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4만여 명 의사 모여 “의대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폐기하라”
4만여 명 의사 모여 “의대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폐기하라”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4.03.03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협 비대위, 3일 여의도서 총궐기대회 개최···‘원점에서 재논의’ 촉구
의료비 폭증·의대교육 질 저하 우려···의사 진료권·국민 의료선택권 침해
사명감으로 소명 다해 온 전공의들 미래 포기하며 의료 현장 떠난 이유 알아야

‘의대정원 확대’와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며 전국에서 모인 의사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여의도를 뒤덮었다.

대한의사협회 의대 증원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택우)는 오늘(3일) 오후 2시 여의도공원 옆 여의대로 인근에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궐기대회에는 전국에서 모인 4만여 명의 의사 회원들이 참여했다. 애초 주최 측이 예상했던 2만여 명보다 2배에 달하는 인원이다.

이날 김택우 비대위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정부가 기습적으로 대규모의 의대정원 증원을 발표하고 의협과 논의하기로 한 9.4 의·정 합의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독으로 가득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선물로 포장했다”며 “이로 인해 생명과 중환자를 보살피며 사명감으로 자기 소명을 다해 온 전공의가 스스로 미래를 포기하며 의료 현장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전공의를 초법적인 명령으로 압박하고, 회유를 통해 비대위와 갈라치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며 “대화를 말하면서 정원 조정은 불가하다는 정부의 이중성과 28차례 정책 협의 사실을 주장하다 느닷없이 대표성을 문제삼는 정부는 말 그대로 의사를 우롱하고 있다. 진정으로 이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국민 불편과 불안을 조속하게 해결하길 원한다면, 전공의를 포함한 비대위와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이번 투쟁은 미래 의료 환경을 제대로 지켜내기 위한 일인 동시에 국민 건강 수호를 위한 의사의 고뇌가 담긴 몸부림이자 외침”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김택우 위원장은 “비대위는 전공의와 의대생이 안전하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정근 의협 회장 직무대행과 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의 격려사가 발표됐다.

이정근 직무대행은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과 교육체계에서 의사 수 증원은 필수·지역의료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기본적인 인프라와 재정이 확보되지 않고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면, 의학 교육의 질이 심각하게 저해될 것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의료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의대 증원은 보건의료제도 전반은 물론 국가 재정과 국민 부담, 이공계  기피 현상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지만 정부는 결국 의사 수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 없이, 2000명의 의대정원 증원만으로 해결하려는 잘못된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오히려 정부는 의료인을 행정처분, 경찰과 검찰을 동원한 구속 수사 등으로 협박하며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고 분노를 나타냈다.

이 직무대행은 “의료계는 더이상 비민주적인 정부의 태도를 바라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며, 현상황을 단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보건 의료를 지켜내고 회원을 보호하며 보건의료체계의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박성민 의장은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호소한다”며 “우리 의사 모두는 환자의 곁에서 그 고통을 함께 나누며 환자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정부가 현 사태를 만든 것이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젊은 전공의가 천직으로 여겨 왔던 의업을 포기하고 학생들은 그토록 원하던 의사가 되기 위한 학업을 왜 포기하려는지 한번만이라도 저희들 말에 귀기울여 달라”고 읍소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이제 협박과 탄압을 중단하고 진정성을 갖고 조건 없는 대화의 장을 열어 달라. 학생과 전공의들이 학교와 환자의 곁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다리를 끊지 말라”며 “오늘 총궐기대회가 우리의 뜻을 펼치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전공의, 의대생, 비대위와 함께 대한민국 의료를 살리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자”고 말했다.

다음은 한미애 비대위 투쟁위 위원의 구호제창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과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 홍순원 한국여자의사회 차기 회장의 연대사가 이어졌다. 

