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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몽골 인플루언서
내 친구는 몽골 인플루언서
  • 홍영준(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 승인 2024.03.05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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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99)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남편의 기척이 들리기 무섭게 벼락같이 달려 나간 아내는 그에게 다정하게 키스를 퍼붓는다. 이어서 그의 챙 넓은 모자와 두터운 벨트, 또 두루마기처럼 생긴 외투를 차례로 받아준다. 긴 장화를 벗기는 과정은 좀 귀찮았겠지만 그래도 현관 의자에 남편을 앉히고서 무릎 꿇은 채 기다란 신발을 하나씩 당겨서 빼주는 아내. 여기까지만 보면 집에서 부인에게 극진히 대접받는, 참 부러운 남편의 모습이다. 그러나 곧 반전이 이어진다. 
  
뜻밖의 공손한 서비스에 남편이 아직 우쭐해 있을 때, 아내는 곧바로 그에게 핑크색 꽃무늬 앞치마를 입힌다. 최면에라도 걸린 듯 남편은 이제 씩씩한 군인의 걸음걸이로 주방을 향해 돌진한다. 싱크대에는 설거지를 기다리는 그릇과 접시들이 산같이 쌓여있고 그는 로봇처럼 열심히 그걸 닦기 시작한다. 잠깐 남편에게 공을 들였던 아내는 이제 편안히 커피를 홀짝이며 자유 시간을 만끽한다. 짤막한 이 영상에 남편이 달아놓은 몽골어 제목은 이렇다. “이 완벽한 숙녀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법을 안다.”
  
몽골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SNS는 단연 페이스북이다. 2020년 1월 기준, 페이스북 사용자가 210만이라고 하니, 330만 인구의 몽골인 가운데 3분의 2가 페이스북을 하는 셈이다. 거의 99%가 PC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에 접속하기에 ‘페이스북 메신저’야말로 우리나라 ‘카카오톡’ 이상의 지위를 누린다고 한다. 2024년 현재, 내 친구 ‘군달라이(Gundalai)’의 페이스북 팔로워 숫자는 무려 83만 명이다. 몽골 페이스북 이용자 셋 중 하나가 매일 그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우직한 남편과 영리한 아내 에피소드는 군달라이 집안의 풍경을 그의 딸이 2주 전에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이다. 설거지 전문가인 남편이 바로 내 오랜 친구, ‘군달라이’다. 처음 만났을 때, 몽골어로 ‘군(Gun)’은 ‘깊다(deep)’, ‘달라이(dalai)’는 ‘대양(ocean)’이란 뜻이니 자기 이름 꽤 멋지지 않냐며 웃음 짓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도 ‘큰 바다 같은 스승’이란 의미라고 알려주면서. 
  
그의 페이스북에는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러운 가족들 영상이 많이 올라온다. 남에게 보이고자 찍는 영상이니 어느 정도 설정이 불가피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몽골인들은 군달라이 가정의 행복한 일상에 박수를 보낸다(설거지 영상은 조회수 33만에 ‘좋아요’가 8천 개 달렸다). 가끔 사춘기 아이들 교육과 관련해 누구나 겪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무뚝뚝한 조언을 툭툭 던지는데, 의외로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군달라이가 몽골 페이스북의 유명 인사가 된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이 한몫했다. 내가 의과대학을 다니던 때와 거의 같은 기간에 군달라이 역시 의학을 공부했다. 다만 그가 졸업한 의과대학은 몽골이 아닌 독일의 학교였고 그곳에서 가정의학과 의사가 되었다. 이후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2000년 그는 몽골 정계에 진출하여 30대 나이에 일약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재선의원이 되었을 때는 잠시 보건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10여 년 전 우리 병원을 찾아온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군달라이는 지긋지긋하다면서 정치를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무역업을 하는 회사를 차린 상태였다. 한국 지인을 통해 우리 병원을 소개받았다며 턱 밑 침샘 부근에 작은 혹이 만져진 부인의 진료를 원했다. 당시 병원 기획실장으로 외국인 진료 파트에도 관여하고 있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이들 부부와 친해졌고 치료에 대단히 만족한 그들은 몽골 국영방송국에 우리 병원을 소개해주어서 그곳 기자들이 암 병원 특집방송 취재차 내원하기도 했다. “헤이, 마이 프렌드”하면서 언제나 다정하게 날 불러주는 군달라이와는 그때 이후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올해 초 군달라이가 우리 병원을 다시 찾은 이유는 그의 아내가 갑상선에서 작지 않은 크기의 혹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높은 의료수준, 비교적 가까운 거리,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 등이 몽골을 떠나 우리 병원에서 수술받기를 원하는 장점들이었다.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시간, 심란해하는 그를 위로할 겸 두물머리로 데리고 가 한강이 보이는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일말의 불안감 때문인지 그는 과도하게 수다를 떨면서 소위 ‘메가 인플루언서’에 근접한 이의 남다른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작년 추석 무렵 홍콩 여행을 갔을 때란다. 호텔 예약을 안 하고 갔는데 마침 홍콩의 유명한 파이어 댄스 드래곤 축제가 부활하여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도저히 방을 구할 수 없어 쩔쩔매다가 페이스북으로 생방송을 하면서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았더니 즉시 열 명가량의 몽골인이 지금 홍콩에 있다면서 자기 숙소로 오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단다. 충성스러운 83만 명의 팔로워가 있으니 가능한 이야기다.
  
사랑하는 아내의 수술은 잘 끝났고 예상대로 양성종양이어서 입원 기간도 길지 않았다. 부탁도 안 했는데 군달라이는 퇴원 직전 환자복을 입은 아내와 병원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페이스북으로 우리 병원을 홍보하는 방송을 했다. 그 영상은 오늘 현재 몽골인 58만 명이 보았고 1만2천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아플 때 우리 병원에 오고 싶다는 댓글도 수천 개가 달렸다. 나는 감사 인사와 함께 언젠가 나도 군달라이 당신을 내 지인들에게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군달라이는 몽골로 돌아가기 전 불쑥 내게 올 6월 몽골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면서 자기도 이번에 출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원내각제라 국회에 들어가면 보건부 장관을 다시 노려볼 거라면서. ‘인플루언서’란 덧없는 인기를 등에 업고 좀 ‘오버’하는 것 같아 그때는 말렸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져 응원해주고 싶다. 그가 혹시 장관이 된다면 한국을 반면교사 삼아 해줄 조언이 많아서다. 우선 인구 1,000명당 3.9명이라는 몽골의 의사 수가 과연 많은지 적은지, 평균 월급 1,400 USD라는 몽골 의사 급여가 적절한지 아닌지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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