의료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혹시 의사 집단의 이기주의적 행동을 교사할 수 있다고 복지부가 이 조항의 국내 도입 및 소개 금지명령을 내린 건 아닐까). 수면 부족과 만성피로에 찌든 채 환자 곁을 지키던 우리 전공의, 전임의 선생들의 퀭한 얼굴이 떠오른다. 환자의 건강 못지않게, 최선을 다해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것 또한 제네바 선언, 그러니까 현대판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중요한 조항으로 들어갔음을 그들이 알고는 있을지.
  
오직 의사들을 꾸짖을 목적으로 어설프게 히포크라테스를 들먹이는 사람들은, 이발소 그림으로 밀레의 예술을 논하고 똥차 후진소리로 베토벤의 음악세계를 설파하려는 자들과 다름없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어떤 역사적 의미가 깃들어있고 그 정신을 이어받은 현대식 선서, 즉 제네바 선언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조금이라도 공부한 다음 의사들을 비판하는 게 건설적인 토론장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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