박형욱 부회장은 “대한민국 의료는 짧은 시간 실로 놀라운 성과를 이뤄 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예약도 없이 전문의 진료를 받고 원스톱으로 각종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바로 확인하는 것에 놀라며 최종적으로 값싼 진료비에 또 놀란다. 정부가 내세우는 OECD 보건통계도 대한민국 의료는 비용 대비 매우 훌륭한 성과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면에는 문제도 많다. 필수의료, 보험의료는 극심한 저수가에 시달리며 의료기관은 비급여와 박리다매로 이를 벌충해 왔다. 그 밑바닥에는 전공의들의 중노동이 깔려 있다”며 “정부는 비급여와 박리다매를 비난하지만 그것이 우리나라 필수의료, 보험의료를 유지하게 만드는 슬픈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박 부회장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부는 이런 아슬아슬한 균형을 일거에 깨버리겠다고 나서 강압적 정책에 반응한 의료계를 가해자로 만들었다”며 “물론 정부가 전공의의 사직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면허를 박탈한다, 법정최고형을 구형하겠다, 사직서 수리를 금지한다, 계약 포기를 명령한다’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 듣도 보도 못한 폭언을 남발하고 있다”고 분노를 나타냈다.

특히 “의학교육 현장의 교수들은 급격한 의대 증원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놀랍게도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순식간에 의대 교수 1000명을 증원하겠다고 했다. 환자 진료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 것인가? 의대 교수가 물건인가?”라며 “또 정부는 대학의 수요조사를 통해 정원을 책정하겠다며 대학운영을 걱정하는 총장과 의대교수를 갈라치기하고 있다.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의대 교수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이는 정직한 의견수렴 절차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박형욱 부회장은 “지금 윤석열 정권의 대책은 필수의료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이성을 찾아야 한다. 전공의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며 “대한의학회는 후배 의료인이자 제자인 전공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김동석 회장은 “우리나라는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의사 구속과 수억 원의 배상 판결로 자신이 전공한 진료를 포기하게 만든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정부가 의대 증원이 아니라 원가 이하의 수가를 정상화하고 고의과실이 아닌 의료사고에 대한 처리특례법과 제대로 된 의료전달체계를 도입하면  필수의료 의사는 넘쳐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혼합진료 금지, 실손보험 개선, 비의료인의 미용시술, 개원면허 제도 등으로 개원가를 규제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국민의 진료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 발표 직후 실손보험 회사의 주가가 올랐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라며 “정부는 의사 증원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내놓고 이제라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건의한다”고 덧붙였다.

홍순원 차기 회장은 의대정원 증원이 왜 대한민국 의료의 위기를 불러올 것인지 3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첫 번째로 “의과대학과 교육 병원에서는 이미 한정된 자원과 시설을 바탕으로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정원이 대폭 증가한다면 의료 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두 번째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는 보건 의료 시스템의 한계와 취약성을 목격했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의사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예방, 치료, 관리에 있어서 더 높은 전문성과 효율성을 갖춘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세 번째로 “의료 교육의 질 저하는 환자의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의사의 기본적인 역량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 현장에 투입된다면, 이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심각하게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순원 차기 회장은 “정부는 소수의 의료관리자의 왜곡된 시각에 휘둘리지 마시고 전체 의료계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에 나서는 현명하고 정의로운 결단을 내려 달라”고 밝혔다. 

이어서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의 문제점을 국민을 대상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우선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은 필수의료 위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것이 의사가 부족해 생겼다는 것은 진단부터 틀린 것이다.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려면 과밀화를 해결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2천 명에 왜 그렇게 목을 매고 있나? 본심은 총선을 겨냥한 포퓰리즘 지지율 상승이 목표이기 때문”이라며 “이 사태의 본질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국민과 의료계가 필수의료 살려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으니 필수의료를 살릴 방법을 논의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전공의들은 힘들지만 장래의 희망 때문에 현장에 버텨왔지만 이제는 기대할 것이 없어졌기에 결국은 현장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이어질 전임의, 봉직의, 개원의, 교수들의 사직의 물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형민 회장은 “역설적이게도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이 줄며 응급의료체계가 개선되고 있다”며 “의료는 질의 문제이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우리는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정부는 더이상 필수의료 의사들을 욕보이고 조롱하지 말라. 의료계에 대한 탄압을 즉시 중단하고 우리 의료계를 진정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안덕선 고려의대 명예교수는 “의료생태계 파괴의 주범인 의료의 형사범죄화는 의사의 자기 보호가 우선이고 환자의 이득은 차선이 되는 방어 의료를 만들어 낸다. 선진국 주치의는 문지기 역할로 의료 과소비도 조절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선진국의 최소 50배 이상”이라며 “이런 악성 사법적 부담에서 의사의 자주적 판단에 의한 소신 진료가 과연 가능하겠나? 북미와 유럽은 의료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복지부장관이 우리나라 의사만 갖는 세계에 유례없는 특혜라고 주장하는 의료사고특례법은 선진국이라면 아예 필요 없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징적이고 방향성 제시에 그치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구체적 실행 주체와 실현 계획이 결여됐다”며 “의료개혁은 정부의 명령과 통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부는 젊은 의사들이 명령과 통제의 중압감으로 환자에 대한 의무보다 차라리 사직을 선택한 진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 의사 이직의 가장 큰 요인은 소진과 자율성 그리고 자주성 상실”이라고 강조했다.

안 명예교수는 “정부는 2000년 보건의료기본법으로 보건의료기본계획과 시행을 주기적으로 할 것을 법제화했지만 현재까지 한 번도 정부의 보건의료기본계획을 본적이 없다. 이런 정부가 과연 필수의료만이라도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작 필수의료의 붕괴를 막으려면 정부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의료에 대한 합의된 이념부터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당한 정책 패키지를 차근차근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의료가 의사의 기본권의 침해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한 필수의료의 붕괴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점을 설명하는 시간에 이어 황규석 비대위 투쟁위 부위원장(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의 구호제창과 퍼포먼스(레미제라블)가 펼쳐졌다. 

이어서 의협 비대위 박명하 조직위원장(서울시의사회장)과 박인숙 대외협력위원장, 임현택 비대위원이 “정부의 졸속 의대정원 증원 추진과 불합리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낭독했다.

박명하 위원장은 “의학교육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고 의사를 양성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됨을 감안할 때, 교육여건과 시설기반에 대한 선제적 준비와 투자가 없는 상황에서 급진적으로 의사를 2000명 증원한다면 의료비, 건강보험료 등 각종의 늘어나는 사회적 비용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박 위원장은 “의사 수가 늘어도 진료여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지 않고 비필수의료에 비해서 빈번한 형사소송 등 법적 부담까지 부담해야 하는 필수의료 영역의 특성을 감안할 때 결코 증원으로 늘어난 의사인력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로 유입될 것으로 단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임현택 위원은 “의사 수 증원 없이도 이미 건보 재정은 큰 폭의 적자가 예상돼 2028년에는 건보 누적 준비금 23조가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의대정원 증원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이는 결국 미래세대 우리 젊은이들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해서도 “임상 수련과 연계한 개원면허의 단계적 도입, 의사의 진료 적합성 검증체계 도입,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지불제도 개편, 비전문가에 대한 미용의료시술 자격 확대 등 국민의 자유로운 의료선택을 제한하고 의료비용 지출 억제에만 주안점을 둔 잘못된 정책”이라며 “의료계는 이에 절대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박인숙 위원장은 “의대정원 증원 이슈가 4.10 총선 등 정치일정에 따른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작금의 현실에 개탄한다. 의대정원 증원 문제는 정치와 정쟁의 대상이 아닌 우리나라의 우수한 의료제도와 의료시스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존망이 걸린 중대 사안”이라며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의료계 대표자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정원 2천 명 증원과 불합리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끝으로 정부에 대해 △의료비 폭증을 불러올 수 있는 의대정원 증원 문제를 원점에서 재논의할 것 △의대교육의 질 저하와 의학교육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는 의대정원 2천 명 증원 졸속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 △ 의사의 진료권을 과도하게 제약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의료선택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 등을 촉구했다. 

결의문에 이어 좌훈정 비대위 투쟁위 부위원장의 구호제창과 퍼포먼스(상록수 노래공연, 정책철폐를 형상화), 이날 모인 4만여 명에 달하는 참가자들의 함성이 이어진 후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는 마무리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